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Feb 05. 2024

평일에 해야 하는 일들

23.08.07(월)

오전에 치과에 가야 했다. 소윤이의 충치를 치료해야 했다. 아내가 부지런히 일어나서 아이들의 아침을 차려줬다. 얼마 전에 K의 아내가 준 오리탕을 아직 못 먹고 있었는데 그걸 끓여서 밥을 말아줬다. 아내는 막 선호하는 음식이 아닌 듯했다. 자주 접해보지 못하기도 했고, 보이는 모습도 아내가 호감을 가질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사실 아내는 삼계탕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주변에서(특히 장모님이) 몸보신을 하려면 그래도 먹으라고 하니까 먹고, 남편과 자녀를 먹여야 하니까 만드는 거지 아내가 먹고 싶어서 만든 적은 없었다. 닭도 그런데 오리야 오죽하겠나. 시윤이는 엄청 맛있게 먹었고 소윤이와 서윤이는 시윤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소윤이는 이렇게 표현했다.


“맛이 있기는 한데 잘 안 먹어본 맛이예여”


아침이 아니었으면 내가 정말 맛있게 먹었을 텐데, 아쉽다. 팔팔 끓여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내 옆에 앉은 아내가 ‘맛있어 보이네? 나도 한 번 먹어볼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을 텐데.


치과는 아내와 소윤이만 가기로 했는데, 시윤이가 문구점에 가고 싶다고 해서 다 함께 나갔다. 꽤 오래 전에 소윤이가 문구점에서 산 퍼즐북 같은 게 있었는데, 어제 소윤이가 그걸 소파에서 하고 있었다. 시윤이가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소윤이에게 자기도 좀 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소윤이는 꽤 매몰차게 거절했다. 덕분에 나한테 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쨌든 시윤이는 자기도 그걸 꼭 사고 싶다고 했고, 그걸 사러 문구점에 가자고 한 거였다. 그게 뭐라고 소윤이 치과에 갈 때 함께 나가서 문구점에 들르자고 했더니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아내와 소윤이를 먼저 치과에 내려주고 문구점으로 갔다. 시윤이는 소윤이와 다르다. 살 게 정해져 있었고, 그걸 집고 나서는 다른 걸 구경하고 싶은 욕구가 별로 없어 보였다. 오히려 서윤이가 자기도 뭘 사겠다고 하면서 의미 없는(너무 서윤이를 무시하는 듯하지만) 구경을 했다. 서윤이는 당당하게


“오빠. 나도 이거 사 줘”


라고 하면서 시윤이가 고른 퍼즐북을 하나 더 집었다. 아무리 싸도 낭비였다. 서윤이가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겨우 설득해서 색종이로 바꿨다. 시윤이는 거금 2,000원을 들여서 서윤이 색종이를 샀다. 자기 퍼즐북도 2,000원이었다. 내가 보기에 서윤이는 그에 합당한 고마움과 감사를 느끼지는 못하는 듯했다. 배은망덕하게.


문구점에서 나와 치과로 갔다. 소윤이는 아직 치료를 받고 있었고 한 10분 뒤에 치료실에서 나왔다. 씩씩하게 잘 받고 나왔다. 소윤이는 어제부터 치과에 가는 걸 두려워 했다. 아프지 않다는 건 알아도 그 묘한 두려움과 불쾌감이 싫었나 보다. 어른들도 그러는 것처럼. 그래도 꾹 참고 치료를 잘 받았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그 질문을 던졌다.


“아빠. 오늘은 우리 뭐 해여? 어디 가여?”


원래는 K네 식구와 바닷가에 가기로 했는데 K네 식구에게 사정이 생겨서 함께 가지 못하게 됐다. 지난 주에 바닷가를 너무 많이 가서 그런지 우리 가족만이라도 바닷가에 가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게.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해 보자”


집으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아내와 나의 점심으로 먹을 분식을 샀다. 아이들은 엄청 배가 고프지는 않다고 해서 집에 있는 콩국물을 먹이기로 했다. 콩국물만 먹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국수를 먹을 만큼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 때문에 점심 겸 간식 느낌으로 꽈배기를 샀다. 콩국물에 달콤한 꽈배기를 적셔 먹으면 꽤 별미가 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서윤이를 재웠다. 오늘은 내가 서윤이와 함께 들어갔다. 사실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그래도 서윤이와 함께 자려고 작정을 하고 들어간 건 아니었는데 아마도 내가 서윤이보다 더 먼저 잠든 것 같기도 했다. 그만큼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다. 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다. 거실에 나와 보니 어제와 비슷한 풍경이 보였다.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 게 있다면, 내가 있었던 자리에 아내가 누워 있었다는 거다.


“엄마도 계속 주무셨어?”

“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보낸 셈이었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건, 소윤이와 시윤이가 언젠가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엄마가 거실에서 자는 건 괜찮아여. 근데 방에 들어가서 서윤이랑 같이 잠들고 우리만 거실에 있는 건 싫어여”


소윤이와 시윤이는 마치 어제처럼, 의젓한 남매의 모습이었다.


오늘은 드라이브를 하고 왔다. 차의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서 긴급출동으로 시동을 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주행을 하는 게 필요했다. 겸사겸사 일부러 나갔다 왔다.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의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씩 샀다. 그 카페 바로 근처에 종종 가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먼저 그 얘기를 꺼냈다.


“아빠. 샌드위치 먹고 싶어여. 사 주세여”


어제와 오늘 지은 죄(?)도 있고 하니 내 사비(용돈)으로 샌드위치를 샀다. 2개를 샀다. 1개 당 2조각으로 잘라서 주니까 아내,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먹으면 됐다. 나는 안 먹었다. 내가 먹자고 한 개를 더 사는 것도 조금 애매해서 그냥 2개만 샀다. 난 먹으면 맛있기는 하지만 굳이 안 먹어도 아쉽지는 않으니까. 다들 참 잘 먹었다. 입이 코딱지만 한 서윤이도 자기가 벌릴 수 있는 최대치의 구강을 개방하며.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나서는 커피를 샀던 카페에 가서 빵을 몇 개 더 샀다. 지인들에게 전해 줄 빵이었다. 한살림에 들러서 장도 보고, 아이들이 먹을 아이스크림도 샀다. 아내와 나는 ‘커피’라는 드라이브의 즐거움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없으니 아이스크림을 사 주기로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두 명의 지인 집에 들러서 각각 빵을 비롯한 이것저것을 전달했다. 저녁으로는 치킨을 먹기로 했다. 치킨 가게에 들러서 치킨도 찾았다.


꽤 여러 일을 소화하고 오니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늦은 시간이 됐다. 휴가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애초에 각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평정심을 잃지는 않았다. 치킨도 맛있게 먹고,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먹고 하루를 마무리 했다.


서윤이에게는 미리 경고(?)를 했다.


“서윤아. 어제처럼 돌아다니면 아빠가 무섭게 혼 낼 거예요. 잠이 안 와도 눈 감고 누워서 자. 알았지?”

“네”


서윤이는 피곤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 혼이 날까 봐 그랬던 건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누워서 잠들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여행을 가거나 그러지 않고 집에서만 지낸 휴가는 올해가 처음이었다(작년에는 이사와 이직(?)의 공백기여서 따로 휴가의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웠고) 그래서인지 휴가가 꽤 길게 느껴졌는데, 마지막 날이 되니 ‘벌써 다 지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내도 나도 일상의 순환고리로 다시 진입하는 데 애를 먹을지도 모르겠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오늘 몇 번이나 얘기했다.


“아빠. 내일 아빠가 없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여”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면 안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