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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25. 2024

그래서 결론은, 야식

23.07.28(금)

소윤이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계속 힘들어했고, 기침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했다. 아내도 목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쉬지 않고 계속 누군가는 아픈지 오래된 듯하다. 다행히 나만 그 고리에 걸리지 않고 벗어나 있다.


아내는 오늘도 병원에 갔다. 오늘의 대상자는 소윤이와 아내였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답이었다. 어제 시윤이, 서윤이를 데리고 가서 들었던 답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아내는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일단 열이 없고 목만 부은 거라 아닐 거라고 하셨다. 열이 나면 다시 검사하러 오라고 하셨다. 무증상도 많겠지만.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나서는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카페에 가서 일을 할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왔다. 업무를 끝낸 건 아니었고, 집에서 일을 조금 더 할 생각이었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업무 효율 상실은 감수할 각오도 했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등장에 반가워했지만, 활력은 없었다. 막 점심시간을 지났을 즈음이었는데 이미 하루의 끝자락처럼 지쳐 있었다. 아내의 몸 상태 자체도 별로였고, 그 상태에서 세 자녀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것도 한 목 했다.


소윤이는 거실에 누워 있었다. 조금 춥다고 하면서도 에어컨을 튼 거실에 누웠다. 방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그랬을 거다. 서윤이는 낮잠을 안 잔 상태였고, 아내는 오늘도 안 재울 생각이라고 했다. 바로 일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조금 보내던 중에 아내는 소윤이와 함께 방에 들어가서 잠깐 눈을 붙인다고 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도 함께 들어가서 낮잠을 자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는데,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이유가 있기는 했다. 금요철야예배 때 남선교회 특송이 있어서 교회에 가야 했는데 시윤이와 서윤이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럼 낮잠 한 숨 자. 그래야 이따 아빠랑 교회 가서 피곤하지 않지”


어차피 소윤이는 못 가니까 아내도 집에 있어야 했고, 그럼 차라리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더 나았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안방에서 잤는데 소윤이는 오히려 거실에서 잤다. 거실에 있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 소윤이는 물론이고 시윤이와 서윤이도 많이 피곤했는지 금방 잠들었다. 덕분에 난 아주 고요한 재택근무의 시간을 확보했다. 다들 오래 자기도 했다. 소윤이가 가장 먼저 깼다.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이마를 짚어보니 뜨거워서 체온을 쟀는데 38.8도였다. 많이 힘들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시간이 조금 지나니


“아빠. 아까보다는 나아졌어여”


라고 했다. 열은 나도 기운이 좀 생겼나 보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이야기를 하라고 했는데, 잠시 후에 주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몸에는 안 좋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뭐라도 먹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밥 생각은 여전히 없다고 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도 곧 깼다. 아내가 가장 늦게까지 잤다. 시윤이와 서윤이의 저녁을 차려주려고 했는데 밥이 없었다. 밥을 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시간도 왠지 촉박했다. 국수를 끓여줄까 하다가 서윤이가 면을 싫어한다는 게 생각이 나서 접었다. 냉동실에 얼려 놓은 밥도 별로 없었다. 김밥을 사서 먹여야 하나 싶다가도 굳이 바깥 음식을 먹일 필요가 있나 싶어서 그것도 접었다. 햇반을 하나 발견했다. 그걸 데워서 아내가 만들어 놓은 메추리알 장조림 국물에 비벼줬다. 초간단 식사였다.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주방 정리를 시작했다. 내일 부모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아내는 분명히 지금 상태로 집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내가 안 하면 정상이 아닌 몸을 이끌고 여기저기 치울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는 도와야 했다. 설거지를 비롯한 주방 정리와 뒷베란다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했다. 시간이 금세 흘러서 교회에 가야 할 시간이 됐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교회에 다녀오면 옷만 갈아입고 잘 수 있는 상태로 씻겼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낮잠을 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조금의 짜증이나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거의 2시간 동안 유쾌하게 예배를 드렸다. 서윤이는 기분이 좋아서 장난을 치면서도 적정선을 지켰고, 시윤이는 의젓하게 앉아서 찬양도 불렀다. 마지막 즈음에는 서윤이가 수시로


“아빠. 근데 집에 언제 가여?”

“아빠. 근데 언제 끝나는 거예여?”


라고 물어보기는 했지만 이것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얘기했다.


아내와 소윤이는 안 자고 있었다. 소윤이는 상태가 비슷해 보였다. 기침은 오히려 심해진 것 같기도 했고. 아내의 말로는 기력을 조금 회복한 것 같다고 했다. 조금씩 먹기도 했고 말이나 행동에 미세하게나마 활력이 생긴 느낌이라고 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늦은 시간임에도 흥분 상태였다. 뭐가 그들을 그렇게 신이 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방방 뛰고 소리를 지르고 그랬다.


난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교회에서 너무 잘 있어서 그랬는지 오히려 힘을 좀 충전한 느낌이었다. 교회에서도 시윤이와 서윤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달라붙고 안기는 둘을 느끼면서 엔돌핀이 솟았다.


아내도 아까보다는 훨씬 밝고 힘이 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나는 저녁을 안 먹었다. 아내가 몸 상태가 안 좋았으면 그냥 이것저것 주워 먹고 끝냈을 텐데 아내가 생각보다는 정상활동이 가능했다.


그래서 야식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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