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Feb 04. 2024

네? 이가 하나 없다고요?

23.08.04(금)

고맙게도 아내가 오전 시간을 책임졌다. 나도 일찍 일어나기는 했는데 침대에서 빈둥거렸고 아내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이들이 수시로 나에게 와서 말도 걸고 안기기도 하고 그랬는데 반응은 하면서도 한참 동안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내가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오전에는 치과에 가야 했다. 시윤이의 앞니(유치)가 아직 안 빠졌는데 영구치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깜짝 놀라서 급히 찾아봤더니 당장 심각할 건 없고 일단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면 당장 빼야 하는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지 판단을 해 주실 거라고 했다. 가는 김에 소윤이와 서윤이도 데리고 가서 혹시 충치가 있는지 보기로 했다.


아내는 집에 남아서 점심 준비를 하고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육아를 하면서 까다로운 결정의 순간이 참 많은데 치과도 그 중 하나다. 다른 병원, 이를테면 소아과 같은 곳도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쉽더라도 가까운 곳으로 적당히 다니면 된다. 치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더 잘 하는 곳으로, 그렇지만 너무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곳으로 고르려다 보면 고민이 깊어진다. 여기서 치과를 가는 건 처음이라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검색을 하면서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면서도 과잉진료가 없는 느낌이다’라는 평이 몇 개 있는 곳으로 결정을 했다. 동네의 허름한 치과였다.


일단 시윤이부터 진료를 봤다. 의사선생님이 시윤이 이를 대충 둘러보시더니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어?”


왜 그러시나 싶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시윤이 혹시 이가 빠진 적이 있었나요?”

“아니요? 아직 이가 빠진 적은 없었는데?”

“그래요? 앞니가 하나 없는데?”

“네? 이가 하나 없다구요?”


4개가 있어야 할 앞니가 3개만 있다는 얘기였다. 다소 충격적이었다. 일단 유치가 3개였다. 영구치도 3개일지 아니면 영구치는 4개가 날지는 치아 전체 사진을 찍어봐야 아는 건데 굳이 찍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설령 영구치가 3개라고 해도 선천적으로 그런 거라 딱히 방법은 없다고 하셨다.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은 없지만 치열이 흐트러져서 교정은 해야 할 거라고 하셨다. 아들의 앞니가 3개밖에 없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니. 심각한 문제도 아니고, 미리 알았다고 해도 딱히 해결책이 없었게지만 괜히 한심스러웠다. 아내와 했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여보. 시윤이는 앞니 간격이 넓네. 음식물 잘 안 껴서 충치 안 생기겠다”


세 명이나 키우고 있어도 모르는 것, 어리석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나중에 찾아 보니 시윤이와 같은 상태를 ‘선천성 치아결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건 그렇고 이미 많이 자란 영구치에게 자리를 내어 줄 생각이 없는 유치는, 일주일 정도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다. 빼기는 해야 하는데 당장 빼려면 너무 안 흔들려서 마취주사를 맞아야 하고, 일주일 동안 열심히 흔들어서 조금 더 헐거워지면 마취주사 없이 빼도 된다고 하셨다.


“시윤아. 틈이 날 때마다 손 깨끗이 씻고 흔들어”


서윤이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소윤이가 마지막으로 진료대에 누웠다. 의사 선생님이 또 나지막이 한마디 하셨다.


“어이구. 소윤이가 제일 심각하네”


잠시 후 소윤이에게 질문도 하셨다.


“소윤아. 이 아픈 적은 없었어?”


소윤이가 종종 아프다고 한 적이 있기는 했는데 오래가는 통증은 아니었다. 소윤이도 잘 기억은 못 했다.


“소윤이는 충치가 많네요. 유치에 4개, 영구치에 4개가 있어요”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아내도 깜짝 놀라기는 했는데 전혀 모르던, 예상하지 못한 소식을 접했을 때의 놀람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느껴지는 놀라움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진료 예약을 잡았다.


역시나 날이 무더웠다. 무더운 정도가 아니라 밖에서 뭔가를 할 생각조차 못하게 만드는 날씨였다. 물놀이가 아니면 밖에 나가기가 어려웠는데 오늘은 물놀이를 하러 가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즐겁고 재밌어도 이틀 연속은 힘들다. 대신 집에서 영화를 보여주기로 했다. 일단 장을 보고 왔다. 오는 길에 맛있는 커피도 한 잔씩 샀다.


2시간이나 되는 영화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책으로 먼저 읽었고, K의 첫째가 영화도 재밌었다고 추천해서 오래전부터 보고 싶어 하던 영화였다. 일단 영화를 틀어주고 나는 또 팝콘을 만들었다. 지난 실패를 교훈 삼아 약불에서 은근하게 익히는 데 집중했고 이번에는 잘 튀겼다. 대신 캬라멜은 실패했다. 실패라기보다는 완벽한 성공이 아니었다. 처음에 깔끔하게 성공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탕을 잘 녹이고 익히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걸 팝콘에 균일하게 버무리는 게 안 된다. 덕분에 캬라멜이 묻은 팝콘은 매우 적었지만, 당연히 아이들은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팝콘도 먹고 빵도 먹고 그래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도 배가 전혀 안 고팠다. 요거트와 과일로 저녁을 대체했다. 아내는 금요철야예배에 갔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동행했어야 했는데 집에서 늘어지게 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느슨해졌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더니 일을 할 때는 피곤해서 못 가고, 쉴 때는 늘어져서 못 가네.


낮잠을 잔 서윤이는 자려고 누운 뒤에도 엄청 나왔다.


‘너무 춥다, 이불을 덮어달라, 목이 마르다, 오줌이 마렵다, 또 목이 마르다, 또 오줌이 마렵다’


자기도 민망했는지 나올 때마다 약간이 미소를 장전한 채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내가 웃으며 맞아주면 활짝 웃으며 얘기했다. 오늘도 서윤이의 얕은 술수에 다 넘어가 줬다.


아내가 집에 들어오면서 치킨을 사 왔다. 아내와 나는 저녁을 건너 뛰기도 했고, 그래도 휴가기간에 영화 한 편은 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거실에 앉아서 한창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데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모두 한 번씩 깨서 나왔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했다.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들킨 것처럼.


얘들아, 그냥 영화 봤다. 다만, 너희는 절대 볼 수 없는 조금 잔인하고 교훈은 거의 없는 영화였을 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강행군의 여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