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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1. 2024

무더운 여름날의 물놀이

23.07.30(주일)

#무더운 여름날의 물놀이

##D+3068, D+2286, D+1213 - 23.07.30(주일)


아침으로 김밥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문을 연 김밥가게가 없었다. 아내는 감자와 계란을 쪘다. 시부모님과 시누이를 대접하기에 너무 허접하다면서 찜찜해했지만, 난 괜찮다고 했다. 다들 실용과 편리를 중시하는 성향이기도 했고, 딱히 대안이 없기도 했다.


아내는 9시 예배를 드리러 갔다. 아이들도 워낙 일찍 일어난 탓에 주일 아침답지 않게 여유가 넘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사촌동생과 함께 아동부 예배에 갈 생각에 진작부터 들떠 있었다.


“00야. 오늘 엄마랑 예배 드릴거야? 아니면 언니, 오빠랑 예배 드릴거야?”


예배시간은 11시지만 난 10시까지 가야 했다. 차로는 5분, 걸어서도 15분 정도면 충분한 가까운 거리지만 오늘 같은 날씨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분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날씨였다. 그렇다고 차로 5분도 안 걸리는데 차를 3대나 움직이는 것도 뭔가 비효율적이었다. 이미 교회에 가 있는 아내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 모두, 내 일정에 맞춰서 움직였다.


조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따라서 아동부 예배실로 갔다. 지난주에 예배 중간에 본당으로 올라왔던 서윤이도 오늘은 끝까지 무소식이었다. 어른 예배를 마치고 아동부 예배실로 갔을 때, 조카는 원래 거기 다녔던 아이처럼 위화감이 조금도 없었다.


아내가 식당 정리까지 하고 와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집에 와서 잠깐 숨을 돌리고 바로 바닷가로 나갈 채비를 했다. 간식도 챙기고 수영복도 챙기고 튜브도 챙기고 갈아입을 옷도 챙기고. 집 근처에 바닷가가 있어서 편하다고 해도 준비할 건 많다. 특히 뒤처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바다 물놀이는. 준비하는 것만 해도 은근히 시간이 걸렸다.


원래 바로 바닷가에 가려고 했는데 우리 집은 물론이고 이 지역에 처음 온, 내 동생과 근처 공원에 잠시 가기로 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누구든 한 번씩은 꼭 데리고 간다. 다 함께 가려고 했는데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 서윤이는 공원 입구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서윤이와 조카가 잠들기도 했고, 소윤이가 더위를 너무 힘들어하기도 했다. 사실 소윤이는 몸이 완전한 정상도 아니었다. 부모라면 알 수 있는, 평소와 다르게 힘이 없는 모습에 혹시나 싶어서 이마를 짚어봤는데 약간 따끈했다.


“소윤아. 괜찮아? 힘들지 않아?”

“네. 아무렇지도 않아여. 더워서 뜨거운 거예여”


소윤이는 혹시라도 자기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바닷가에 가지 못하게 될까 봐 필사적으로 정상이라는 걸 표현했다. 오후에는 체온도 쟀는데 실제로 미열이 있었다. 물론 소윤이는 여전히 ‘괜찮다’고 주장했다. 완전히 아픈 것도 아니었고 말이나 행동이 평소에 비해 힘이 없었다는 거지 누가 봐도 아픈 사람 같은 것도 아니었다. 웬만하면 바다에 갈 생각이었다. 소윤이의 쌓인 서러움들, 그러니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제대로 놀지 못했던 것, 그토록 기대했던 여름성경학교에 아파서 참여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 서러움을 쌓기 어려웠다.


날이 정말 너무 더웠다. 엄청나게. 공원까지 걸어갔다 오는 데 1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야말로 땀으로 샤워를 한 것처럼 온 몸이 젖었다. 나는 물론이고 엄마와 아빠,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카페로 들어섰는데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최상위급의 쾌감을 경험했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시원함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바닷가로 가서 자리를 잡고 물에 들어갔다. 처음 발을 담그면 ‘아, 차갑다’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이긴 했지만 지난 번에 비하면 훨씬 따뜻했다. 몸을 물에 담그고 있어도 춥다는 생각보다는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물론 어른인 나의 느낌이고, 아이들은 추웠을지도 모른다. 수시로 아이들의 입술 색이 파래지지는 않았는지 추운데 참고 노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 관찰했다.


조카는 처음에 조금 놀더니 모래사장으로 가서 모래놀이를 한참 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물에서 나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계속 잘 놀았다. 소윤이는 역시나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지 더 추웠던 지난 번보다 흥이 없었다. 너무 춥다고 하면서 물 속에 쉽게 몸을 담그지 못했다.


중간에 K네 식구가 합류했다. K의 자녀들과도 한참 놀았다. 한 명이라도 물에 들어가 있으면 나도 물에 들어가서 안전관리(?)를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쉴 틈이 없었다. 계속 물에 있었다. 포세이돈처럼. 아내나 동생은 물에 들어오긴 했지만 허벅지 이상으로는 허용하지 않았고, 아빠와 엄마도 비슷했다. K나 K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힘들지는 않았다. 재밌었다. 수영은 못하지만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바다 물놀이의 진가는 역시나 놀고 난 뒤다. 공용 샤워기에서 간단히 모래만 씻어냈다. 내 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일단 세 자녀부터. ‘간단히’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결코 간단한 과정이 아니기는 하다. 한 명씩 차례로 씻기고 급격한 체온저하를 막기 위해 옷을 갈아입히거나 수건을 두르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는 튜브와 수영복을 비롯한 각종 물놀이 장비를 씻는다. 마지막으로 내 몸을 씻는다. 모든 걸 다 씻고 나면 짐을 들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면 된다. 걸어서 집까지 가는 게 엄청난 이점이기는 하지만 꽤 고단한 건 마찬가지다.


집에 도착해서도 많은 여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자녀들을 한 명씩 안아서 화장실로 옮겼다. 몸 구석구석에 붙은 모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였다.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면 모래가 후두두둑 떨어진다. 접히고 가려지는 부분을 최대한 꼼꼼하게 닦아내야 한다. 모래는 그런 곳에 숨는다. 아이들을 다 씻기고 나면 아이들이 입었던 수영복에 남은 모래를 씻어내야 한다. 일종의 애벌 빨래라고나 할까. 세탁기로 넣기 전에 최대한 모래를 털어내는 거다. 튜브나 조끼 같은 장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오늘은 후반부의 섬세한(?) 작업들은 아내가 주로 했다.


아이들과 나만 씻고 또 집에서 나왔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다시 바닷가로 갔다. 물론 이번에는 차를 가지고 갔다. (내) 엄마와 아빠는 이미 여러 번 방문했던 가게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모두 엄청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잘 먹었다. 그만큼 배도 고팠나 보다. 밤이 되니 낮처럼 무서운 더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건 여전했다. 시간이 조금만 일렀어도 산책을 했을 텐데 그럴 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대신 차로 조금 돌았다.


물놀이를 하고 와서 바로 씻은 덕분에 아이들은 양치만 하면 잘 준비가 끝이었다. 별 거 아닌데 사람을 참 홀가분하게 만든다. 오늘은 어제와 잠자리가 조금 달랐다. 조카는 거실에서 잤고(일단 방에서 재우고 나중에 데리고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안방에서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사촌동생과 함께 거실에서 자고 싶어 했지만 그냥 안방에서 자라고 했다.


어제는 그냥 잤지만 오늘은 거실에서 어른들이 잠시나마 회포를 풀어야 했다. 조카도 공부방에서 재우고 나중에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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