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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8. 2024

빵으로 산 칭찬

23.07.04(화)

퇴근하는 길에 집 근처에 있는 빵 가게에 들렀다. 퇴근할 무렵에는 이미 빵이 다 팔려서 문을 닫을 때가 많고, 열려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소금빵은 없을 때가 많다. 오늘은 문이 열려 있었고 소금빵도 남아 있었다. 빵을 많이 고르지는 않았고 소금빵을 포함해서 두어 개를 골라서 계산대로 가지고 갔다.


“아이들을 너무 잘 키우신 것 같아요”

“네?”

“아까도 사모님이랑 아이들이 왔었는데 아이들이 ‘이거 아빠 좋아하는 거니까 사자’고 하는데 너무 예뻐요”

“아,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칭찬은 들어본 일은 별로 없었다. 잘 못 키운 것처럼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아직 그런 평가보다는 응원과 격려를 받을 때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신선한 칭찬이었다. 자녀가 칭찬받을 때 부모의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게다가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녀석들을 보고 그랬다니. 매우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집에 오면서 생각해 보니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낮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저녁에는 내가 그러니까 같은 집에서 하루에도 두 번씩 빵을 사러 간 거다. 양이 많지는 않았어도. 사장님이 빵 가게 방문 및 구매 횟수와 나의 덩치의 상관관계를 타당하게 납득할 것 같았다. 진정한 빵 사랑꾼은 아내고 난 그저 소금빵 한정일 뿐인데.


저녁 먹고 난 뒤의 시간을 아내가 담당해 줬다. 보통 내가 가장 먼저 저녁을 먹으니까, 아직 아이들이 먹고 있을 때 바로 싱크대에 서서 뒷정리에 돌입해야 한다. 오늘은 엉덩이가 무거웠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미루려고 한 건 아니었고 조금 더 앉아 있다가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보. 내가 할게. 그냥 둬”

“아니야. 내가 하면 되지. 여보 좀 쉬어”

“여보가 쉬어야지”

“괜찮아. 오늘은 내가 할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알아서 씻으라고 했다. 난 소파에 앉아서 쉬다가 바닥으로 흘러내려왔다.


아내가 부지런히 움직여 준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아내가 말끔하게 정리한 주방을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후련했다. 결혼 10년 차가 되다 보니 나도 많은 부분에서 ‘아내화’가 이뤄졌다. 주방 정리도 대표적인 영역인데, 그래도 아내가 마음 먹고 하는 것과는 왠지 모르게 차이가 난다. 아내는 주방정리를 마친 뒤에는 짐을 싸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이번 주말에 아내와 아이들만 서울에 올라가는데 짐을 미리 부치기로 했다. 한동안 거실 소파의 한 쪽을 점령하고 있던 마른 빨래들을 정리하면서 바로 바로 상자에 넣었다.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안 힘들어”


처치홈스쿨이 잠시 방학이라 그래도 조금 여유가 생기기는 했다. 원래대로라면 하루 종일 교회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와서 녹초가 되었을 화요일인데.


오늘 아내가 서윤이에게 과감하게 팬티를 입혔는데 서윤이가 거실 러그 위에 오줌을 쌌다고 했다. 많이는 아니었고 가장자리에 조금 묻었던 것 같다.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아내가 급히 나와서 처리하며 서윤이에게 얘기했다.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감정들을 이성으로 제어하는 ‘서윤이는 잘못이 없다. 혼 낼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억누르려고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다그치듯 말했나 보다. 그렇다고 막 언성을 높이면서 혼낸 건 아니었는데, 서윤이는 서러움의 눈물과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아내는 급히 사과했고.


부모의 이 연약함과 부족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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