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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2. 2024

이러다 아내가 쓰러지겠는 걸

23.07.12(수)

아내는 밤새 잠을 설쳤다고 했다. 시윤이는 괜찮았는데 소윤이가 밤새 열이 나고 끙끙 앓았다. 당연히 아내도 잠을 설친 수준이 아니라 거의 못 잔 듯했다.


“아침이 왜 이렇게 안 올까. 밤이 너무 길다”


아침 7시 무렵에 온 아내의 첫 메시지였다.


아내의 첫 일정은 병원이었다. 상태가 안 좋은 소윤이도 그렇고 어제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잘 못 먹고 정상이 아닌 시윤이까지, 링거를 맞기로 했다. 아내가 둘이 나란히 누워서 링거를 맞는 사진을 보내줬다. 링거의 효과가 바로 나타났는지 둘 다 조금은 기력을 찾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기력을 잃었다 찾았다를 반복하는 동안 아내는 지속적으로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버티는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아내는 하루라도 빨리 집에 오고 싶어 했지만 오늘 집에 오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을 하고 예매했던 기차표를 취소했다. 내일 기차표로 다시 예매를 했다.


“근데 내일은 갈 수 있을까?”

“그러게. 매일 예매해 놓고 순차로 취소해야 하나”


아직 멀쩡했지만, 아내와 나는 잠정적으로는 서윤이도 곧 언니와 오빠의 전철을 밟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후쯤 아내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아내는 매우 격앙되었지만 격앙을 표출할 만큼의 힘이 없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시윤이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시윤이와 통화 좀 해 달라고 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시윤이의 첫 번째 징조이니 이걸 반가워해야 하나. 아무튼 시윤이와 꽤 길게 통화를 했다. 나와 통화한다고 해서 바로 시윤이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잠시 소강상태를 갖게 되는 효과라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아내에게도 시윤이에게도. 신나게 득점을 올리는 상대방의 흐름을 끊기 위해 마운드를 방문하는 감독처럼. 실제로 감독이 올라가서 뭐 엄청 중요한 말이나 역할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한 번 갔다 오는 걸로 분위기를 끊는 것 뿐.


며칠 사이에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일상에 익숙해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움이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집에서의 동선이나 일의 순서 같은 것들이 그렇게 정렬되었다는 말이다. 안방에는 옷을 갈아입을 때 말고는 들어갈 일이 없었고, 거실 소파에 앉을 일도 없었고, 공부방에 들어갈 일도 없었다. 나의 생활 반경은 오로지 주방과 작은방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모두 눕히고 근처에 있는 형님(아내의 오빠)네 집에 갔다고 했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제대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던 거다. 애들이 아플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간병으로 점철된 일정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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