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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4. 2024

아빠, 생일 맞지?

23.08.05(토)

생일이었다. 생일 이전에 토요일은 일단 ‘축구하는 날’이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소파에 앉아서 10분 정도 고민을 했다.


‘오늘은 그냥 축구하러 가지 말까?’


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오늘도 바닷가에 가기로 했는데 축구도 하고 바닷가에 가서 놀기까지 하면 너무 피곤할까 걱정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조금 이른 시간에 가서 한참 놀다 올 계획이었다. 고민은 했지만 다시 눕지는 않았다. 그대로 축구 가방을 메고 집에서 나왔다.


날이 엄청 뜨거웠다. 그 이른 시간에도 한낮처럼 햇볕이 쏟아졌다. 해수욕장에 있는 평상 자리를 예약하려고 축구를 마치고 해수욕장에 들렀다. 이용시작 시간보다 일찍 갔는데 이미 예약이 끝난 뒤였다. 관리하시는 분 말씀으로는 아침 8시부터 나와서 줄을 섰다고 했다. 평상을 빌려서 고기도 구워 먹고 제대로 놀아보려고 했는데 일단 계획이 틀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아침부터 생일상을 차리느라 분주했다. 진수성찬이었다. 잡채, 불고기, 공심채 볶음, 무생채, 미역국 등. 심지어 엄청 맛있었다. 평소 아내의 성향에 비하면 꽤 많은 양을 준비했는데 거의 다 먹었다. 아이들도 허겁지겁 많이 먹었다. 거나한 생일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바로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소윤이가 얼른 아빠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면서 생일축하부터 하자고 했다. 생일축하 노래와 함께 뽀뽀를 받고 각자 준비한 선물을 공개했다.


소윤이는 그립톡과 직접 만든 수박부채였다. 수박 조각 모양을 그려서 오리고 붙인 부채였는데 너무 힘이 없어서 부채의 본질인 ‘시원하게 하기’는 조금 부실한 부채였다. 그래도 열심히 부치며


“오, 시원한데? 수박바 같이 생겼네”


라고 얘기했다. 너무 세게 부채질을 하니 부채대와 날개가 분리될까 봐 걱정이었다.


서윤이는 정체불명의 종이 조각에 예쁘게 색칠한 걸 줬다. 그게 편지라고 했다. 해석은 할 수 없었다. 받은 이도 주는 이도. 그래도 기쁘게 받았다. 시윤이는 선물이 없었다. 사실 시윤이는 며칠 전부터 나에게


“저는 아빠 선물 아직 준비 안 했어여. 저는 아빠 선물 안 줄 거예여”


라고 얘기하면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을 했다. 당연히 선물은 중요하지 않다. 나도 시윤이에게 일부러 더


“시윤아. 선물은 없어도 돼. 아무런 상관이 없어. 아빠는 시윤이가 그냥 편지를 써 줘도 되고, 편지도 없이 그냥 축하해 주고, 건강하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행복해. 그게 시윤이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야’


라고 얘기했다. 진심이었지만, 더 원색적으로 얘기했다. 꼬박꼬박 계획을 세워서 빈틈없이 준비하는 누나와 비교해서 침울함에 빠질까 봐 일부러 더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축구하러 가고 없을 때도 난리가 한 번 난 모양이었다. 선물은 어쩔 수 없으니 편지라도 준비해 보려고 했던 시윤이가 뭔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는지 오만 짜증을 내면서 아내를 힘들게 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결국 자기를 비하(?)하는 말을 쏟아내고 편지도 못 쓰고. 다시 한 번 시윤이에게 위로 아닌 위로와 아빠의 진심을 건넸다.


선물을 준비한 이가 행복하고 뿌듯해 할 만큼의 반응을 보여줘야 하면서도 준비하지 못하는 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하는 아빠의 고충이란.


생일축하를 마친 뒤에는 바로 바닷가로 나갔다. 오늘은 차를 가지고 가 보기로 했다. 파라솔 하나를 빌려서 자리를 잡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항상 파라솔에서 관리와 보호의 역할을 맡았던 아내도 오늘은 함께 물에 들어간다고 했다. 날이 그렇게 뜨거워도 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역시나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한 발씩 움직이며 몸이 적셔지는 범위를 높여갔다. 해수욕장에 설치된 물놀이장에도 들어갔다. 물이 조금 더 따뜻해서 좋기는 했는데 너무 험하게 노는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많아서 오히려 어린 아이들에게는 조금 위험했다. 서윤이가 노는 아예 낮은 물놀이장에 가서 조금 놀았다.


원래 고기를 구워 먹으려던 계획에 비하면 참 단출하지만 중간에 아내와 나는 컵라면, 아이들은 빵으로 요기를 했다. 컵라면도 충분히 맛있었다. 컵라면에 부은 물의 온도만큼이나 뜨거운 날씨였지만 여차하면 물로 뛰어들면 된다는 생각에 더운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보트도 타러 갔다. 시원한 굉음과 함께 물살을 일으키는 제트스키를 볼 때마다 시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저거 꼭 한 번은 타 보고 싶어여”


그게 오늘이었다. 다만 서윤이는 탈 만한 게 없어 보였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아내와 내가 불안해서 못 태울 것 같았다. 서윤이에게 어느 정도 운을 띄웠는데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자기도 탈 거라고 했다. 일단 매표소에 가서 봤는데 딱히 연령 제한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건 아내와 내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으면 태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나에게 그 정도의 담대함은 없었다.


“서윤아. 서윤이는 탈 수 있는 게 없대. 서윤이는 여기서 엄마랑 기다리자”


약간의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 안 그래도 초조하던 서윤이가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서운하고 섭섭해서 쏟아내는 진실의 울음이었다.


“서윤아. 대신 서윤이는 아이스크림 먹자. 아이스크림 사 줄게. 어때?”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혼자 못 탄다는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잠시 진정되는 듯했던 서윤이는 아빠와 언니, 오빠가 보트를 타러 떠나자 또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다 속상할 정도였다. 서윤이가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고, 일단 보트는 재미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주 만족했다.


“아빠. 벌써 끝났어여?”


5분 만에 끝난 보트 체험에 아쉬운 듯 시윤이가 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 또 타고 싶다”


생각보다 저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밥 먹듯이 탈 정도는 아니라서 시윤아.


서윤이는 여전히 입술이 잔뜩 나와 있었다. 게다가 낮잠 잘 시간도 한참 지나서 피곤하기까지 했다. 다시 우리가 놀던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전혀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가 업어주고, 내가 안아서 겨우 갔다. 다시 물에 들어가니 그나마 조금 괜찮아졌다.


4시간 넘게 놀았다.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로 햇볕을 받았다. 차를 가지고 오나 걸어서 오나 힘든 건 비슷했다. 차의 시트가 조금 젖는 걸 감수하고 집에 올 때 다소 편하다는 장점이 있기는 했다. 대신 주차할 자리를 찾아야 하는 수고도 필요했고. 아무튼 해수욕장에서의 물놀이는 이러나 저러나 큰 체력 소모가 필수적인 활동이다.


물놀이 후 필수 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저녁을 먹어야 했다. 점심을 거의 건너뛴 거나 다름이 없어서 모두 배가 고팠다. 원래 집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막상 다 끝내고 나니 귀찮기도 했고 더 이상 뭘 하기가 싫었다. 나가서 먹기로 했다. 전에 아내가 찾았던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를 가 보기로 했다. 콩 요리를 파는 곳이었다. 아내와 나는 매콤한 두부전골, 아이들은 황태순두부찌개와 콩국수를 시켜줬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밑반찬부터 본 음식, 심지어 숭늉까지 다 맛있었다. 너무 많이 시켰나 싶었는데 다 먹었다.


집에 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렀다. 시윤이가 뒤늦게라도 아빠의 선물을 사야 한다고 했다. 어제 아내에게 미리 얘기를 해 놨다. 혹시 시윤이가 선물을 사겠다고 하면 드라이버와 물총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고 했다. 드라이버는 실제로 필요했고, 물총은 아이들과 물놀이를 할 때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시윤이는 내가 보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기는 엄마와 돌아다니겠다고 했다. 서윤이는 덩달아서 아빠 선물을 사겠다고 했다.


“아빠. 이거 사 줄까여? 이거 어때여?”

“이거? 색종이? 아빠는 색종이 필요없는데?”

“아니예여. 아빠 이거 필요해여. 내가 색종이 사 줄게여”


의도가 불순한 선물이었다. 서윤이는 색종이를 들고 아내에게 갔다.


“엄마아. 아빠가 이거 필요하대여”


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선물을 줬다. 드라이버였다.


“시윤아. 와, 너무 고맙네. 아빠 진짜 딱 필요했는데”


시윤이는 특유의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청나게 묵직한 피로가 느껴졌다. 사실 그 전부터 느껴졌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 모두 씻고 나간 거라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집으로 오면서 산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아내가 현관으로 나가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어? 여보 선물 왔네?”


아내는 선물을 따로 준비 안 했다고 했었다. 거짓말 같은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설령 선물이 없어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선물이라고 하면서 큰 상자를 들고 들어온 거다. 일부러 밤에 배송이 되도록 주문을 한 거였다. 내용물이 더 충격적이었다. 아내가 평소에 관련된 질문을 종종 하길래


‘설마’


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거였다. 좋기도 좋았지만 너무 고가의 선물이라 여러 반응이 섞여서 나갔다. 얼떨떨했다.


선물이 없어도 상관이 없지만, 아내가 준 선물을 가지고 노느라 새벽 3시까지 안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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