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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0. 2024

원정을 간 아내의 고군분투

23.07.09(주일)

하필 오늘 같은 날 빌라 청소였다. 아내가 함께 있을 때 둘 다 못 일어나면 공동책임이지만 오늘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청소에 참여했다. 그래봐야 한 10여 분이기는 하지만 잠을 끊고 일어나는 게 달갑지는 않다. 청소를 마치고 와서 다시 잤다.


교회에 가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도 오고 메시지도 왔다. 통화할 때는 특별한 일이 있던 건 아니었고 단순 안부 전화였고, 메시지는 이유가 있었다. 시윤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집을 부린다고 했다. 집에서처럼 기다려 주고 받아 주고 하는데도 해결이 잘 안 된다고 했다. 기도 요청도 할 겸 메시지를 보낸 거다. 부디 ‘적당히 하고’ 상황이 종료되길 바랄 뿐이었다.


주일 아침인데 이토록 여유롭다니. 여유롭기는 했지만 매우 적적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그리움이 짙어지는 게 느껴졌다. 교회에 가니 더 심해졌다. 다른 자녀들을 보니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생각이 아주 많이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 없이 혼자 다니는 게 너무 어색했다. 뭐랄까 내면의 불안함이 드러났다고 해야 할까. 아내와 함께 있을 때의 안정감이 사라졌다.


오후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왔다. 딱히 할 게 없었지만 집에 있는 것도 왠지 아까웠다. 일단 시내로 나갔다. 아무런 목적과 이유도 없이 일단 나갔다. 잡화점에 가서 평소에 사려고 했던 걸 하나 사고 (무려 1,900원 짜리) 카페에 갔다. 일 할 때도 카페에 자주 가서 그런지 혼자 카페에 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데, 마땅히 할 게 없으니 갔다. 대신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아서 막상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곳으로 갔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고요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밀린 일기를 썼다.


나를 불쌍히 여기신 교회 사모님이 싸 주신 육개장이 오늘의 일용할 저녁 양식이었다. 점심에 먹었을 때도 너무 맛있었는데, 저녁에 또 먹어도 맛있었다. 내가 끓인 콩나물국은 쉴까 봐 계속 끓이기는 했는데 더 먹지는 않았다. 아마 오늘 육개장이 없었더라면 그냥 먹었을 텐데. 저러다 버려지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특별한 맛 없이 ‘콩나물 맛’만 나는 평범한 국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부모님 집에서 (아내)부모님 집으로 옮겼다. 그래도 시댁보다는 친정이 편하니까 아내의 고단함도 조금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돌아오는 날이 되면 얼마나 아쉽고 슬플까 싶기도 하고. 아내도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내의 표정도 아주 밝았다. 다만 엄청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아내는 밤에 꽤 이른 시간에 잠이 드는 듯했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일찍 자는 것 같았다. 아마도 자려고 자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잠들 때가 많은 듯했다.


오늘도 시윤이 자리에 누웠다. 역시나 휑하디 휑했다. 만약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내일 복귀’, ‘원래대로 수요일에 복귀’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내일 복귀를 선택할 것 같다.


물론 그 다음날이 되면 ‘섣부르고 경솔한 판단’이었다고 자책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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