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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2. 2024

벌레와 곰팡이

23.07.16(주일)

허리가 엄청 아팠다. 이리저리 뒹굴다가 서윤이가 자던 자리에서 좀 오래 잤는데 너무 불편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만족스러운 듯했다. 비록 엄마, 아빠와 충분한 수다를 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함께 잤다는 사실이, 자다 깼는데 모두 한 곳에 있다는 사실이 아주 좋았나 보다.


“아빠. 우리 오늘도 이렇게 자면 안 돼여?”


소윤이는 이렇게 물어볼 정도였다. 물론 그건 안 된다고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오늘까지 자가격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완전히 정상이었고, 서윤이는 아직 목이 조금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전염 방지를 위해 오늘까지는 집에 있기로 했다. 덕분에 이번 주도 나 혼자 교회에 갔다. 혼자 교회에 갈 때의 장점은 아침에만 유효하다. 아이들이 나갈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엄청 여유롭다. 그 후로는 장점이 없다. 특히 교회에 가면 외롭기 그지없다. 대부분 가족 단위의 성도들이라 더 그렇다. 가족 없이 홀로 방문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됐다. 얼마나 깊게, 오래 간직할지는 모르지만.


아내는 오히려 홀로 교회에 가는 나를 부러워했다. 혼자 집에 남아 세 자녀와 함께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본인의 상황에 비하면 내가 훨씬 좋아 보였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한 듯했다. 이유는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서윤이가 난리를 피워서 훈육도 하고 그러느라 예배를 끝까지 못 드렸다고 했다. 메시지로 간단히 아내의 상황을 전달받았다.


오후예배까지 마치고 서둘러 귀가했다. 아내와 서윤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식탁에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밥과 김이었다.


“엄마는?”

“엄마는 주무셔여”

“아, 그래? 서윤이 재우면서?”

“네”

“서윤이 언제부터 잤는데?”

“아까 예배 드릴 때부터 막 울고 그래서 엄마가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계속”


엄청 오랜 시간이었다. 아내도 같이 자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으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가 고팠을 테고 자기들 나름대로 밥을 차려 먹는다고 먹은 게, 그 밥과 김이었다. 그릇에 제대로 떠서 먹기라도 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밥을 얼렸던 통의 뚜껑에 덜어서 먹고 있었다. 김도 제대로 자르지도 못하고 먹을 때마다 손으로 뜯다시피 해서 먹고 있었다. 그냥 둘이 그러고 있는 모습이 뭔가 너무 미안했다. 차라리 제대로 차려 먹는 방법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뭘 먹든 저녁에는 제대로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윤아, 시윤아.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엄청 강력하게 원하는 건 없었고, 파스타와 돈까스 정도가 좁혀진 후보였다. 파스타는 집에서 해 주는 게 가능했고 돈까스는 나가서 사 먹어야 했다. 아내가 일어나서 나오면 의견을 묻고 정하기로 했다.


아내는 곧 나왔다. 서윤이는 조금 더 있다가 나왔고. 아내는 머리가 살살 아프다고 했다. 집에서 뭔가를 만들어 먹기 위한 고민도 과정도 귀찮은 듯, 저녁을 나가서 먹자고 했다. 돈까스도 팔고 파스타도 파는 곳에 가서 먹기로 했다. 금요일부터 남이 만들어 주는 커피를 못 마신 아내를 위해 저녁 먹고 커피도 한 잔 사 줬다. 비가 많이 왔다. 산책을 할 날씨는 아니었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잠깐 자연드림에 들렀다. 먹고 싶은 간식을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서윤이는 떠 먹는 젤리, 소윤이와 시윤이는 과자를 하나씩 골랐다. 2,000원을 상한선으로 정해줬더니 소윤이는 2,000원 짜리를, 시윤이는 2,090원 짜리를 골랐다. 2,090원 짜리 과자를 들고


“아빠. 이건 얼마예여?”


라고 묻는 시윤이에게 2,090원이라고 대답했더니


“아, 90원이 넘네”


이러면서 내려놓는 모습에 기꺼이 90원의 자비를 베풀었다.


집에 와서 각자 산 과자를 조금씩 나눠 먹었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에게 한 입씩 주고 과자를 얻어먹었다. 서윤이에게 남는 장사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씻었고, 서윤이는 씻겨줬다. 그렇게 각자 잘 준비를 했고, 아내는 주방 정리를 했다. 난 소파에 누워서 잠시 피로를 보충했다. 그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아내는 계속 피곤해했다. 어제도 많이 잤고, 오늘 낮에도 많이 잤는데 이상하게 계속 졸려 했다. 나에게도 가장 취약한 시간이었다. 나도 피로감이 최고조였다. 거기에 서윤이는 갑자기 떼를 쓰기 시작했다. 눈이 간지럽다는 이유를 대기는 했고,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걸 핑계 삼아서 더 고집을 부리고 안 자려고 했다. 그때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재활용 쓰레기 통에도 곰팡이가 생겼더라”


어처구니 없게도 그 말에 너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지”

“여보. 내가 곰팡이 얘기하는 게 싫어?”

“아니, 계속 곰팡이, 곰팡이 하니까”


서울 및 경기도 나들이를 떠났던 아내가 집에 오고 나서 ‘벌레와 곰팡이’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정체 모를 벌레가 자꾸 출몰했고, 원인이 뭔지는 몰라도 아이들 공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걸 알게 됐다.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아내가 보이는 찌푸린 얼굴과 불만 가득한 언어가 달갑지는 않았다. 곰팡이도 비슷했다. 워낙 습한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발견됐다. 물론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이고, 대수롭게 넘길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계속 찌푸린 얼굴과 말투를 마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생겼나 보다. 그냥 공감의 한마디를 했으면 됐을 걸, 차갑게 얘기했고 아내는 마음이 상한 듯했다.


그렇게 끝이었다. 아내는 별다른 인사 없이 먼저 자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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