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Jan 22. 2024

그립지는 않지만 적응은 필요해

23.07.14(금)

서윤이를 안방 바닥에서 재웠는데, 나도 그 옆에서 잤다. 서윤이 매트리스는 크기가 작아서 다리를 다 펴면 바깥으로 나가고 서윤이와 둘이 눕기에도 다소 좁아서 바닥으로 나가게 되지만, 그래도 서윤이 옆에서 잤다. 서윤이와 살결이 닿을 때마다 ‘엄청 뜨겁네’라는 생각을 했다. 잠결이라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피부에 닿는 서윤이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걱정이었다. 그래도 잘 자기는 했다. 끙끙거리지도 않았고 엄청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깨지도 않고 잘 자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서윤이는 침대 위 아내 옆으로 가고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자고 있는 서윤이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며 체온을 확인했다. 많이 떨어진 게 느껴졌다. 아직도 열은 있었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서윤이가 깨 봐야 더 정확하게 판단이 가능했지만 일단 어제보다 심해지는 양상은 아닌 듯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늦은 시간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나도 일찍 일어난 편이 아니었는데 모두 자고 있었다.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는 출근 준비를 막 마쳤을 때 쯤 깼고, 시윤이는 계속 잤다.


오전 일정만 소화를 하고 퇴근했다. 아내에게도 어제 미리 얘기를 했다. 아내는 기차역에서 나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기뻐했다.


“헤에? 진짜? 너무 좋네?”


거기에 예상한 것보다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나서 집에 더 일찍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알고 있었는데도 깜짝 놀랐다.


“아빠. 왜 이렇게 일찍 왔어여?”


오늘은 그래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을 돌봐야 하는 날. 마침 급한 일도 없었고.


다행히 서윤이는 정상을 향해 가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정상인처럼 멀쩡하지는 않았지만 웃음도 많아졌고, 활동도 많아졌고, 밥도 잘 먹었다고 했다. 아직 밥을 먹지는 않았고 아내가 죽처럼 끓인 걸 먹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먹었다고 했다.


아내는 엄청 부지런히 움직였다. 내 집이니 할 일은 많고 할 사람은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내는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정을 찾은 듯했다. 오히려 내가 적응의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아주 작은 생활 반경을 유지하며 스스로 최소한의 어지럽힘과 더럽힘을 허용했던 며칠 간의 삶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이들은 전방위로 다니며 곳곳을 어지럽혔고, 밥을 한 번 먹을 때마다 각종 설거짓거리가 대량생산 됐다.


“여보. 그리운 거 아니지? 우리 없을 때가?”

“에이”


그리운 건 아니었다. 분명하게. 하지만 적응은 필요했다.


점심을 먹고 아내가 서윤이를 재울 때, 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카페에 다녀왔다. 아내가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해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함께 나가는 걸 택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집에 있고 싶기도 했는데 잠깐이나마 바깥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나 보다. 사실 시윤이는 약간 선택의 제한이 있었다. 소윤이가 따라 나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자기도 나가겠다고 한 거다. 아내가 서윤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가면 혼자 있어야 하는데 시윤이는 그런 상황을 진심으로 무서워한다.


차를 타고 카페에 가는데 너무 졸렸다. 괜히 나왔나 싶었다. 노래를 불러가며 겨우겨우 카페에 도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졸듯 말듯하며 갔다. 카페 사장님께서 젤리와 초콜릿을 주셔서 그걸 나눠먹었다. 그나마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서윤이는 물론이고 아내도 자고 있었다. 아내는 일어날 기색이 안 보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에게 보드게임이나 뭔가를 함께 하자고 하려는 눈치였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실에 드러누웠다. 나도 너무 피곤했다. 여느 때처럼 자는 듯 아닌 듯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한 시간 넘게 보냈다. 잠깐 정신을 차릴 때마다 소윤이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일찍 퇴근한 아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해서 조금 미안했지만, 내일도 주말이니 내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우선 내 피로를 달랬다.


아내가 먼저 일어났고 서윤이는 그 뒤로도 한참을 잤다. 거의 3시간을 넘게 잤다. 일어나서 저녁 먹으면 바로 다시 자야 할 시간일 때까지 잤다. 교회 사모님께서 피자를 사다 주고 가셔서 그걸로 저녁을 해결했다. 언제부터인가 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윤이와 시윤이는 적당히 먹었고, 아내도 마찬가지였고, 역시나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피자보다는 밥을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따로 서윤이 몫을 남기지는 않았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서윤이는 다행히 더 좋아졌다. 시윤이도 이렇게 하루 정도 좋다가 갑자기 다시 나빠져서 혹시나 서윤이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도 아내와 나를 크게 힘들게 하지도 않았고 오늘은 별로 다투지도 않았다. 고마웠다.


아내는 저녁에 교회에 갔다. 여전도회 특송이 있기도 했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왠지 교회도, 교회에서 만날 사람들도 그립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 잘 준비는 아내가 나가기 전에 이미 다 끝낸 상태였다. 꽤 이른 시간이었다. 아내가 가고 조금 더 있다가 각자 자리에 누웠다. 서윤이는 일어난 지 채 3시간도 되기 전에 다시 눕게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피곤해 보여서 금방 잠들 것 같았고, 서윤이는 한참을 안 잘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눕히고 나왔는데 한참 있다가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보니 서윤이였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없어서’라고 얘기했다. 잠깐 안아서 위로를 해 주고 나니까 안방에 가서 자고 싶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거의 잠들기도 했고, 아직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니 약간의 특혜를 줬다.


서윤이는 안방 침대 위에 가서 누웠고, 물을 마시겠다는 핑계로 5번도 넘게 나왔다가 들어갔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고,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진심으로 웃으며 맞아줬다. 마지막에만 ‘서윤아, 그래도 이제 너무 많이 나왔으니까 이제 그만 자’라고 얘기했다.


그 뒤로는 안 나왔다. 오히려 내가 몇 번이나 들어가서 이마를 짚어보고 뽀뽀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물의 상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