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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8. 2024

첫째의 투정과 욕구불만

23.07.03(월)

소윤이는 어제 자기 전에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아내가 저녁에 어딘가에 가고 없는 날이면 항상 편지를 쓴다. 어제 편지의 주된 내용은 ‘오늘은 꼭 내 옆에서 자라’였다. 엄마들 모임을 마치고 귀가한 아내는 편지를 보더니 오늘은 소윤이의 뜻에 응해줘야겠다고 했다. 나도 아이들 방에서 자기로 했다. 어제는 시윤이가 서윤이와 함께 바닥에서 자고 있었고, 소윤이는 2층에 있었다. 내가 먼저 시윤이 자리에 누웠고 아내는 씻느라 나보다 나중에 들어왔다. 아내가 씻는 동안 난 먼저 잠들었다.


새벽에 잠깐 깼을 때 보니 아내가 2층이 아니라 1층에서 자고 있었다. ‘왜 소윤이 옆에서 안 잤지?’ 싶었는데 잠결이어서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침이 되었고, 아내와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먼저 깼고 소윤이는 아직 자는 듯했다. 잠시 후 소윤이 소리도 들렸다. 소윤이가 짜증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자마자 왜 짜증을 내나 궁금했다. 지난번에는 자기가 엄청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시윤이가 깨웠다고 하면서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가 싶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누운 채로 발을 쾅쾅 구르고 콧바람을 내뿜으면서 감정을 표현했다. 소윤이의 소리를 들은 아내가 소윤이에게 물었다.


“소윤아. 왜 그래? 엄마가 소윤이 옆에서 안 자서 그런 거야?”

“네”


아내는 소윤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잘 준비를 다 하고 방에 들어왔는데 그때 마침 시윤이가 잠에서 깼다고 했다. 잠에서 깬 시윤이를 두고 2층으로 올라가기가 너무 미안해서 시윤이 옆에서 잔 거라고 했다. 상황을 아무리 설명한들 서운한 소윤이의 마음에 당장 위로가 될 리는 없었다. 게다가 다른 이유도 동생 옆에서 자느라 그랬다니, 자기가 그렇게 간절하게 편지까지 썼는데. 이게 아마 소윤이의 마음이었을 거다. 서윤이는 눈치 없이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언니는 맨날 엄마 옆에서 자잖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서윤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는 대체로 관대한 소윤이도 엄청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럴 만했다. 맨날 엄마 옆에서 자는 건 서윤이니까. 위로를 해도 모자랄 판에 매일 엄마를 빼앗아(?) 가는 녀석이 그런 말을 했으니 열 받을 만했다. 그래도 금방 괜찮아졌다. 진짜 괜찮아진 건지 아니면 안 괜찮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참아낸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격해진 감정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인기 많은 다둥이 엄마의 삶이란.


소윤이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자기들 잘 때 엄마와 아빠도 함께 누워서 수다를 떨다 자자’ 가 최근 소윤이가 요구한 사항이었다. 매일 그러자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하루만이라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닌 걸, 여태 못하고 있다. 뭐 이건 전적으로 나와 아내의 책임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육아퇴근 이후의 밤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포기를 못하는 거다.


아내와 나에게는 믿을 구석인 소윤이도, 요즘 왠지 모르게 예민한 짜증과 퉁명스러운 태도가 늘었다. 잘 못 배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참던 게 폭발하는 것도 아니고, 작정하고 그러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안 채워져서’ 그런 걸 거다.


그걸 아는데, 왜 첫째한테는 자꾸 기대하고 바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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