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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0. 2024

딸도 울고, 아들도 울고

23.06.21(수)

교회에서 먼저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이 예배시간에 맞춰서 오지 않고 늦으면 불안하다.


‘아내가 너무 힘든가?’

‘아침부터 아내에게 격정의 시간이 생겼나?’


차라리 내가 교회에 없고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을 때는 괜찮은데,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날에는 불안감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예배가 시작될 때까지 아내와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 일단 앉아서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집중이 잘 되지는 않았다. 곧 아내와 아이들이 도착했다. 다행히 아내가 엄청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머리는 젖어 있었다. 찰랑찰랑이 아니라 척척 달라붙을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아내의 급박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점심에 김밥을 먹기로 했는데, 우리 가족만 주문한 게 아니었다. 다른 가정들도 모두 김밥이었다. 아내의 김밥 주문 소식을 들은 나머지 엄마 선생님들도 환영하며 합세한 거다. 그만큼 다들 어제 엄청 힘들었던 거다.


‘오늘 점심은 또 뭘 먹어야 하나’


를 모두 고민하고 있던 차에 가뭄에 단비 같은 김밥 소식이 들린 거다. 나와 K까지 함께, 모두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도 교회에서 일을 했다. 저녁에 아내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고 K의 아내는 미용실에 간다고 했다. 각각 세 자녀를 돌보게 된 나와 K는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실 소윤이가 엄청 강력하게 원하고 요청했다. K에게도 나에게도. 사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소윤이가 너무 원하기도 했고, 식당도 우리 집 근처였고, 막상 집에 가서 뭘 먹어야 하나 생각하니 밖에서 먹고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능적인 귀소본능과 저녁식사 해결 현안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저께 갔던 집 근처 중국음식점으로 갔다. 아이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난 지겹지 않았다. 싸고 맛있는 곳이었고 그저께는 짜장면을 먹었으니 오늘은 짬뽕을 먹으면 됐다. 아이들도 지겹다고 하기에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았을 거다. 역시나, 만족스럽게 저녁을 해결했다.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에 가서도 잠깐 놀았다. 잠깐이라고 하기에는 꽤 놀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K의 첫째가 주로 어울려 놀았는데 소윤이는 ‘규칙’과 ‘판단’에 집중했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자비 없이 ‘틀림’을 지적했다. 대체로 그 대상은 시윤이였다. 아무래도 아직은 형과 누나에 비해 여러 모로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실수를 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못 할 때가 많다. 소윤이는 그런 동생에게 아량이 없었다. 너무나도 칼같이, 대쪽같이 잣대를 들이대며 즉시 적발했다. 내 눈에는 그게 참 아쉬웠다. 규칙을 지키려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우려고 게임을 하는 거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동생인데 왜 그렇게 야박하게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소윤이가 엄청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게임이니 규칙을 정확히 준수하는 건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즐겁게 잘 놀고 있는데 산통을 깨기 싫어서 별 말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주로 K가 큰 자녀들과 놀아줬고, 난 서윤이와 K의 막내 곁에 있었다.


날이 생각보다 서늘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많이 부니, 춥지는 않았지만 계속 바람을 맞으면 가랑비에 옷 젖듯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너무 늦지 않게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크게 두 가지를 얘기했다. 매번 ‘어딘가를 가자’고 너무 집착적으로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과 동생에게 너무 규칙과 잣대를 들이밀지 말고 관용과 봐주기의 사랑을 좀 베풀었으면 좋겠다는 것. 소윤이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소윤아. 왜 울어?”

“모르겠어여. 그냥 눈물이 나와여”


정말 좋은 태도로, 감정을 싣지 않고 얘기했는데 우는 걸 보니 ‘요즘 너무 같은 이유로 이야기를 많이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겉으로는 정중함을 추구했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소윤이의 그런 모습이 보기 싫다’였는데, 그게 전달이 됐나 싶기도 했다. 아무튼 소윤이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잘못한 게 없는데 혼이 났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다 씻고 자기 직전에는 시윤이가 눈물을 흘렸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공부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보거나 물어보기 전부터 뭘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방에 가서 눕자”

“아, 아빠. 이것만 마저 하고 가도 돼여?”

“뭐 하는데?”

“엄마한테 편지 써여”


예상대로였다. 소윤이는 다 쓰고 정리를 했는데 시윤이는 아직 쓰고 있었다. 시윤이에게도 한마디를 했다.


“시윤아. 편지 쓰는 것도 좋은데 낮에 엄마한테 짜증 좀 내지 마. 편지 아무리 써도 엄마한테 그렇게 짜증 내고 속상하게 하면 편지가 아무 소용이 없어. 편지 백장 쓰는 것보다 엄마 한 번 기쁘게 해 드리고, 속상하게 안 하는 게 훨씬 나아”


마찬가지로 매우 일상적인 억양과 말투로 얘기했는데, 시윤이는 갑자기 시무룩해지더니 펜을 내려놨다. 더 이상 안 쓰겠다고 했다. 다 지나고 보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 쓰는 아들에게 괜한 소리를 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필 그 때.


잘 놀고 와서 슬픔 속에 누웠다. 한 명, 언니와 오빠가 기분이 안 좋거나 아빠가 언니와 오빠에게 뭔가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잽싸게 알아채고 오히려 더 애교를 부리는 서윤이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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