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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2. 2024

걸어서 저 바다까지

23.07.17(월)

오전에만 일을 하고 퇴근했다. 함께 일하는 K가 먼저 제안했다. 계속 흐리고 비가 오다가 오래간만에 파란 하늘이 보이니 업무 의욕은 사라지고 놀고 싶은 욕구는 상승했다. 날이 맑기도 했고 덥기도 했다. ‘바닷가에 가서 놀까’하는 생각을 혼자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일부러 바닷가 쪽을 거쳐서 가며 동태를 살폈다. 평일 낮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아주 드물게 물 속에 들어가서 노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여보. 바닷가 갈까?”

“아예 물에 들어가러?”

“어. 너무 갑작스러운가?”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듣던 소윤이는 말없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었고, 아내와 나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물놀이에 필요한 튜브와 구명조끼, 끝나고 나서 필요한 옷과 수건도 챙겼다. 점심은 김밥을 먹기로 했고, 내가 집으로 오는 길에 찾아왔다.


우리 집의 장점이 많지만 그중 으뜸가는 걸 꼽으라면 단연 걸어서 해수욕장까지 가는 게 가능하다는 거다. 가는 거야 그렇다 쳐도 다 놀고 집에 올 때 차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건 엄청난 편리를 제공한다. 걷기 싫다고 하는 서윤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그래도 꽤 많은 짐과 함께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볕이 뜨겁기는 했는데 바람도 적잖이 불어서 춥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갔다.


사람이 정말 없었다. 그래도 구조요원들은 다 배치가 되어 있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구조요원분들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선크림을 바르고 호기롭게 바닷물을 밟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차가웠다. 날씨는 더웠는데 물은 아직 차가웠다. 상상 이상이었다. 잠깐만 담그고 있어도 발이 시리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쉽사리 몸을 담그지 못하고 그저 발만 담그고 있었다.


“얘들아. 아직 물이 너무 차갑네. 오늘은 그냥 모래놀이 하면서 놀아야겠다”


그래도 조금씩 적응이 되니 젖는 부위가 점점 올라왔다. 발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배로, 배에서 가슴으로. 완전히 물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물결의 끝이 이르는 모래사장에 누워서 차가운 물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놀았다. 나와 함께 물장구를 치면서 놀기도 했고, 모래놀이도 실컷 했다. 튜브는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앞으로 물이 더 따뜻해지면 숱하게 찾아올 바다와 인사하는 차원이랄까.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엄청 신나게 놀았다. 아내는 의자에 앉아서 우산을 펴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가능하다면 보호자 중 한 명 정도는 물에 젖지 않고 보호와 관리의 의무에 충실하는 편이 낫기도 하다.


2시간 정도 놀고 정리했다. 오히려 완전히 물에 들어가면 모를까 젖은 몸으로 계속 바람을 맞으면 너무 추울 것 같았다. 간이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따뜻했다. 거기서 대충 모래만 털어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다.


“얘들아. 너무 좋지. 걸어서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서 한 명씩 씻겼다. 몸 곳곳에 모래가 있는 만큼 평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씻겼다. 나는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는 서윤이를 맡았다. 아이들을 모두 씻기고 나서 나도 씻었다. 내 몸에도 곳곳에 모래가 한가득이었다. 차에 안 타도 되는 게 엄청난 혜택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간편한 과정은 아니었다. 꽤 번거롭고 품이 드는 일이었다. 한 번의 해수욕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앞과 뒤의 준비와 정리가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도 바닷가에 사는 이점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는 계절이 여름이다. 부지런히 나가려고 한다. 틈만 나면. 내 체력이 허락만 한다면.


다 씻고 나서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었다. 사이다를 넣어줄까 하다가 평소에 사이다를 먹지도 않는 아이들에게 굳이 사이다를 넣어주기가 싫어서 대체 재료를 마련했다. 우유와 탄산수, 그리고 꿀. 섞었더니 어렸을 때 먹었던 사이다 화채와 비슷한 맛이 났다. 그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단가의, 질 좋은 화채였다. 다들 잘 먹었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몇 번이나 그릇을 다시 채워가며 먹었다.


해수욕의 큰 단점 중에 하나는 너무 피곤하다는 거다. 몸이 막 노곤했다. 다행히(?) 금방 저녁시간이었다. 교회 사모님이 싸 주신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줬다. 미역국이 너무 맛있어서 한 끼 만에 동이 났다. 아이들 모두 더 받아서 먹었고, 아내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보. 남은 건 여기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놓을까?”

“그럴까? 아니면 그냥 큰 데다 한 번에 끓일까?”


저녁을 먹기 전에 아내가 이렇게 말했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남은 게 없었으니까.


낮잠을 안 잔 서윤이는 졸음이 쏟아지는지 또 칭얼대기 시작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짜증을 낸다. 건방지게. 그래도 요즘은 진심으로 불손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 엄한 훈육을 자주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기 훈육’을 할 때가 많았다. 모든 말과 행동이 그저 막내의 애교처럼 보여서.


아내에게는 ‘자유부인’을 제안했다. 거절은 없다. 제안만 있을 뿐. 아내도 함께 저녁을 먹고 나갔다. 저녁을 제법 이른 시간에 먹었다. 소윤이도 그걸 알았는지


“아빠. 우리 오랜만에 우노 할까여?”


라는 제안을 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서윤이도 함께 했다. 사실 서윤이 스스로도 별로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혼자 안 하는 것도 싫어서 반 억지로 참여하는 듯하다. 그래도 자기가 가장 먼저 끝내면 좋아하기는 한다. 깍두기 대접 받는 건 잘 모르는 것 같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루미큐브도 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보드게임을 했다. 서윤이는 거의 잠들기 직전이었다. 아까 샤워를 한 덕분에 양치만 하면 잘 준비가 끝이었다. 조삼모사 같지만 그래도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양치를 했다.


“아빠. 서윤이 양치 안 하지 않았어여?”


다 눕고 나서 시윤이가 얘기했다.


“아, 그러게. 오늘은 그냥 자자. 귀찮다”


셋 모두 오랜만에 물놀이에 많이 피곤했는지 잡담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아마도 눕자마자 잠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아까 씻겨서 홀가분했는데, 싱크대의 그릇들은 내 마음의 짐이 되는구나. 싱크대에 담가 놓으면 알아서 식기세척기로 이동하는 그런 기계는 누가 안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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