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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5. 2024

어제의 데이트는 어디 가고

23.06.25(주일)

Y네 가족이 울산에 왔다고 했다. 마침 오후 예배가 없는 주일이라 예배를 마치고 Y네 가족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K네 가족도 함께 갔다. 차로 30분 정도 거리의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보통 카페와 다르게 책도 많고 아예 아이들이 앉아서 읽을 자리도 있는 곳이었다. 세 가정이지만 자녀의 수가 9명이나 되기 때문에 적당한 곳을 찾아야 했다. 야외에서 놀기에는 조금 습하고 더운 듯해서, 이전에도 비교적 아이들이 잘 있었던 곳을 골랐다.


서윤이와 K의 막내는 유모차에서 잤고, 나머지 자녀들은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내들과 남편들이 각각 두 테이블로 나눠서 앉았다. 아내들은 아내들대로, 남편들은 남편들대로 매우 평화롭게 대화를 나눴다. 그만큼 자녀들이 방해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방해는커녕 마치 도서관에 온 듯 조용하게 책만 읽었다. 서로 오랜만에 만났으니 장난을 치며 놀 법도 했는데 다들 독서에 집중했다. 현실적으로 독서가 불가능한 막내들을 빼고 나머지 6명의 자녀는 엄마와 아빠들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책을 읽었다. 자녀들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Y네가 가야 할 시간이 되어서


“얘들아. 이제 가자. 책 읽던 것만 읽고 정리하자”


라고 얘기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엄마들이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자녀들은 먼저 카페 앞 정원에 나가서, 막간을 이용한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했다. 요즘 틈만 나면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해 주세여’, ‘가라사대 게임 해 주세여’, ‘술래잡기 해 주세여’ 등의 요구가 빗발친다. 카페 안에서 책을 읽을 때는 뭔가에 홀렸던 것처럼, 아주 잠깐의 시간에도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시키려는 듯 알차게 뛰어다녔다. 아주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Y네는 먼저 갔다. 아내에게 ‘우리는 조금 더 걷다가 가자’고 했다. K네는 내일 가족여행을 가야 하니 집에 바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K네 식구도 조금 더 있다가 간다고 했다. 자녀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 산책 대신 놀이터로 갔다.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다. 공원에서 K네와 헤어졌고 저녁은 밖에서 먹었다. 순전히 아내와 나의 욕구에 따라 음식을 선택했다. 냉면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은 갈비탕(매우 질 좋은)을 먹었으니 아이들이 완전히 배제된 건 아니었다. 잘 먹기도 했다. 물론 만족도는 아내와 내가 더 높았겠지만.


집에 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눕히기 전에 시윤이에게 이야기를 좀 했다. 아까 놀이터에서 놀 때 보였던 시윤이의 태도에 관한 거였다. 놀이터에서도 바로 얘기하긴 했는데 집에 와서 조금 더 자세히, 진지하게 얘기했다. 시윤이는 울었다. 시윤이를 혼낼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혼내는 것처럼 얘기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윤이는 뭔가 자기가 억울하게 지적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압박이 느껴졌는지 아무튼 울었다.


시윤이는 속상했는지 자기 전에 늘 하는 뽀뽀도 거부했다. 어제의 행복했던 데이트는 하룻밤의 꿈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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