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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3. 2024

재택근무를 들켜버렸네

23.07.19(수)

오랜만에 수요예배를 드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굉장히 여유 있는 시간에 교회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나도 아내와 아이들 걱정을 덜 했다. 아내와 한두 번 통화를 하면서 아내의 상황이 그래도 괜찮다는 걸 느껴서 그랬나. 아무튼 수요예배를 함께 드릴 때의 여느 수요일과는 다르게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점심도 함께 먹었다. 아내는 가지밥을 만들었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K의 자녀들은 가지밥을 먹었고 아내와 K의 아내는 떡볶이를 먹었다. 설거지라도 하려고 했는데 아내와 K의 아내가 ‘괜찮으니 얼른 가서 일을 하라’고 하기도 했고(빨리 일하라는 재촉은 당연히 아니었다), 비록 설거지는 힘들어도 내가 빠지고 둘이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는 걸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해서 바로 나왔다.


교회 마당에는 여름성경학교 때 만들어 놓은 수영장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물도 받아져 있었고. K의 자녀들은 오늘 날씨가 좋으니 수영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잔뜩 품고 있었다. 그런 K의 자녀들을 본 소윤이와 시윤이도 ‘우리도 수영해도 되냐’고 물으며 한껏 기대를 했다. 날이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더운 것도 아니었고 바람도 꽤 많이 불었다. ‘아우, 추워서 안 돼’라고 얘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괜찮아. 딱 좋네’라고 얘기할 정도도 아니었다. 게다가 다들 한 번씩 고열이나 몸살을 겪은지 얼마 안 되기도 했다. 아내와 K의 아내는 물놀이를 시켜도 되는지 고민만 많이 하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해수욕장에 가서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모래놀이만 하는 안, 몽돌해변에 가서 모래놀이의 뒤처리 걱정을 안 하고 노는 안 등도 고민했다. 선택은 아내의 몫이었다.


“여보가 없으니까 뭔가 다 피하고 싶네”


난 오후 업무를 개시하기 전에 중고거래를 하러 갔다. 집에 선풍기가 하나 필요해서 주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좋은 게 나와서 바로 사러 갔다. 그때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갑자기 K네 집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내내 비가 오다가 모처럼 날씨가 좋아서 바깥활동을 안 하면 손해인 듯한 날씨였는데 야외가 아닌 실내를 선택한 거다.


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K네 집에 가고 없을 테니 집은 오롯이 내 차지였다. 중고거래를 한 곳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서 집으로 왔다. 집 근처에 있는 빵 가게 골목에 주차를 하려고 했는데 거기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K의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다. 아내가 혼자 내려서 빵을 고르고 있었다. 원래 아내와 아이들에게 얘기를 안 하고 집에서 일을 하려고 했는데 괜히 뭔가를 들킨 기분이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어쨌든 집으로 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은 최고의 사무실이 되기도 한다. 눈에 띄는 할 일을 외면하고 쉬고 싶고 눕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잠정적 업무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K네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K의 차를 얻어타고 K네 집으로 갔다. 자녀들은 행복해 보였다. 처음 기대했던 물놀이나 야외활동을 하지 못했어도 충분히 즐겁게 논 모양이었다. 아내들도 엄청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좋은 날씨가 조금 아깝긴 했지만, 아내들끼리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면 아내들의 모습은 확연하게 달랐을 거다.


K의 첫째와 시윤이는 체스를 두고 있었고, K의 막내와 서윤이는 은근히 어울려 놀고 있었다. 소윤이와 K의 둘째는 각각 혼자 노는 느낌이었다. K의 둘째는 형들의 체스 대결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듯했고, 소윤이는 혼자 책도 읽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그랬다. 소윤이는 다소 따분해 보였다. 소윤이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이기도 하다. 무작정 비위를 맞추는 것도, 무작정 어울리기를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안다.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 지를 알면서도 모르는 것 같은 게 문제지.


아이들 먼저 저녁을 먹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먹이고 나서 치킨을 반찬 삼아 저녁을 먹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만화영화를 봤다. 지난 주말에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와 함께 봤던 그 영화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봤지만 또 봐도 괜찮다고 했다. 시윤이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집중해서 봤고, 소윤이는 그에 비하면 집중도가 약했다. 중간에 어른들이 앉은 식탁에 와서 치킨을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금야금 먹은 게 거의 서너 조각은 됐다. 2시간 짜리 만화영화 시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꽤 늦은 시간이었으니 다들 엄청 피곤했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의 잘 준비를 기다리다가 먼저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금방 잠들었다.


모든 육아의 일과를 마친 아내는 오늘도 열심히 실내 자전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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