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Jan 18. 2024

더 늦어도 돼

23.07.05(수)

아내와 아이들은 수요예배를 드리고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함께 놀이터에 갔다고 했다. 동네에 있는 놀이터가 아니라 차를 타고 20여 분 정도 가야 하는 곳으로 갔다고 했다. 교회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거기로 가서 오후 내내 있었다. 날이 적잖이 더웠는데 다들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이들이야 뭐 노느라 힘든 것도 몰랐을 테지만, 아내는 왠지 녹초가 되었을 것 같았다. 그나마 오늘 저녁에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으니 아내에게는 휴식 아닌 휴식이 기다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내와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집으로 왔다. 한동안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대한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나를 맞이하는 적막함과 어두움이 반가웠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서 느끼는 고요와 평안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여보. 우리 이제 출발해요. 배고프죠?”

“아니야. 괜찮아”


배는 고팠지만, 정말 괜찮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조금 더 늦게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집에 딱히 먹을 게 없으니 밖에서 저녁을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러기로 하고 집에서 나왔다. 아내는 저녁을 먹고 바로 성경공부 모임에 가면 되니까 나도 차를 가지고 갔다. 집 근처 시장에서 만났다. 아내가 분식을 먹자고 했다. 아내가 먹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적당한 가격에 간단하게 아이들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다. 약간의 죄책감(?)은 느껴지지만. 요즘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매운 떡볶이도 제법 잘 먹어서 가능한 선택이다.


물론 오늘도 모두 잘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골고루, 서윤이는 튀김과 순대를 잘 먹었다. 서윤이는 순대에 있는 내장류를 아주 잘 먹었다.


“아빠. 고기 더 주세여”


고기라고 오해하고 있기는 했지만.


다 먹고 아내와 헤어지려고 했는데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는 교회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의 성경공부 모임이 취소됐다. 아내와 이미 헤어진 뒤였으면 아내에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했을 텐데, 함께 있을 때 들어서 그러기가 애매했다. 사실 은근히 반갑기도 했다. ‘반갑다’는 표현보다는 큰 안도감이 생겼달까. 아무튼 아주 든든했다.


문구점에 들렀다. 내일 생일인 K의 둘째에게 줄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다. 다들 깊은 고민 끝에 각자 하나씩 선물을 골랐다. 집에 와서 포장도 직접 했는데 시윤이의 포장 실력(?)이 많이 늘어서 깜짝 놀랐다. 손이 야물차기로는 소윤이가 월등했고, 시윤이는 완전히 내 과였다. 오늘은 나름대로 열심히 포장을 했고, 포장의 질과 마감도 우수했다.


“오? 시윤아. 뭐야? 포장 왜 이렇게 잘 했어? 여보. 시윤이 포장한 것 좀 봐봐”


진심으로 감탄과 칭찬이 나왔다. 시윤이도 특유의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서윤이는 어제 아주 짧은 팬티 생활을 접고 다시 기저귀로 돌아왔다. 그래도 며칠 동안 계속 변기 배변에 성공하고 있다. 똥은 물론이고 오줌도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똥은 자기가 워낙 불편하고 찝찝해서 오히려 잘 말 할 거고, 오줌은 흡수되면 딱히 불편할 게 없으니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둘 다 잘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빵으로 산 칭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