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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6. 2024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23.06.29(목)

아내는 오늘 저녁에도 나가야 했다. 오늘은 미용실 예약이 잡혀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내가 머리를 하는 건, 할 때마다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펌을 하는 건 더더욱. 내가 옆에서 부추기고 부추기고 또 부추겨서 겨우 실천에 옮겼다. 아내도 미용실에 다녀오면 항상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 된다. 육아가 바쁘고, 살림이 바쁘다 보니. 최근에는 아내가 먼저 ‘미용실에 한 번 갈까?’ 이런 말을 많이 하길래 내가 적극적으로 떠밀었다. 머리 스타일까지 구체적으로 제안하면서.


덕분에 어제에 이어 또 자녀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게 됐다. 사실 아무것도 없다. 언제나처럼 밥 먹고 씻고 눕고. 이게 전부다. 그나마 오늘은 아이들이 오랜만에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사다리 타기까지 해서 재미있게 골랐는데, 역시나 미안한 상황이 벌어졌다. 사다리 타기를 통해 당첨된 시윤이가 원하는 책을 골랐다. 한 장, 두 장 넘어갈 때마다 어찌나 졸리는지.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는 일이 많아졌다.


“아우. 미안. 미안”

“아빠. 많이 피곤해여? 그만 읽어도 돼여”

“아니야. 괜찮아”


속 깊은 소윤이가 저런 말을 할 때마다 고맙기도 하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자녀가 내 상황과 처지를 너무 빨리 이해하는 건 괜히 안쓰러워서 싫기도 하면서 어떤 날은 ‘아빠도 피곤하다’면서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화는 내지 않지만 엄청나게 히스테릭한 언어와 표정으로 삼엄한 분위기를 만들고. 부모란 얼마나 불완전하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나의 하루를 돌아볼 때마다, 매일 한다.


아내는 몇 년 만에 꼬불꼬불한 머리를 하고 등장했다. 난 더 짧게 잘랐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아내는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지금도 엄청 파격적으로(?) 짧은 거라고 하면서. 아무튼 아내가 머리를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다 산뜻하고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서윤이를 안방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바닥에서 자던 소윤이가 깼다.


“아빠. 왜여?”

“어 어, 어, 아니. 그냥 너희 잘 자나 보려고 왔지”

“아빠. 잘 자여. 사랑해여”

“그래, 소윤아. 사랑해. 잘 자”


설마. 소윤이가 이미 몇 번은 깨어 있었던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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