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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8. 2024

네, 막 출발해요

23.07.02(주일)

처치홈스쿨 엄마들이 모임을 가지기로 한 날이었다. 마침 오후 예배도 없어서, 엄마들은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빠른 해방을 맞게 됐다. 남은 아빠들과 자녀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지 아니면 각자 집으로 흩어질지 확실하게 정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난 어제 아이들에게 미리 얘기했다.


“내일 엄마들이 떠나고 나면 혹시 다른 아빠들과 자녀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그냥 집으로 올 수도 있으니 그걸로 너무 속상해 하지 마”


엄포는 아니었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날씨가 꽤 더웠다. 어디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었다. 다른 아빠들과 자녀들은 우리 집 바로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간다고 했다. 순간 고민을 했지만, 원래 생각대로 집으로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어제 얘기를 나눈 게 있어서 그런지 많이 속상해 하지는 않았다. 다 함께 가는데 자기들만 못 가면 더 아쉬웠을 텐데.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집에 가면 만화영화를 보자고 했다. 팝콘도 튀겨 먹으면서.  그것 때문에 괜찮았는지도 모르겠다.


서윤이는 낮잠을 자야 했다. 서윤이를 재우다가 나도 잠들 뻔했다. 사실 그러지 않을 때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행히(?) 잠을 깨고 거실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이 뭔가를 하자고 하면 기꺼이 응하려고 했는데 딱히 그런 게 없었다. 소파 앞에 누웠는데 서윤이를 재울 때처럼 거의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푹 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깨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사실 거의 잔 거나 다름없었다. 1시간 30분 정도를 그렇게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몸이 개운했던 걸 봐서는 은근히 푹 잤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책을 읽고 있었다. 꽤 고마웠다. 나의 피로회복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다니. 아이들이 뭘 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가장 적극적인 도움이었다. 서윤이만 빼고 만화영화를 보면 서윤이가 너무 서운해 할 테니 서윤이가 깨면 같이 보자고 했다. 서윤이도 꽤 오랫동안 잤다. 거의 2시간을 잤다. 서윤이가 깰 무렵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저녁을 준비했다. 밥을 새로 하고, 교회에서 받은 된장국도 끓였다.


그때 공원에 갔던 K에게 연락이 왔다. 중국음식점에 저녁을 먹으러 갈 건데, 함께 갈 생각이 있으면 나오라고 했다. 이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오늘은 그냥 집에서 계속 쉴까 하다가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소윤아, 시윤아. 지금 다들 00공원에 있고, 조금 이따가 000 가서 저녁 먹는대. 너네도 나가서 같이 먹을래? 아니면 집에서 먹을래?”

“저녁만 먹고 바로 와여?”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더 놀 수도 있겠지?”

“그럼 나가면 만화영화 못 봐여?”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시간이 늦어져서?”

“저는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어여”


만화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도 워낙 컸는지 의외로 둘 다 괜찮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한 번 더 물어봤다.


“그냥 집에서 먹을까? 그럼?”

“아빠는 어떻게 하고 싶어여?”

“아빠는 상관없어. 너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럼 나갈래여”

“그럴래? 오늘 만화영화 못 봐도 괜찮아?”

“네. 다음에 보면 되져”


공원으로 갔더니 아직 놀고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바로 합류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바람도 많이 불고 선선해서 놀기가 좋았다고 했다. 그래도 집에서 쉬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몸이 개운했다. 저녁 먹고 나서 헤어지더라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조금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그 중국음식점에 꽤 자주 가서 지겨울 법도 했는데 아이들은 오늘도 전혀 그런 기색 없이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도 공원에 가서 조금 더 놀았다. 자유부인이 된 엄마들이 곧 올 것 같다고 해서 다들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갈 생각인 듯했다. ‘자유부인이 된 아내에게는 웬만큼 급하지 않으면 연락하지 않는다’가 내 나름의 신조라 다른 아빠들에게 엄마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곧 올 것 같았던 엄마들은 생각보다 오지 않았다. ‘이제 출발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잠깐 백화점에 들렀다’고 했고, ‘잠깐 자연드림에 들렀다’고 했다. ‘자유부인이 된 아내가 돌아왔을 때 모든 육아의 일과를 끝내놓기’가 또 하나의 신조인데, 아내가 돌아와서 함께 육아퇴근 준비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아내에게 다른 엄마들과 헤어지더라도 집에 오지 말고 자유시간을 더 누리고 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막 출발했다’는 배달가게의 거짓말처럼 아내들이 오지 않자 다른 아빠들은 그냥 먼저 집에 가야겠다고 했다. 날도 급격히 어두워져서 더 놀기도 어려웠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부지런히 아이들을 씻겨서 잘 준비를 하고 눕혔다. 자기 전에 소윤이가 고른 책을 읽어줬는데 역시나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는 데는 성공했다. 서윤이가 낮잠을 늦게 자서 오늘도 다들 일찍 잠들지 못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잠들었다.


아내는 K의 아내와 따로 시간을 더 보냈다고 했다. 드라이브도 하고 산책도 하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 아내가 무척 좋아 보였다. 내 느낌에는 혼자 자유시간을 보냈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물론 매번 누군가와 만나는 것도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자주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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