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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5. 2024

재택근무 눈치게임

23.07.26(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수요예배를 드렸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김밥을 사서 먹었다. K의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있었다. 시윤이는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침을 많이 했고 코에 코가 가득 찬 소리가 들렸다. 시윤이의 모습 자체는 괜찮았다. 다만 증상이 다소 오래 지속돼서 병원에 가 봐야 하나 고민이었다. 아내와 나는 짧게 고민했다. 데리고 간다면 아내가 가야 했는데 이 더운 날씨에 아이 셋을 데리고 갈 만큼 위중한 상태인지 생각보다 심각한 질환인데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봤다.


“여보. 안 가도 될 거 같아”


계속 고민하고 결정을 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내가 먼저 얘기했다. 시윤이는 치과에도 가야 했다. 앞니가 아직 안 빠졌는데 유치가 나왔고, 꽤 많이 자랐다. 시급하다면 그게 더 시급했다. 오늘 치과에 갈 건 아니었지만 이번 주에 아내가 쓸 육아체력 총량 관리의 차원에서 아껴둘 필요도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병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바로 집으로 갈 건지 무언가 다른 일정을 하고 갈 건지 명확하게 결정하지 않았다. 난 아내와 아이들이 다른 일정을 소화하러(밖에서 시간을 보내러) 간다고 하면 집에 가고, 집에 간다고 하면 카페에 가려고 했다. 아내는 확실히 결정을 못 했지만 왠지 바로 집에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교회에서 나왔다. 소윤이는 항상 내 행선지를 궁금해한다.


“아빠. 어디 가여?”

“일하러 가지”

“어디로여? 집으로여?”

“글쎄 모르겠네”


일단 집에서 하다가 혹시나 아내와 아이들이 오면 다시 카페로 자리를 옮길 생각이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났는데도 아내와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 여보”

“우리는 00네랑 생태관 왔어요”

“아, 그랬구나”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덕분에 아이들 없는 집에서 집중도 있는 재택근무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를 다 보내고 저녁이 시작될 시간에 집에 왔다. 아내는 오기 전에 나에게 밥을 안쳐달라고 했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고 불을 올렸는데 삼계탕 냄새가 났다. 아마도 지난 번에 삼계탕을 하고 나서 설거지를 정밀하게 하지 않은 듯했다. 다른 누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차에서 내리는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표정이 울상이었다. 오는 길에 잠들었다가 깨면서 잔뜩 짜증을 품은 듯했다. 서윤이는 올라오자마자 강력한 훈육의 시간까지 가졌다. 현관을 열고 들어와서 중문을 열어야 했는데 서윤이가 거기 손을 짚고 있었다.


“서윤아. 손 다치니까 손 좀 치워줘”


라고 얘기했더니 갑자기 펑펑 울었다. 조금도 엄한 기운을 넣지 않고 다정하게 얘기했는데 아마도 잠투정이 섞인 듯했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는데, 너무 계속 그랬고 거기에 짜증을 더 섞기 시작했다. 그냥 울음과 소리를 지르는 울음의 차이랄까. 서윤이는 강력한 훈육의 시간 이후에 한참을 나에게 안겨 있다가, 아내가 산 자기 옷에 관심을 보이며 감정이 흩어졌다.


지난 번에 장모님이 아이들 옷을 사 주셨는데 서윤이만 바지 하나였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두 위아래 한 벌이었다. 서윤이는


“왜 나만 하나야”


라고 얘기했다. 진심으로 서운해하면서. 마침 아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할인을 했나 보다. 아내는 겸사겸사 서윤이 옷을 샀다. 뭘 알까 싶은데, 다 아나 보다. 자기 옷 샀다고 하니까 바로 웃음을 머금고 아내 곁으로 가서 옷을 구경했다.


저녁은 계란밥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뭘 먹지?’라고 고민하는 아내의 질문에, 당연히 나도 딱히 제안할 카드가 없었다. 점심에도 김밥이었으니 전체적인 균형상 다소 부실해지는 측면이 있기는 해도, 계란밥만큼 간편한 게 또 없기는 했다. 이럴 때는 또 나름의 합리화의 길을 찾는다.


‘오늘은 계란밥 안 먹었으니까’


보통 아내와 나는 계란밥은 잘 안 먹는데 오늘은 그냥 함께 먹었다. 다른 걸 하는 것도 귀찮았다.


아내는 원래 성경공부 모임이 있는 날이었지만 당분간 방학이다. 낮에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오늘 제자반 가. 자체 제자반”


원한다면 자유시간을 보내라는 말이었다. 어영부영 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여보. 그러고 보니까 안 나갔네?”

“그러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지금이라도 나가”

“그럴까?”


저녁을 다 먹고 아이들도 모두 누운 뒤에 나갔다. 나가 봐야 갈 데라고는 카페뿐이지만.


오는 길에 낮잠을 제법 푹 잔 서윤이는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언니와 오빠는 진작에 잠들어서 혼자 남았는데도 뭐라고 그렇게 중얼중얼거렸다. 그러다 한 번은


“아빠. 오줌 마려워여”


라고 하면서 나왔고, 또 한 번은


“아빠. 이불 덮어주세여”


라고 하면서 나왔고. 일단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온다. 그러다 내가 같이 웃어주면 더 환하게 웃고. 오늘은 모두 웃으면서 받아줬다. 얼른 자라고 엄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사실 서윤이가 혼자 그렇게 늦게 잘 때는 대체로 이러는 것 같다. 누가 됐든 ‘혼자가 된’ 자녀와 함께하면, 희한하게 마음이 넓어지고 그 자녀를 향한 사랑과 애틋함이 폭발한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짜증을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이 웃지도 않았다. 특별히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후에는 집에서 일을 했는데도 왠지 모르게 지쳤다. 불쑥 불쑥 짜증이 튀어나가려고 하는 걸 잘 막기는 했지만, 유쾌하고 다정한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씁쓸하다.


내가 집에서 기다려서 그런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왠지 밖에서 일하다 들어왔을 때보다 더 가라앉았던 것 같다. 아내도 항상 이런 기분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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