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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0. 2024

난 하나도 신이 나지가 않어

23.07.06(목)

아내와 아이들은 소윤이 피아노 수업이 있어서 오늘도 교회에 갔다. 같은 날 피아노 수업을 받는 K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내일 생일인 K의 둘째의 생일축하도 미리 한다고 했다.


난 오전 일정이 모두 집 근처였다. 점심시간 즈음 일정이 끝났다. 점심을 집에서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으니 후다닥 먹고 나오기 좋다고 생각했다. 돈도 아끼고. 마땅한 반찬은 없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결론적으로는 후다닥 나오는 데 실패했다. 밥 먹고 잠깐 소파에 앉아서 쉬려고 했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잠들지는 않았지만 비몽사몽인 상태로 30여 분을 있었다.


아내는 저녁에 미용실 예약을 해 놨다. 지난주에는 펌이었고, 오늘은 염색이었다. 염색도 나의 강력한 추천과 떠밀기로 추진됐다. 퇴근하고 얼마 안 돼서 아내는 나갔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서 먹이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밥 먹고 있어요?”

“응. 먹고 있지”

“여보. 난 예약이 5시였대”

“진짜?”

“어. 혹시 그래도 할 수 있냐고 여쭤봤는데 안 된대. 뒤에 바로 예약이 있어서”

“그래? 너무 아쉽네. 딱 염색하고 서울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할 수 없지 뭐. 여보. 난 햄버거 먹고 들어갈게요”

“알았어”


아내는 예약이 6시인 줄 알았던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와 아내의 통화내용을 무척 궁금해했다. 엄마가 예약시간을 잘못 알아서 오늘 못한다고 했더니 내심 좋아했다. 아내가 온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도 좋을까. 햄버거를 먹고 온다던 아내는 햄버거를 사서 왔다.


“왜 사 왔어?”

“그냥. 집에서 편하게 먹으려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아내의 감자튀김을 몇 조각 얻어먹었다(아, 이런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구나). 아이들은 차례로 씻고 있던 차였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이었다. 서윤이는 낮잠을 안 잤고. 내일은 장거리 이동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하고, 서울에 가면 강행군(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을 벌일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오늘은 정말 장난치지 말고 일찍 자야 한다’고 당부했다. 생각해 보면 매번 ‘일찍 자야 하는 이유’는 있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조금 더 설득력을 가미했다고 보면 된다.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 운동을 다녀왔고, 아이들은 한참 동안 잠들지 않다가 내가 오기 직전에 잠들었다고 했다. 낮잠을 안 잔 서윤이도 쉽게 잠들지 않고 들락날락하다가 아내와 진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아내는 그 사이에 집을 말끔하게 치웠다. 마치 누군가 우리 집에 방문할 때 준비하는 수준으로, 완벽에 가까운 깔끔한 정리였다.


“여보 혼자 있을 때 최대한 뭘 하지 않게 하려고”


오랜 기간 집을 비우는 아내의 남편을 향한 큰 배려였다. 며칠 동안 내가 먹을 반찬이나 음식까지 준비한다는 걸 한사코 말렸다.


“여보. 내가 알아서 먹으면 되지. 그거 준비하다 진 다 빼”

“여보 혼자서 안 차려 먹을 거잖아”

“아니야. 먹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연히 대충 때울 생각이었다. 그래도 아내가 최소한의 준비로, 구워 먹을 고기와 양념이 된 불고기를 사 놨다. 아침에 먹으라고 구운 계란도 사 놨다. 보통의 유부남들은 아내가 자녀들을 데리고 며칠 씩 집을 비우면 그렇게 신이 난다고 하던데, 난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영화 한 편 보고, 야구 보러도 한 번 가고, 또, 또, 또. 절대 신이 난 건 아니다. 아, 이런 젠장. 비 예보가 있네. 신이 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실망스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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