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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6. 2024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하루

23.08.10(목)

비가 많이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다. 온 천지를 뒤흔드는 것 같은 세찬 비바람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 같은, 폭풍 같은 하루(어제)를 보낸 아내가 오늘은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걱정이 됐다).


“여보. 괜찮아?”

“어, 뭐”

“시윤이는?”

“비슷하지. 비슷한데 내가 다르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어제 같은 날은 당연히 메마를 대로 메말랐을 거고, 하룻밤 사이에 곧바로 촉촉해지지는 않았을 거다. 그야말로 의지를 내어서 힘써 사랑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거실에 레고를 한가득 펼쳐서 놀고 있었다. 정말 많은 레고를 잔뜩 부어놓고. 그 광경만으로도 아내가 아이들을 여유롭게 대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요구를 넉넉히 수용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게 느껴졌다. 조금도 아니고 커다란 통을 두 개나 다 비울 정도의 양이었다.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심지어 서로 아주 사이좋게 하고 있었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서윤이가 먼저


“오빠. 나한테 양보해 줘서 고마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침개 반죽을 다 만들고 막 부치려던 참이었다. 부추부침개가 주요 음식이었는데, 김치부침개 반죽도 조금 있었다.


“두 개나 했네?”

“아, 이건 소윤이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그냥 조금만 했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셋 모두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통일해서 준비하는 것도 분주하고 정신이 없는데, 그걸 자녀의 선호와 기호를 고려해 나눠서 준비하는 건 말도 못한다. 두 가지로 나눈다고 해도. 이것 또한 아내의 수용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였다.


부침개의 전개 속도가 너무 느려서 나도 바로 투입되어 거들었다. 거든 게 아니라 내가 맡았다. 아내는 다른 걸 하고. 아이들과 함께 먹는 부침개는 항상 다소 허무하다. 부치는 건 한참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부치는데 먹는 건 순식간이다.


“여보. 오늘은 어제랑 집안 분위기가 조금 다르지? 내가 많이 노력했어”

“그러게. 여보 고생했네”


고생은 아내가 했는데 내가 잠이 왔다. 저녁을 다 먹고, 배부름이 느껴지니 조건반사처럼 눈이 스르륵 감겼다. 식탁의자에 앉은 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졸았다. 잠시 사경을 헤매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내가 세 자녀를 모두 씻기고 난 뒤였다.


“아, 여보. 미안. 너무 피곤해서 계속 졸았네”


대신 아이들을 눕히고 난 다음에는 내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부침개를 먹었다는 건 웬만한 곳에는 기름이 흥건히 묻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만큼 사용한 그릇도 많았고. 아내는 계속 자기가 하겠다고 했지만 아내를 소파로 밀어내고 내가 주방을 차지했다.


“여보. 좀 가만히 앉아서 쉬어”


아내의 노고가 각별히 큰 하루였다. 무엇보다 심정적으로. 아내의 무한한 수용으로 일군 유쾌하고 화창한 하루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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