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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2. 2024

재택 여름성경학교

23.07.15(토)

아이들 여름성경학교가 있는 날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특히 소윤이의 기대가 컸던 여름성경학교였다. 안타깝게도 참석을 못 하게 됐다. 다름 아닌 소윤이와 시윤이의 구내염 때문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상태는 정상이었고, 증상도 아예 없었지만 워낙 전염력이 세다 보니 혹시 모를 전염에 대비해 참석하지 않기로 한 거다. 소윤이는 이것 때문에 더 힘들어했다.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하지 못하게 될 걸 생각하니 더 속상했다고 했다. 오늘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니 며칠 동안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충분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당일이 되니 아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온라인으로 생중계 되는 여름성경학교 현장을 보며 찬양도 따라 부르고 예배도 함께 드렸다(생중계라고 하니 거창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주 낮은 화질의 영상과 자꾸 끊기는 음성을 겨우 겨우 송출 받는 수준이었다). 아내와 함께 공과공부도 했다. 아내도 나름대로 애쓰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렇게라도 아쉬움을 달래길 바라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하루 종일 같은 일정을 소화하는 건 불가능했다. 딱 그 정도가 한계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아내와 내가 나름대로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방편을 마련했다. 일단 점심 먹기 전에 이전부터 보려고 했던 만화영화를 보기로 했다. 팝콘도 만들어서 줬다. 캬라멜 팝콘으로. 다행히 설탕을 태우지 않고 성공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만족스럽게, 2시간 동안 만화영화를 봤다. 서윤이는 별로 흥미가 없었고, 보드게임을 가지고 와서 나한테 하자고 했다. 막내의 요청에 기꺼이 응했지만, 사실 서윤이는 아직 규칙을 모른다. 그냥 막 하는 거다. 규칙도, 순서도, 끝도 없는 보드게임에 나도 모르게 졸았다. 서윤이도 재미가 없었는지 어느새 내 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점심에는 장모님이 사 주신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양이 꽤 많았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팝콘을 먹어서 배가 좀 찼는지 많이 먹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구워주는 거라 질긴 힘줄 부분은 따로 잘라내고 살코기만 줬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 힘줄 부분을 야금야금 받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쉬움을 묵상할 틈이 없도록 일부러 괜히 분위기를 띄우고 그랬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도 지금 여름성경학교 하고 있는 거야. 지금은 간식 시간이야”


난 오전부터 계속 피로와 혈투 중이었다. 새벽같이 축구를 다녀온 후폭풍에 시달렸지만 딱히 잘 만한 순간이 없었다. 오후에는 잠깐 시내에 나갔다 오기로 했다. 그냥 집에만 있는 건 따분하고, 바람도 쐬고 싶다는 이유 말고도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과일빙수를 먹는 거였다. 아내가 처치홈스쿨 엄마선생님 모임을 할 때 갔던 곳이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자체 여름성경학교의 일환으로 마련한 시간이었다. 나가기 전에, 점심을 먹고 생산된 설거짓거리를 아내가 치운다고 했다. 딱 보아하니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여보. 그럼 나 잠깐 눈 좀 붙여도 될까?”

“어, 알았어”


시윤이 침대에 누워서 달콤한 낮잠을 잤다. 깊이 잠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거실과 주방에서 출발한 여러 소리가 귀에 들리기도 했다. 그 정도로 많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너무 힘들어서 한숨을 쉬는 아내의 소리, 시도 때도 없이 언니와 오빠에게 고함을 치고 짜증을 내는 서윤이 소리가 가장 선명하게 들렸다. 그래도 꿋꿋하게 잠을 청했다. 나도 피로를 좀 회복해야 남은 시간에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잠을 자지 않은 서윤이는 빙수 가게로 가는 길에 차에서 잠들었다. 덕분에 서윤이는 빙수를 구경도 못했다. 난 좀 불쌍했는데 아내는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고도 했다. 과일빙수의 가격이 꽤 비쌌는데 그렇다고 양이 엄청 푸짐한 건 아니었다. 어른들이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떠 먹기에는 너무 좋은 빙수였지만, 다둥이 자녀를 둔 가정에서 전투적으로 먹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빙수였다. 그나마 서윤이라도 없으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조금 더 만족스럽게 먹었을지도 모른다. 잠에서 깬 서윤이가 자기는 왜 빙수를 안 먹냐고 할까 봐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서윤이는 빙수를 먹기로 한 걸 아예 잊었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잡화점에도 들렀다.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없어도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 아내는 몇 가지 필요한 생활용품을 고르고 갑자기 나에게 옷을 입어보라고 했다. 사양하지 않고 입어봤고 마음에도 들고 어울리기도 하는 티셔츠 하나를 바구니에 담았다. 아내는 자기 옷은 안 골랐다. 필요는 하지만 마음에 딱 드는 옷을 고르기 어렵다고 하면서.


저녁도 밖에서 먹었다. 점심에 고기를 가장 많이 먹은 나는 별로 배가 안 고팠는데, 아내는 배가 엄청 고프다고 했다. 아마도 고기를 별로 안 먹었나 보다. 아이들도 배가 엄청 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저녁을 먹기는 해야 했고 집에 가서 차려 주자니 조금 귀찮은 시간이기도 했다. 칼국수와 비빔밥을 파는 곳으로 갔는데, 소윤이는 딱 정량을 먹었고 시윤이는 의외로 잘, 많이 먹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자체 여름성경학교의 마지막 순서가 남아 있었다. ‘다 함께 거실에서 자기’였다. 이것도 소윤이가 오래전부터 염원하던 일이었다. 엄마와 아빠와 한 곳에 누워서 이야기하다가 잠들고 싶다는 게 소윤이의 바람이었다. 그걸 오늘 하기로 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내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나도 적잖이 피곤했고. 아이들의 희망사항도 이뤄주고, 우리의 피로도 채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 소윤이 자리에 있는 매트리스, 시윤이 자리에 있는 매트리스를 꺼내서 거실에 깔았다. 서윤이가 눕는 매트리스도 옆에 붙여서 깔았다. 아직 10시도 되기 전에 온 가족이 거실에 누웠다. 아내는 거의 눕자마자 잠들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말을 걸면 잠깐 깨고. 그나마 나는 아내보다 조금 더 버텼지만, 나도 금방 잠이 왔다. 아마 아이들보다 우리(아내와 나)가 먼저 잠들었을 거다.


그래도 노력 많이 했다. 자체 여름성경학교 개최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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