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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4. 2024

아낌 없이 주는 첫째

23.07.23(주일)

시윤이는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아 보였다. 증상은 비슷했다. 목도 여전히 아프다고 했고 콧물도 가득 차서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열도 약간 있었고. 대신 활력이 있었다. 말과 행동만 보면 정상이었다. 먹으려고 하는 의지도 생겼다.


눈을 뜬 건 꽤 이른 시간이었는데 누워서 시간을 한참 보냈다. 그러다 보니 또 시간에 쫓기게 됐다. 아침 식사로 뭘 차려줘야 할 지가 항상 큰 고민이다.


‘계란 삶아서 줄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그냥 계란 삶아서 줄까?”

“대박. 나도 지금 딱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계란을 삶아서 두 개씩 줬다. 약간의 게으름으로 인해 다소 부실한 아침 식사를 제공한 것이 미안했지만, 이럴 때마다 대는 핑계 아닌 핑계가 있다.


“괜찮아. 주일에는 점심 일찍 먹으니까”


시윤이는 교회에 가되, 아동부 예배는 드리지 않고 어른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마스크도 썼다. 막상 교회에 가니 아동부 예배에 가고 싶은 마음을 떨쳐내기 어려웠는지 아동부 예배실 앞에서 조금 고민했다. 너무 가고 싶어 해서, 마스크 절대 벗지 말고 점심식사도 엄마나 아빠가 올 때까지는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조건을 걸며 보낼까 했는데, 시윤이가 스스로 어른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다. 소윤이와 서윤이만 아동부 예배에 갔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소윤이가 서윤이를 데리고 올라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간다고 한 것 같았다. 자기 의지로 아동부 예배에 간 이후로 중간에 온 건 처음이었다. 서윤이는 특유의 ‘으’하는 듯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왔다. 오빠만 엄마와 있는 게 질투가 나서 그런 건 아니겠지?


오후 예배 때도 아내와 나는 찬양단을 서야 했다. 점심 먹고 나서 바로 연습이었다. 평소였으면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른 친구들과 놀다가 올라왔을 텐데, 오늘은 시윤이는 먼저 데리고 예배당으로 올라왔다. 최대한 다른 아이들과 동선을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시윤이는 무척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떼를 쓰지는 않았다. 그냥 침울했다. 오히려 더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시윤아. 대신에 오늘 아동부 예배 때 나온 간식 하나 챙겨. 올라가서 그거 먹어”


오늘 간식으로 나온 라면과자와 주스를 시윤이에게 줬다. 아내와 내가 연습하는 동안 앉아서 먹으라고 했는데, 시윤이는 안 먹겠다고 했다. 기분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안 먹고 싶은 듯했다. 몸에 좋지도 않은 걸 굳이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기특한 녀석.


오후 예배를 드리고 나서 간단히 교회 청소를 하고 집으로 왔다. 원래는 저녁에 삼계탕을 먹어야 했다. 장모님이 삼계탕 재료를 보내 주셨다. 어제 먹으려다 미뤄졌고, 오늘 저녁에 먹으려고 했는데 오늘도 미뤄졌다. 내가 다른 게 먹고 싶었다.


“갈비 먹을까?”


얼마 전부터 양념갈비가 먹고 싶었다. 양념갈비의 그 ‘양념’ 맛이 계속 맴돌았다. 무슨 임산부도 아니고 그게 왜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계속 생각이 났다. ‘고기 외식’의 가장 큰 걸림돌은 뭐니 뭐니 해도 비용이다. 그래도 먹기로 했다. 사실 아픈 시윤이의 몸보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사람이 많아서 예약을 걸어놓고 동네 산책을 30분 정도 했다. 아침에는 계란, 점심에는 국수를 먹었고 저녁을 먹기 전에 산책까지 해서 그런지 역시나 오늘도 엄청나게 잘 먹었다. 세 자녀의 입에 들어갈 고기를 열심히 구웠고, 아내는 계속 날 챙겼다.


“여보. 여보도 많이 먹어. 굽기만 하지 말고”

“많이 먹고 있어. 걱정하지 마”


물론 많이 먹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고기 몇 점으로 양념갈비의 맛을 느끼고 나니 충분히 만족이 됐다. 진짜 임산부처럼.


저녁을 먹고 나서 바닷가 산책을 하려고 했는데 시윤이는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했다. 집으로 가려고 했더니 이번에는 소윤이가 아쉬워했다. 시윤이는 아내와 집으로 가고, 나와 소윤이와 서윤이는 산책을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아빠. 오늘 달고나 한 번 해도 돼여?”

“아니”


소윤이도 더 얘기하거나 조르지는 않았지만 은근하게 달고나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게 더 많은 소윤이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고 싶기도 했다. 바닷가를 따라서 걷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그럼 한 번 해”


서윤이는 자기도 하겠다고 몸을 들썩였지만, 그냥 언니가 하는 걸 구경만 하라고 했다. 소윤이는 매우 이쑤시개를 들고 매우 신중하게 작업에 임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서윤이는 언니가 나눠주는 달고나를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주제 넘게


“언니. 나 또 줘”


라고 계속 요구하기도 했다. 착한 소윤이는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매번 얘기했지만, 매번 더 줬다. 시윤이 것도 남겼다. 거금 3,000원을 쓰고도 ‘뽑기 체험’ 정도만 혼자 누리고, 나머지는 모두 동생들과 나눴다. 동생들에게 (특히 시윤이에게) 친절하지 않게 말을 한다고 자주 혼나지만, 사실 이런 배려와 헤아림이 훨씬 더 많다.


그걸 놓치는, 혹은 알고도 당연히 여기는 아내와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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