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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1. 2024

아쉽지만 익숙해진 이별

23.07.31(월)

아내는 어제부터 목소리가 갑자기 쉬었는데, 오늘은 더 심해졌다. 부흥회를 2,000번 정도 인도한 목사님 같은 목소리를 냈다. 손도 다쳤다. 어제 화장실 개수대를 맨손으로 열다가 살점이 떨어져 나갔는데 상처가 꽤 깊었는지 피가 철철 흘렀다. 자기 전에 밴드와 붕대로 조치를 하고 잤는데 다행히 피가 더 나고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손이 몹시 욱신거린다고 했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내) 엄마와 아빠, 동생과 조카는 점심을 먹고 나서 간다고 했다. 먼 거리를 가야 하니 집에서 쉬는 게 필요했다. 아이가 넷이니 집에 있는다고 쉬는 게 아니긴 했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게다가 날씨는 불타고 있었다. 정말 뜨거웠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엄마가 며칠 뒤 내 생일을 미리 축하하기 위한 시간을 갖자고 했다. 케이크가 필요했는데 모두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싶어 했다. 집 근처에는 그런 케이크를 파는 곳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있어도 너무 비쌀 것 같았다. 적당한 가격에 좋은 맛을 내는 케이크를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모두 차로 30분 정도는 가야 했다. 그 중에 문을 연 가게에 케이크를 사러 갔다. 생일 당사자인 내가 갔다.


“아, 초는 몇 개 넣어드릴까요?”


순간 누구 케이크를 사러 왔는지 생각이 안 나서 잠시 움찔했고, 내 케이크라는 걸 생각해 낸 다음에도 잠시 움찔했다.


‘초를 몇 개 넣어야 하더라?’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는 냉장고에 넣어 놓고 집 근처 중국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소윤이는 어제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지만, 먹는 건 여전히 잘 못 먹었다. 아직 입맛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은 듯했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와서 케이크를 꺼내고 초를 꽂았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한 번 부르고 곧 떠나갈 이들에게 선물을 받고,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다들 점심을 너무 배부르게 먹었다고 했는데 역시나 후식이 들어갈 공간은 있었나 보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큰 몫을 했다. 막내인 조카부터 서윤이, 시윤이까지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소윤이는 몇 번 먹고는 자리를 떴다. 내 느낌에 소윤이는 먹어본 맛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것 같다. 케이크, 초콜렛, 빵 같은 걸 먹을 기회가 생겨도 딱 자기 양만큼 먹고 만다. 그에 비해 먹을 기회가 거의 없는, 아내나 내가 거의 사 주지 않는 불량식품이나 마트에서 파는 군것질류에는 오히려 더 관심을 보인다. 아무튼 케이크는 바닷가에 낮게 쌓은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집에서 헤어지지 않고 교회 마당에서 헤어졌다. 교회 사모님이 부모님과 함께 먹으라고 수박을 한 통 주셨는데 집에도 이미 수박이 있어서, 그대로 부모님께 드리기로 했다. 교회 냉장고에 있는 수박을 꺼내느라 교회 마당이 이별 장소가 됐다. 이제 아이들이 울고 그러는 건 없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울지. 나중에 물어보니 각각의 소감이 달랐다. 소윤이는 ‘아쉽긴 하지만 엄청 슬프지는 않다’고 했고, 시윤이는 ‘이게 진짜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에 심취해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헤어짐의 순간을 그렇게 느끼나 보다. 서윤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안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병원으로 갔다. 소윤이의 기침이 심했고, 어제는 미열도 있었다. 서윤이는 눈에 눈곱이 끼기 시작했다. 눈도 빨개졌다. 아마도 콧물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시윤이는 가장 멀쩡했다. 가장 먼저 병치레를 했으니까. 그래도 진료를 봤다. 자기도 진료를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재밌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커피와 케이크를 하나 샀다. 시댁 식구를 치르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전하는 소소한 선물이었는데, 아내는 그 가게에서 가장 비싼 조각 케이크를 사 왔다. 요즘은 빵을 다소 멀리하고 있지만, 아주 가까이 할 때에도 아내가 그걸 사 먹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집에 와서는 쭉 쉬었다. 집안일도 하다가 널브러져 있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또 저녁 시간이었다. 아이들 모두 배가 안 고프다고 했다. 그렇다고 저녁을 건너 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혹은 배고프지 않은 상태에 맞는 간단한 대안도 없었다. 어제 아침으로 준비하고 남은 감자와 계란, 그리고 과일을 줬다. 아내와 나는 따로 저녁을 챙겨 먹지 않았다.


내일은 아내가 친구와 함께,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내는 체력 관리 차원에서 조금 일찍 누웠다. 혼자 아이 셋을 보는 건 흔한 일이고 힘든 일도 아닌데, 왜 자꾸 내일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거나 큰 행사 전날처럼 오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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