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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0. 2024

자취생 체험

23.07.08(토)

텅 빈 집에서 새벽같이 몸을 일으켜 축구를 하고 왔다. 일단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어제 미뤄놨던 설거지를 했다. 이번 ‘홀로 있는 기간’에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내가 떠날 때 만들어 놓은 집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였다. 해 본 사람은 안다. 현상유지가 얼마나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인지. 특히 지금처럼 혼자 있을 때라면, 하나 둘 미루기 시작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겉잡을 수 없게 된다. 즉시 실행, 즉시 정리가 생명이다.


그래도 주말이고, 어찌 보면 흔하지 않은 시간이니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날씨가 비협조적이었다. 계속 흐렸다. 일단 아침 겸 점심을 차리는 김에 냉장고에 있는 메추리알과 콩나물을 활용한 요리를 했다. 안 쓰면 그대로 버려질 위기였다. 메추리알 장조림과 콩나물국을 만들었다. 정말 맛있게 먹으려고 만든 게 아니라 재료 소진을 위해 만들다 보니 레시피를 안 보고 대충 감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정말 맛이 없었다. 메추리알은 백옥 피부에서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된 데 불과했다. 맛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콩나물국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나마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서 얼큰한 맛을 낸 게 다행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흐리던 하늘에서 또 비를 뿌렸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일단 소파에 누웠다. 너무 오래 자면 하루가 통째로 날아갈 테고 그건 너무 아까우니 적당한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잤다. 꽤 달콤했다. 평소에도 종종 자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과 부담이 있었는데 그런 거 없이 푹 잤다.


비는 여전히 내렸다. 그냥 집안일이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화장실 청소를 한참 했고, 빨래도 돌렸다. 소파에 쌓여 있던 마른 빨래도 갰다. 다 된 빨래를 건조기로 옮겼더니 또 개야 할 빨래가 생산됐다. 또 갰다. 다 갠 빨래를 서랍에 넣었고. 아니 뭔 놈의 집안일은 이리도 끝이 없단 말인가. 하루가 훌쩍 지났다. 뭔가 차려서 먹고 싶은 생각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허기가 질 때마다 과일이나 구운 계란을 먹는 게 다였다. 아내에게 나의 성과를 사진으로 찍어서 자랑했다. 엄청 편하긴 했다. 아이들을 챙기고 잔소리 할 일도 없으니. 다만 매 순간 왠지 모를 처량함이 느껴졌고 재미가 없었다. 역시나 혼자 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이들과 건강하게 오랫동안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최고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수고한 나를 위한 선물로 저녁에는 순대국을 포장해서 먹었다. 이건 좀 즐거웠다.


아내는 오늘도 힘과 의지를 내며 살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6시 쯤 일어났다고 했다.


“여보는 괜찮아? 애들은 말 잘 들어?”

“어, 그럼요. 자알 듣죠”


글로는 억양과 어투가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진한 역설적 표현이었다. 물론 어제처럼 괴롭기만 하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애를 써야 하는 시간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시윤이 자리에서 잤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갇힌(?)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휑한’ 느낌이 가장 덜 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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