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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3. 2024

어제도 물놀이, 오늘도 물놀이

23.07.21(금)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교회에 갈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공식 일정이나 약속은 없었지만 교회 마당에 있는 수영장에 물놀이를 하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K의 아내와 교회 집사님 한 분과. 오전까지는 정확히 결론이 난 상태가 아니었다. 자녀들이 너무 원하니까 가서 물놀이를 하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물놀이를 하기에는 아직 조금 서늘할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각 집마다 아픈 지 얼마 안 된 자녀들도 있고. 아내는 혼자라도 자녀들을 데리고 와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도, 어제 너무 힘든 기억이 있어서 선뜻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물놀이를 하고 뒤처리도 힘들었지만 피곤함으로 충만한 자녀들을 상대하는 것도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난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결정을 했다. 모두 교회에 오기로 했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로 오면 집이 비니까 오후에는 집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아내와 아이들이 오는 걸 기다리지 않고 가려고 했는데, 아내는 나에게 줄 소금빵을 하나 샀다고 했다. 그걸 받아서 가느라 아내와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는 K의 아내와 자녀들도 태우고 함께 왔다.


평상복을 입고 걷거나 움직이면 금세 땀이 날 정도로 더웠지만, 추위를 느끼지 않고 물놀이를 할 만큼 더운 건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아예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왔다. 교회에 오자마자 바로 물에 들어갔다. K의 자녀들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들어갔다. 얼굴을 봤으니 바로 떠나면 됐는데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 아내의 힘듦이 극대화 될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너무 추울까 봐 걱정이었다. K의 둘째는 물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입술이 파래졌다. 본인은 안 춥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입술에 붉은기가 점점 사라졌다. 잠깐 밖에 나와서 쉬라고 의자에 앉혔는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식당에 가서 아주 커다란 솥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수영장에 있는 물에 비하면 양이 너무 적어서 도움이 될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해 봤다. 한 네댓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내가 땀이 뻘뻘 났다. 내가 물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 정도까지만 하고 집으로 왔다.


“여보. 너무 힘들면 전화해. 올게”


혹시라도 극한의 상황이 벌어지거나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난이 닥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의미였다. 다행히(날 안 불러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은 차원에서) 아내는 날 부르지 않았다. 아내는 저녁도 교회에서 먹는다고 했다. K의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배달을 시켜서 먹을 거라고 하면서 나에게도 와서 같이 먹자고 했다. 사양했다. 그냥 귀찮았다. 저녁 먹자고 교회까지 가는 게. 처음에는 금요철야예배를 생각을 못하고, 난 계속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릴 생각이라 더 귀찮게 느껴졌다. 교회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도 굳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고용한 집에서 능률 좋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혼자 있고 싶었다.


예배 시간에 딱 맞춰서 교회로 갔다. 서윤이는 오늘도 낮잠을 안 자서 무척 피곤했고, 시윤이는 갑자기 목이 아프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사실 조금 무리하긴 했다. 어제도 물놀이, 오늘도 물놀이에 몸을 쉬게 할 틈이 없었다. 갑자기 목이 아프다고 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목이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활력도 떨어졌다. 피곤해서 그런 것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본격적인 아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처럼 보였다. 교회에서 웬만하면 자려고 하지 않는 시윤이가 오늘은 먼저 눕겠다고도 했고, 잠들기까지 했다. 서윤이는 진작에 잠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깼다. 완전히 깬 건 아니었고 잠시 정신을 차린 거였다. 시윤이는 목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잠은 잘 잤다. 깊이 자는지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난 저녁을 안 먹었다. 그냥 어영부영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고요와 평화의 밤 시간이 되니 슬슬 허기가 느껴졌다.


“여보. 뭐 맛있는 거 시켜 먹을래?”

“아니, 괜찮아”

“왜, 배고프지 않아? 먹어. 닭똥집 먹을래?”

“아니, 괜찮아”

“왜, 먹지. 내가 사줄게”

“(씨익)”


아내 덕분에 오늘도 식단 관리에 실패했다. 다 아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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