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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5. 2024

10년 전과 많이 다르구나

23.07.25(화)

오전에만 일을 하고 퇴근했다. 특별한 사유가 있기는 했다. 바람이 쐬고 싶었다. 가족들과 함께. 꽤 이른 오전 시간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여보. 오늘 오후에 나들이 갔다 올까?”


아내는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나들이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남편이 일찍 집에 온다는 거 자체가 반가운 소식이었을 거다. 아내와 아이들도 밖에 나가려고 준비하던 참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소윤이와 시윤이가 산책을 나가자고 했는데 아내가 아이들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나 보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 근처 공원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었다. 점심이었다. 햇볕 아래에서 걸을 때는 땀이 비 오듯 줄줄 흘렀는데 그늘진 평상에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솔솔 부는 바람에 금방 땀이 마르고 몸이 식었다. 아내도 기분은 좋아 보였지만 많이 지쳐 보였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갈 곳은 정하지 않았다. 막연히 ‘부산’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도 부산은 괜찮다고 했지만 ‘해운대’는 끌리지 않는다고 했다.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 생긴 증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다를 보니까 굳이 다른 지역의 바다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물론 각각의 매력이 있겠지만. 새로운 후보지를 제안했다. 아주 예전에 가 보고 한 번도 안 가 봤지만, 한 번쯤은 또 가 볼 만한 곳이었다. 예전에도 한여름에 갔는데 엄청 시원했던 기억도 있었다.


차로 1시간을 달려서 도착했다. 예전하고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훨씬 깔끔하게 정비가 된 느낌이기는 했는데 어디까지나 예전에 비교해서 그런 거였고, 현재를 기준으로 삼으면 뭔가 모른 촌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런 건 크게 상관없었다. 광활한 자연을 느끼러 간 거니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너무 뙤약볕이었다. 볕을 피할 그늘은 없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급격히 지쳐갔다. 특히 아내와 소윤이가 가장 두드러졌다. 아내와 소윤이는 너무 더우면 모든 의지를 상실한다. 마치 방전이 되는 것처럼.


“아빠. 여기 여름에도 엄청 시원했다면서여?”

“그러게. 많이 달라졌네”


하긴. 10년 전이니까.


저녁을 먹기에는 아주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점심에 빵을 먹었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배도 고프다고 했다. 정보가 전혀 없는 곳이라 급히 검색을 해서 두 곳 정도를 추려냈다. 한 곳은 국수가게, 한 곳은 백반집이었다. 아내에게 선택권을 넘겼고, 아내는 국수를 선택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모두 좋다고 했다.


생각보다 너무 허름해서 놀랐지만 맛은 훌륭했다. 서윤이만 조금 지지부진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골고루 잘 먹었다. 안 먹는 듯하면서도 나중에 보면 은근히 많이 먹는다. 서윤이는 요즘 조금만 엄하게 얘기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면 금세 눈물을 채운다. 각을 잡고 혼낼 때야 그렇다 쳐도 그냥 일상의 언어로 얘기해도 그럴 때가 많다. 아니, 그토록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마음이 그렇게 여리다는 말인가. 너무 사랑만 받아서 내성이 없는 건가. 오늘도


“서윤아. 밥 똑바로 먹어. 아빠는 먹는 걸로 장난치거나 불평하는 건 바로 혼 낼 거예요”


라고 얘기했더니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오늘은 조금 무섭게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서윤이가 면을 별로 안 좋아하기는 한다. 면보다는 밥을 훨씬 선호한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큰 카페였다. 아내의 표현이 찰떡이었다.


“무슨 리조트 같아”


K의 아내가 추천한 곳이라고 했다. 평일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아무튼 사람이 없었다. 야외 자리에 앉았다. 적당히 그늘진 곳이라 제법 시원했다. 대신 벌레와 개미가 많았다. 평상에 있는 개미들을 휴지로 쓸어내던 아내는 무심결에 휴지를 보고는 바로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으악”


소윤이도 아내와 비슷했다. 교회 마당에서 콩벌레도 서슴없이 잡고 그러길래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벌레’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를 떠는 아내의 유전자를 아주 착실하게 물려받은 듯했다. 그에 비하면 시윤이는 조금 괜찮았다. 때로는 엄마와 누나가 손을 대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당당하게 잡기도 한다. 대신 시윤이도 살아있는 건 조금 무섭다고 했다.


그늘이라 시원하다고는 해도 적당히 온도를 맞춘 에어컨만큼 시원할 리는 만무했다. 곁을 떠나지 않는 듯한 더위와 이런저런 사연으로 몸과 마음이 다소 지친 상태였다. 별 것도 아닌 일들로 자녀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윽박을 질렀다. 다 지나고 나면 후회와 참회뿐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걸 알면서도 20대의 젊음처럼 용솟음치는 감정을 막아내지 못한다.


아내는 기력을 많이 잃기도 했고 두통까지 생겼다고 했다. 아내는 집에 오는 내내 잤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내가 씻겼다. 소윤이에게는 물어봤다.


“소윤아. 혼자 씻을래 아니면 아빠가 씻겨줄까?”


처음에는 나에게 씻겨달라고 했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꿨다. 소윤이는 혼자 샤워를 하고 나왔다. ‘아빠가 어떻게 나를 씻겨?’라고 생각할 날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문득 은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제 소윤이의 모든 걸 알지 못한다니. 어떻게 키운 딸인데 나중에 어떤 거지발싸…도둑새…같은 놈과 살아야 한다니’


이제 소윤이와는 정서적인 교감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오늘 낮에도 그렇게 야박하게 굴었다.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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