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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2. 2024

뭔가 느껴지는 전염의 기운

23.07.11(화)

시윤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밥도 여전히 못 먹는다고 했다. 시윤이가 나아지기는커녕 소윤이도 열이 나고 뭔가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더니 금방 상황이 바뀌었다. 안 좋은 쪽으로. 안 좋아 보이던 소윤이가 확연히 아픈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제의 시윤이와 비슷했다. 열이 나고, 기운이 없고. 예상하고 우려했던 상황이었지만 막상 벌어지니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윤이는 아픈 것도 아픈 거고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속이 상한 듯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사촌 동생과 신나게 놀지 못하는 것도 싫고 이렇게 아프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도 싫고.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상태였다.


시윤이는 밤새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아침에도 해열제를 먹였다고 했다. 약효 덕분인지 시윤이가 조금 괜찮아졌을 때가 있었다. 다행히 그때 밥도 좀 먹고 호박죽도 좀 먹었다고 했다. 장모님이 해 주시는 호박죽은 시윤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다. 지친 시윤이의 몸과 마음의 위로를 하기에 충분한. 시윤이가 조금 나아졌을 때 소윤이는 계속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내는 소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시윤이는 한사코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해서 장인어른도 동행을 하셨다. 장인어른은 손주들의 방문을 맞아 휴가를 내셨다. 평소에 정말 정말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휴가를 내지 않는 장인어른이 기꺼이 휴가까지 내셨는데 소윤이, 시윤이 모두 아프게 된 거다. 엄마와 누나를 따라서 병원 안까지 따라가겠다고 하는 걸 겨우 설득해서 장인어른과 함께 차에서 기다리는 걸로 합의를 봤다고 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윤이도 수족구는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혹시 잠복기를 거쳐서 증상이 나타는 거 아니냐는 아내의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수족구일 경우에는 하루 정도 열이 나면 목에 수포도 생기고 엄청 아픈데 우리 애들은 그런 게 아니니 일단 수족구는 아닐 것 같다고 하셨다. 물론 진찰에 의한 판단이니 언제든 증상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서윤이가 유일하게 멀쩡했지만, 서윤이도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내도 걱정이었다.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기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걸. 아프면서 속상한 소윤이의 불손한 태도와 아파도 떼를 쓸 때는 쓰는 시윤이의 태도, 또 수시로 엄마를 불러대며 찾는 아이들의 부름을 받아내느라 아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프니까 웬만하면 다 받아줘야 하고. 정신력과 친정의 보살핌으로 겨우 버티는 듯했다. 그나마 친정이라 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는 게 다행이었다. 얼른 집에 오고 싶다고 했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원래대로면 내일 와야 하지만 내일도 아이들이 이런 상태면 오히려 더 머물러야 할지도 몰랐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아예 이번 주를 통으로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도 염두에 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 다 잠깐 나아졌다가 다시 열이 오른다고 했다. 아마도 해열제의 효과가 발휘될 때는 조금 나아졌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지속적인 고열인 상태가 가장 위험한 거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건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긴 했다. 아내가 찍어서 보내 준, 자고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 사진을 찍고 있을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것도 안쓰럽고.


바라기는 내일 아침에는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먼저 증상이 나타난 시윤이라도 좀 나아지면 좋겠는데 그건 내 바람일 뿐이다. 오히려 서윤이까지 가세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손이나 발에서 수포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없이 먼 거리를 갈 때마다 꼭 누군가 아팠다. 아주 예전에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친구 집에 갔을 때는 소윤이가 아팠고,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친구 집에 갔을 때는 서윤이가 아팠고, 이번에는 이런 사태가 벌어졌고.


“여보. 난 여보 없이 어디 가면 안 되나 봐. 애들한테도 이제 아빠 없을 때는 오지 말자고 했어”


나의 존재 유무가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마치 징크스처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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