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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4. 2024

어쩌다보니 딸들과 데이트

23.07.22(토)

아니나 다를까 시윤이는 아팠다. 축구를 하고 왔더니 환자가 되어 있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짜증이나 불만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아파서) 아내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목이 많이 아프다고 했고, 몸살처럼 기운이 없다고 했다. 아침에도 아무것도 못 먹었고, 여전히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그에 비해 소윤이와 서윤이는 멀쩡해서 다행이었다.


오후에는 소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나갔다 오기로 했다. 아픈 시윤이는 아내와 둘이 집에 남아 요양도 하고, 요양을 핑계 삼아 엄마를 온전히 소유할 시간을 누리기도 하고. 일단 점심까지는 집에서 먹고 나가기로 했다. 아내가 사 놓은 돼지고기를 가지고 불고기를 만들었다. 갖은 야채를 넣고 대충 감으로 만든 것치고는 먹을 만했다. 소윤이와 서윤이도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었다. 시윤이는 잠깐 자고 일어나더니 상태가 조금 괜찮아진 듯 보였다. 밥도 먹고 싶다고 해서 조금 차려줬는데 한 숟가락도 제대로 못 먹고 식탁에서 물러났다. 조금이나마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다시 축축 쳐졌다. 아내와 나는 인스턴트(지만 나름 괜찮은) 쌀국수를 먹었다.


소윤이와 서윤이는 나름의 기대가 컸다. 뭘 하고 싶냐고 했더니 둘이 같은 대답을 했다. 시내에 나가서 ‘대관람차’를 타고 싶다고 했다. 둘 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하던 것이긴 했다. 소윤이는 지난 데이트 때 백화점 휴무라 못 타기도 했고. 관람차를 타고 나서도 뭔가 할 게 있어야 했다. 소윤이는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했고, 서윤이는 바닷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가 바닷가 얘기를 한 건, 내가 먼저 제시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둘의 의견이 달랐다.


모든 기운을 잃고 침대에 누워 있는 시윤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에서 나왔다. 먼저 대관람차를 타기로 했고, 서윤이에게는 가는 길에 차에서 좀 자라고 했다. 서윤이도 며칠 동안 낮잠을 안 자고 열심히 놀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시윤이처럼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조금이라도 더 재우는 게 건강 유지의 손쉬운 방법이었다. 서윤이는 금방 잠들었고 백화점(대관람차는 백화점 꼭대기에 있다)에 도착해서 유모차로 옮겼다. 소윤이와 함께 옷 가게에 가서 옷 구경을 했다. 지난 번에 샀던 옷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색으로 하나 더 사려고 했다. 생각했던 옷은 색이 딱 두 가지 뿐이었고, 비슷한 디자인의 다른 옷은 여러 개의 색상이 있었다. 원래 사려고 했던 옷과 새롭게 눈에 띈 옷을 들고 가서 하나씩 입고 소윤이에게 보여줬다.


“소윤아. 뭐가 더 어울리는지 봐봐”


소윤이에게 첫 번째 옷과 두 번째 옷을 차례대로 입고 보여줬다. 소윤이는 고민 없이 얘기했다.


“처음 입었던 게 더 잘 어울려여”

“그치? 아빠도 그런 거 같았어”


옷을 계산하고 대관람차 탑승표를 끊을 때 쯤 서윤이도 깼다.


타면 별 거 아닌데 안 타 보면 궁금한 게 관람차다. 아주 높이 올라갔을 때는 조금 긴장이 되는 게 유일한 흥미 지점이랄까. 소윤이와 서윤이는 집에서 막대사탕을 챙겨왔다. 관람차를 탔을 때 먹겠다고 했다. 소윤이와 서윤이 나름대로의 즐거움 요소였다. 서윤이는 굳이 가방까지 챙겼다. 가방에는 텀블러 하나와 나름대로 ‘지갑’으로 쓰고 있는 것도 챙겼다. 텅 빈 지갑에는 막대사탕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소윤이와 서윤이는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보며 막대사탕을 빨아먹었다.


“소윤아. 별 거 없지?”

“네, 그래도 재밌었어여”


“서윤이는?”

“저는 너어무 재밌었어여”


관람차에서 내리고 나서는 지하 1층에 있는 식품관 구경을 했다. 혹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사 줄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둘러봤는데 그럴 만한 건 딱히 없었다. 바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아빠. 저는 바닷가에 가고 싶은데에”

“그래. 근데 오늘은 언니가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하니까 도서관에 가자. 언니가 항상 양보하잖아”


소윤이는 계속 이것저것 책을 찾았다. 막상 읽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았고 뭔가 열심히 찾기만 하는 듯 보였다. 서윤이는 처음에는 책 몇 권을 읽어줬는데 금세 흥미를 잃었다.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자기는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서윤아. 언니 좀 기다려주자. 언니가 책도 찾고 읽고 있잖아”


그래도 서윤이가 막 떼를 쓰고 그러는 건 아니었다. 웃으면서 얘기했다. 지루해도 짜증 내지 않고 오히려 나와 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소윤이는 책 두 권을 빌리겠다고 했다. 하나는 꽃 종이접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고, 하나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에 관해 알려주는 책이었다. 종이접기 책은 자기가 볼 책, 나머지 하나는 시윤이에게 갖다 줄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나와서 바로 집으로 갔다. 시윤이는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단호박도 조금 먹었다고 했다. 잠도 많이 잤고. 실제로 집에 가서 보니 얼굴도 조금 나아졌고, 말과 행동도 더 많아졌다. 여전히 정상 상태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집에서 나가기 전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아이들 저녁은 간장떡볶이였다. 아내가 제안했고, 내가 만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먹을 만했다. 아이들에게는 반응이 좋았다. 시윤이도 잘 먹었다. 시윤이는 밥과 낮에 한 불고기, 떡볶이를 모두 잘 먹었다. 셋 중에 야채를 가장 안 좋아하는 서윤이는 아내와 나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떡만 골라 먹다가 아내나 내가 야채도 먹으라고 하면 그제야 하나씩 집어먹었다.


저녁도 다 먹고 주방 정리도 다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누웠다. 그냥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바로 정신을 잃었다. 서윤이는 마침 기저귀에 똥을 싸서 닦아주는 김에 다 씻겼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씻었다. 소윤이는 샤워를 했고, 시윤이는 간단히 씻었다. 소윤이가 샤워를 하는 덕분에 꽤 한참 동안 거실에 누워 있었다.


“여보. 애들 다 준비됐어요”

“어어어”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고 나와서도 정신을 차리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시윤이는 가장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낮에 너무 많이 자기도 했고, 밤이 되니 다시 몸이 조금 안 좋아졌다. 목은 여전히 많이 아프고, 콧물까지 많이 났다. 코가 막히니까 괴로웠나 보다. 소윤이야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오는 게 일상이지만, 시윤이는 코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견디기도 힘든지 몇 번이나 나와서 코가 막혀서 힘들다고 했다. 딱히 해결해 줄 만한 방법은 없었다.


결국 아내가 시윤이 옆에 가서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랬더니 조금 안정이 됐는지 그제야 잠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함께 시간을 조금 더 보내다가 아내가 먼저 누웠고, 난 조금 더 있다가 잤다. 오랜만에(그래봐야 한 2-3일 만에) 서윤이를 안방으로 데리고 가서 자고 싶었다. 오늘은 시윤이가 서윤이 옆으로 와서 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서윤이를 안고 빠져나오려는데 등 뒤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아빠하”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방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어, 소윤아”

“아빠. 뭐 해여?”

“아, 서윤이 안방으로 데리고 가려고”

“왜여?”

“아, 어, 그냥. 서윤이 너무 더운 것 같아서”

“아, 알았어여. 잘 자여”


순식간에 생각해 낸 대답치고는 제법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서윤이는 보송보송했다. 그래도 왠지 찜찜했다. 소윤이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냥 작은방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윤이 자리, 그러니까 소윤이 밑에서 자기로 했다.


“아빠. 시윤이 자리에서 자게여?”

“어, 소윤아. 잘 자”

“아빠 잘 자여”


죄 짓다가 걸린 것 같은 이 찜찜함과 미안함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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