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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5. 2024

아들과 함께 걷고, 또 걷고

23.06.24(토)

시윤이와 데이트를 했다. 소윤이와 데이트를 했으니 순차적으로 따라오는 당연한 과정이었다. 등산이 해 보고 싶다는 시윤이의 의견을 반영해 등산을 했다. 사실 나도 등산은 제대로 해 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나도 시윤이도 걷는 걸로 지치는 경우는 잘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점심 먹고 살짝 걸었던 코스를 오늘의 등산 코스로 삼았다.


일단 집 근처에 있는 빵 가게에 가서 빵을 샀다. 중간에 간단하게 허기를 채울 빵을 두 개 샀다. 나는 소금빵, 시윤이는 고구마빵을 골랐다. 일단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까지 걸었다. 집 근처의 대학교를 통과하면 숲길이 나오는데, 그 대학교까지 가는 길이 엄청 더웠다. 그냥 동네 도로를 걷는 거였는데 그늘이 하나도 없으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숲길에 들어서니 엄청 시원했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등산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완만한 길이었고 험준한 산길도 아니었다. 잘 포장된 산책로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적당히 운동도 되면서 너무 힘들지도 않고. 시윤이도 잘 걸었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했다.


전망대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전망대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날씨가 맑아서 아주 먼 곳까지 잘 보였다. 전망대 자체도 좋았지만 거기서 신이 난 시윤이를 보니 더 좋았다. 시윤이는 망원경을 통해 자기가 아는 곳을 찾아 보며 나에게 막 외쳤다.


“아빠. 저쪽이 우리 집! 아빠! 저기가 해수욕장!”


냉정하게 보면 별 거 없었는데 만족스러웠다. 여행자로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왔으면 생각이 달라졌겠지만, 동네에 등산하다 들렀다고 생각하니 전혀 기대가 없었고 만족도도 높았다. 휴게실에서 잠시 머물며 아까 산 빵도 먹었다. 시원한 물과 음료수도 먹었다. 시윤이는 아직 하나도 힘들지 않고, 다리도 안 아프다고 했다.


다시 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마찬가지로 엄청 힘든 길은 아니었다. 전에 비하면 언덕도 있고 가끔씩 흙길도 나오기는 했지만 숨이 차오를 정도는 아니었다. 걸은 시간이 쌓이다 보니 다리에 피로가 조금씩 느껴질 뿐이었다.


“아빠. 저는 많이 걸으면 무릎이 조금 아프더라여”


시윤이도 나처럼 다리에 피로가 쌓이는 게 느껴졌나 보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걸었다. 전혀 힘들어 하지는 않았다. 재밌어 했다. 아, 그리고 시윤이는 정말 수다스러웠다. 듣기 싫은 수다스러움은 당연히 아니었다. 질문도 많이 하고, 자기 생각도 많이 얘기했는데 분야가 정말 다양했다. 거의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는데, 역시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건가. 보통은 소위 말하는 ‘small talk’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엄청난 의지를 발휘하는 편인데, 시윤이와의 ‘스몰토크’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고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몰토크’였다.


정상까지 1시간 30분 정도를 걸었다. 사실 엄청 낮은 산이었다. 의지만 있으면 운동 삼아 매일 왔다 갔다 할 만한 곳이었다. 시윤이와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었다.


“시윤아. 괜찮아? 안 힘들어? 내려가려면 또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할 텐데?”

“네. 괜찮아여. 갈 수 있어여”


내려가는 길이 오히려 완전히 산길이었다. 그래서 위험했다. 시윤이는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신고 있던 신발 밑창이 많이 닳기도 했고, 내리막 흙길이라 더 그랬다. 무릎에 살짝 상처가 나기도 했는데 시윤이는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저수지 산책로와 이어진 곳으로 내려갔다.


“와. 아파트다”


나와 시윤이 모두 산에서 탈출한 듯 기뻐했다. 등산의 매력이 이런 건가. 산책로를 조금 더 걸어서 일반 도로로 나왔고, 점심 먹을 식당을 향해 조금 더 걸었다. 그때가 한 오후 2시 쯤이었는데, 처음 간 곳은 저녁장사 전 쉬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갔던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시윤아. 큰일 났다. 그냥 문 연 데 아무 데나 가야겠다”


어느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오묘한 냄새(오래된 물 냄새?)가 나서 불안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자리에 앉았다. 국밥이 엄청 쌌다. 국밥 하나와 수육 하나를 시켰다. 수육도 싸긴 했지만, 아들과 둘이 먹는데 굳이 수육을 시키는 건 내 사심을 채우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냥 시켰다. 평소에는 시킬 일 없는 메뉴니까. 다행히 시윤이도 잘 먹었다. 주로 살코기 부분을 먹기는 했지만 맛있다고 하면서 국밥 한 그릇은 거의 혼자 다 비웠고, 수육도 잘 먹었다. 배가 엄청 고프기도 했다. 다음에 가족을 또 데리고 갈 만한 집은 아니었지만, 그냥 적당한 가격에 한 끼 잘 때웠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나서는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로 왔다.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여서 ‘걸을까’ 생각도 했는데 그때는 시윤이도 나도 꽤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시윤이도 걷는 걸 멈추니까 힘든 게 느껴진다고 했다. 거기서 데이트가 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잠시 숨을 고르는 차원에서 버스를 탔다.


시윤이는 지난 주일에 갔던, 마당이 있는 카페에 가자고 했다. 혼자 가면 재미가 없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했다. 난 커피를 한 잔 시켰고, 시윤이에게도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더니 까놀레를 골랐다. 마당이 있는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시윤이는 혼자서도 잘 놀았다. 마당에 고양이가 세 마리 있었는데 그 고양이들을 쫓아다니면서 놀았다. 난 그런 시윤이를 지켜보다가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아빠. 자여?”

“어, 아빠 너무 피곤하네. 시윤이는 괜찮아? 안 심심해?”

“네 괜찮아여”


한 20분 졸았더니 다행히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혼자일 때 다정함이 급상승하는 시윤이는 마지막 남은 까놀레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줬다.


“괜찮아, 시윤아. 아빠 안 먹어도 돼. 시윤이 먹어”

“아니예여. 아빠 먹어여”


시윤이는 바닷가를 또 걷자고 했다. 바닷가를 걷다가 계단을 올라서 공원 쪽으로 돌아서 집에 왔다.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도 곧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시윤이와 샤워를 했다. 함께 샤워를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몸이 매우 고단하긴 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만족스러운 데이트였다. 소윤이도 나름대로 아내와 데이트를 했다. 서윤이 낮잠 잘 시간에 맞춰서 카페에 간 덕분에 엄마와의 시간을 보낸 거다.


“아빠. 저는 아빠랑 관람차 탈 거예여어”


이제 서윤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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