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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5. 2024

아프면 안 된다

23.08.06(주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이 엄청 아팠다. 가래도 엄청 나오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그리고 아내까지 이미 겪은 증상이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여전히 증상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미세한 수준이었고 소멸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시점에 내가 새롭게 중상 발현자가 된 거다. 혹시라도 몸이 더 안 좋아질까 봐 걱정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남편이자 아빠로서 아프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사명감, 남은 휴가를 고스란히 침대 위에서 보내기 싫다는 마음이 걱정의 이유였다. 가늠이 안 됐다. 별 일 아닌 듯 좋아질 것 같기도 했고, 더 안 좋아질 것 같기도 했고.


8월 한 달 동안 오후예배가 없다. 덕분에 본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면 교회에서의 모든 일정은 끝이 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의 휴가 기간에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빠. 우리 오늘은 뭐 해여? 어디 가여?”


라는 질문을 매일 한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꽤 한참 있다가 집으로 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물었다.


“아빠. 우리 바로 집으로 가여?”


날은 여전히 더워서 물놀이가 아니면 바깥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는데 오늘도 물놀이를 하는 건 무리였다. 일단 집으로 와서 머리를 굴려보기로 했는데 막상 집에 돌아오니 무척 피곤했다. 서윤이를 재울 시간이었다. 서윤이를 재우면서 한 숨 잘까 싶었는데 아내도 나와 비슷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서윤이도


“엄마랑 잘 거예여”


라고 했다. 사실 10번 중에 10번을 그렇게 얘기하기는 한다.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또 물어봤다.


“아빠. 우리 오늘 어디 갈 거예여?”

“글쎄. 모르겠네”


난 아이들과 거실에 있었는데 나도 스르륵 잠이 들었다. 처음에는 의지를 가지고 잠에서 깨려고 했는데 아내도 한참 동안 안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도 다소 마음 편히 잠들었다. 중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깰 때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뭘 하고 있는지 봤는데 계속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비몽사몽 간에도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잤다.


거의 2시간 가까이 푹 잤다. 나도 아내도, 서윤이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중간에 나나 아내를 깨우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너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아, 소윤아 시윤아. 너무 고맙고 미안하네”

“왜여?”

“그냥. 엄마, 아빠 자는데 깨우지도 않고 너네끼리 책 읽으면서 잘 있고”


아내도 얼마 안 돼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밤산책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밤에도 무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낮이 너무 뜨거워서 낮과 비교하면 시원한 거였지 밤에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흘렀다. 걸을 수는 없으니 드라이브라도 할까 싶었다. 아내와 내가 마실 커피도 살 겸. 일단 저녁을 먹고 나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저녁에는 어제 바닷가에서 구워 먹으려고 샀던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점심 때 교회에서 빵을 먹은 탓에 아이들 모두 잘 먹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가 낮에 정신없이 자느라 간식도 하나도 못 먹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많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집에서 빈둥거리며 쉬고 나니 체력이 조금 회복되는 느낌이어서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빠. 우리 드라이브 나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놀다 자자여”

“집에서? 뭐 하고?”

“그냥 보드게임이나 뭐 그런 거?”

“그럴까?”


어느 음식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밖에서 사 먹을 때의 가장 큰 장점은 먹고 나서 정리를 안 해도 된다는 거다. 삼겹살 만찬의 뒷정리를 하는 동안 난 아이들과 오랜만에 보물찾기를 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한참 했던 시기가 있었다. 술래가 보물 5개를 숨기면 나머지 사람이 찾는 거다. 별 거 아닌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집중했고 즐거워했고 만족도도 높았다. 서윤이도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였다. 오후 시간의 대부분을, 자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며 보낸 것에 대한 보상치고는 매우 하찮은 놀이였지만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아주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거나하게 낮잠을 잔 서윤이는 무려 11시까지 안 자고 깨어 있었다. 오늘도 여러 이유와 함께 나오기도 했고 별 이유 없이 당당하게 나오기도 했고, 방에 있을 때도 잠들기 위한 노력은커녕 혼자 속닥대고 움직이면서 장난을 쳤다. 나와 아내 모두 무한한 자비를 베풀었다. 사실 마지막 즈음에는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거의 2시간 넘게 웃으며 받아주기도 해 놓고서는 그제야 그러는 게 조금 미안해서 끝까지 자비를 베풀었다.


이제 슬슬 휴가가 끝나간다는 게 실감이 나고 있다. 아마 나보다는 아내가 더 빠른 속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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