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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4. 2024

오늘도 물놀이

23.08.02(수)

휴가인 덕분에 늦잠을 좀 자고 있다. 알람 소리 대신 아이들의 목소리로 잠을 깬다.


“아빠. 배고파여”


그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지만, 그렇다고 바로 몸까지 반응하지는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서 주방까지 가는 게 한 세월이다. 군말 없이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아빠. 오랜만에 토스트 해 주세여”


소윤이가 토스트를 해 달라고 했다. 집 근처 빵 가게에 가서 식빵을 하나 사 왔다. 소윤이는 프렌치 토스트, 시윤이는 그냥 토스트를 원했다. 1차 의견 확인 후 소윤이가 곧바로 시윤이에게 맞춰줬다.


“아빠. 그럼 그냥 토스트 먹자여”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2개월 정도 지난 버터가 있었다. 사용해도 괜찮은지 아내에게 물어봤다. 사실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아내는 대체로 괜찮다고 하니까. 냉장보관이 잘 되어 있었고, 맛이나 향에 특이점이 없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빵을 하나씩 굽기 시작했다. 한 사람 당 두 장의 빵에 계란 프라이 하나, 그리고 양배추 조금을 넣을 생각이었다. 딸기잼도 바르고. 빵은 여러 장을 구워야 하는데 프라이팬은 한정적이라 은근히 시간이 걸렸다. 몇 장 되지도 않는 빵이지만 굽다 보니 지겨워졌다. 대충 이쯤이면 됐겠거니 생각하고 한 사람 앞에 토스트 하나씩을 나눠주고 났더니 내가 먹을 빵이 없었다. 빵은 있었지만 구운 빵이 없었다. 귀찮았다. 난 그냥 굽지 않은 식빵에 계란 프라이와 양배추를 넣어서 먹었다.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매우 한정적인 활동이다. 1년 중 여름에만, 그것도 아주 짧은 기간에만 바닷물에 들어갈 수 있다. 휴가인 지금을 충분히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갔다 오면 몸이 천근만근이 되고, 준비할 것도 갔다 와서 정리할 것도 많지만 지금 열심히 놀지 않으면 바닷물에 들어갈 시간은 홀연히 멀어진다.


“여보. 여보는 휴가여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건 안 좋아하지? 난 집에서 빈둥거리는 거 좋은데”

“나? 나도 좋아해. 혼자 있으면. 애들이랑 있으면 빈둥거릴 수가 없잖아”

“하긴. 그렇네”


아무 계획 없이 일어나서 배고프면 뭐 좀 집어먹고 누워서 TV나 휴대폰 보다가 졸리면 잠들었다가 깨서 배고프면 또 뭐 좀 먹고, 중간에 과자도 먹고 다시 누워서 TV나 휴대폰 보다가 또 졸리면 잠들었다가 깨서 야식도 먹고 늦게까지 TV나 휴대폰 보다가 스르륵 잠드는 하루.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다. 지금은 실현할 수 없는 가상현실 같은 일상이어서 꿈도 안 꾸는 것뿐이다.


바닷가에 가기 전에 다이소에 들렀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데리고 갔고, 서윤이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낮잠을 잤다. 다이소에는 물총을 사러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의 물총을 하나씩 사고 모래놀이 할 때 쓸 장난감도 하나 샀다. 바닷가에서 햇볕을 가려줄 내 모자도 하나 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다이소에서 피복류를 산 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야말로 용도와 기능에만 집중한 구매였다.


서윤이와 아내는 자고 있었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을 테지만 점심을 먹고 나가기는 해야 했다. 주먹밥을 만들었다. 어제 점심에도 주먹밥을 먹었는데, 그나마 어제는 삶은 감자와 계란이 있어서 그거라도 넣었는데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주먹밥 양념가루와 김자반이 전부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주먹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쯤 아내와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아내와 서윤이도 주먹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나가서 놀 생각이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서 늦은 오후가 됐다. 그래도 워낙 더워서 바닷가에 가서 노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날은 그렇게 더워도 바닷물은 차가웠다. 처음 발을 담그면 ‘앗 차가워’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온도였다. 몸을 담그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금방 익숙해지지만 처음이 어렵다. 소윤이도 쉽게 몸을 담그지 못했다. 마음으로는 텀벙 뛰어 들어서 신나게 놀고 싶었겠지만 너무 차가우니 처음에는 꽤 오랜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겁도 많아져서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금방 불안해했다. 서윤이가 제일 잘 논다. 물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한참 놀았다. 물놀이도 하다가 모래놀이도 하다가. 물에 들어오지 않는 아내는 파라솔 밑 캠핑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다고 아내가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늘이라 시원하긴 해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는 건 꽤 지겨울 거다. 차라리 물에 들어가서 같이 노는 게 낫지. 아내가 물에 들어오지 않는 건, 아내가 물놀이를 엄청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내와 나 둘 중에 한 명은 젖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게 나중에 아이들을 챙길 때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오늘도 계속 물에 있었다. 손발이 퉁퉁 불을 정도로.


물놀이가 끝나고 난 뒤의 과정은 항상 비슷하다. 간이 샤워기에서 모래를 씻어내고 서윤이는 옷을 갈아입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수건을 둘러주고. 튜브와 장난감에 묻은 모래도 씻어내고 유모차에 짐을 실어서 터덜터덜 걸어온다.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에 타지 않고 집에 올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간단히 씻어내기만 해도 되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옷을 갈아입고 차를 타고 오는 게 더 낫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차피 집에 와서 제대로 씻어야 하는 건 똑같고, 굳이 걸어 올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젖은 채로 차에 타면 후폭풍이 심하니 그냥 걸어오는 건데 차라리 옷을 가지고 와서 갈아입히고 차에 태우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이러나 저러나 물놀이가 간단한 일이 아니기는 하다. 실제로 어떤 게 더 간편하고 실용적인가는 둘째 치고, 심리적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바닷가’라는 게 더 크게 작용한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나에게는 더더욱. 요즘의 일상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이런 데 산다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이 입었던 수영복의 모래도 씻어내고, 튜브와 장난감에 묻은 모래도 씻어내고, 내 몸도 씻어내고 나서 저녁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돈까스를 튀겨줬고, 아내와 나는 라면을 먹었다.


엄청 고단했다. 그래도 뿌듯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말처럼, 전에는 바닷가 한 번 가려면 엄청 큰 마음을 먹어야 했고 그렇게 큰 마음을 먹은 적도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밥 먹듯이 바닷가에 가고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나는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만족하고 감사해했다.


아이들을 눕히고 아내와 수다를 떨면서 아이들 어릴 때 사진과 영상을 봤다. 서윤이 사진을 많이 봤는데, 보다 보니 또 보고 싶었다.


“여보. 안 되겠다. 오늘은 서윤이 데리고 와야겠다”


작은방에 몰래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서윤이를 안고 왔다. 혹시 소윤이나 시윤이가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주의 깊게 살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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