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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0. 2024

그래도 돼, 열심히 살았으니까

23.06.20(화)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이었는데 야외에서 모임을 가진다고 했다. 바닷가에 가서 예배도 하고 전도도 하고 점심도 먹고 간식도 먹고. 바깥활동을 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기는 했다. 너무 뙤약볕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중충한 것도 아니고. 날씨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들끼리 자녀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게 최고의 변수였다.


아내도 어제부터 적잖은 부담을 느꼈다. ‘좋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딱 이거였다. 만약 이번 주말에 내가 세 자녀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면, 비슷한 심정일 거다. 설레면서도 힘들 것 같고,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되고.


예상한 그대로였다. 꽤 좋은 시간이었는데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다른 게 힘든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순간에, 특히 몸으로 힘을 써야 할 때, 남편의 부재가 통탄스러웠다고 했다. 모래사장에서 아스팔트 길로 유모차를 들어 올려야 할 때라든가, 통제되지 않는 자녀들을 분주하게 쫓아다니고 통제하느라 진이 빠질 때라든가. 그 와중에 아내는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고 더 열심히 몸을 굴렸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네 명의 엄마 선생님 중에 한 명은 만삭, 한 명은 임신 초기다. 아내와 K의 아내만 온전하게(?) 한 몸 건사할 환경인 거다. 그러니 힘을 써야 하거나 멀어지는 자녀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아내가 열심을 냈다. 실제로 아내는, 장난을 치는 듯 뒤를 돌아보며 순식간에 멀어진 다른 가정의 자녀를 쫓아가느라, 엄청난 질주를 했다고 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아내는 정신을 못 차렸다.


“아우, 여보. 눈이 막 감기네”


그럴 만도 했다. 오전부터 만나서 거의 6-7시간을 야외에서, 그것도 모든 육아인들이 본능적으로 ‘아, 지금은 아니야’를 외치게 만드는 모래사장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으니. 게다가 아내와 아이들 모두 피부도 익었다. 날이 흐려서 방심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얼굴이며 팔이며 자외선을 쭉쭉 빨아들인 듯했다. 그나마 우리 아이들의 피부가 원래 새하얀 편은 아니라서 달궈지듯 빨갛게 되지는 않았다. 아내가 가장 심했다. 팔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간지럽다고 했다.


그야말로 녹초였다. 살은 타고, 체력은 바닥이고. 항상 피곤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급이 다른 피곤함이 느껴지는 듯,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꾸벅꾸벅 졸았다. 집에 할 일이 꽤 많았지만 아내에게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가만히 두라고 했다.


“여보. 그냥 놔둬. 오늘은 일찍 자”

“여보도 힘들잖아”

“괜찮아. 나도 그냥 놔두면 되지 뭐”


물론 농담이었다. 아내는 제법 일찍 자러 들어갔고, 난 꽤 늦게까지 설거지와 주방정리를 했다. 빨래도 돌려야 했는데 다 될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너무 늦을 듯했다. 건조기에서 대기하는 마른 빨래는 방치해도 되지만, 세탁기에서 대기하는 젖은 빨래는 방치하면 안 된다. 미룰 수 없다면 애초에 시작을 안 하면 된다. 비록 집에 빨래산이 쌓이더라도. 내일 점심도 김밥을 사서 먹으라고 했다. 오늘 같은 일과를 보낸 다음 날에는 그래도 된다고 얘기하며 아내의 죄책감을 없애줬다.


“그럴까? 그럼?”


내일도 오늘만큼이나 치열하게 살 테니, 그래도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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