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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6. 2024

바닷가 대신 물놀이터

23.08.12(토)

아이들은 바닷가를 잔뜩 벼르고 있었다. 축구를 하고 왔는데 이미 다들 수영복은 물론이고 구명조끼까지 입고 있었다. 분위기는 이미 해수욕장이었다. 시윤이는 구명조끼가 없어서 매번 ‘패들 점퍼’라고 불리는, 가슴 쪽에 차는 걸 했는데 항상 불만을 토로했다. 자기도 구명조끼가 입고 싶다고 했다. 단순히 불만토로는 아니었고 실제로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그걸 입고서는 튜브에 몸을 끼우는 게 매우 어려웠다. K의 첫째가 쓰는 구명조끼를 빌리기로 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위해.


K네 집에 다녀오면서 해수욕장의 동태와 평상 대여 가능 여부를 살피려고 바닷가에 들렀다. 뭔가 이상했다. 평상은 물론이고 파라솔도 없었다. 물에 들어간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해변의 모래 끝자락에는 미역처럼 보이는 해조류가 가지런히 늘어져 있었다. 거의 없기는 했지만 물에 들어간 사람도 있기는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렸다. 해변에서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는 백이면 백 누군가를 제지하는 소리였다. 부지런히 달려가서 호루라기를 부는 분에게 물어봤다.


“혹시 오늘 바닷가에 못 들어가나요?”

“네. 해파리 그물이랑 부표 정비가 안 돼서 오늘은 아직 못 들어가요”

“아, 그러면 혹시 언제쯤 다시 들어갈 수 있어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비보였다. 아내에게 급히 소식을 전했다. 태풍의 여파로 아직 입수가 금지된 상태였다. 수영복에 구명조끼까지 입고 바닷가인 양 집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던 자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K 선생님이 부지런히 대체 장소를 찾고 있었다. 꽤 큰 물놀이장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 거기도 오늘 휴무였다. 거기 말고는 그 정도 규모의 물놀이장은 없는 듯했다. 인근의 물놀이터에 가는 게 최선의 대안이었다. 여러 곳을 찾아서 이런저런 후기를 살펴봤다. 그나마 조금 크고 재밌어 보이는 곳으로 정했다. 자녀들에게도 불가피한 상황을 전하고 동의를 구했다. 큰 자녀들에게 너무 시시한 곳일까 봐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빵과 치킨, 김밥을 사서 갔다. 태풍이 오기 전에 비하면 날이 많이 선선해지기는 했지만 볕 아래는 여전히 뜨거웠다. 다행히 차광막이 널찍하게 설치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사람이 엄청 많지도 않았다. 아내와 J 선생님(K 선생님의 아내)은 자리를 지켰다. J 선생님은 막내를 계속 안고 있었고, 아내도 옆에서 돕기도 하고 여러 자녀의 이런저런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도 했다.


큰 자녀들이 너무 시시하게 생각할까 봐 걱정했던 건 쓸 데 없는 일이었다. 무척 재미있게 잘 놀았다. 바다에서 놀지 못하는 아쉬움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재미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즐거워 보였다. 서윤이와 K 선생님의 셋째가 놀기에도 딱이었다. 바다에 비하면 훨씬 안전했다. 대신 바다처럼 한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쉴 틈 없이 서윤이를 쫓아다녔다. 물에 관해서는 평균 이상의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다녔다. 그러면서도 큰 자녀들의 움직임을 계속 파악하고 있었다.


꽤 한참 놀았다. 물놀이터가 마감할 시간까지 놀았다. 소윤이는 나에게 와서 물었다.


“아빠. 우리 계곡도 가여?”

“어? 계곡? 계곡은 오늘 좀 힘들 거 같은데”


물놀이터 옆에 계곡이 있었는데 거기도 가서 놀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때가 이미 4시가 넘었을 때였다. 단순히 시간으로만 따지면 더 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어른 4명의 당시 체력이 꽤 많이 고갈된 상태였다. 아니면 아직 체력은 남아 있었지만, 곧 고갈이 될 지도 모르니 관리하는 차원에서 오늘의 물놀이는 거기서 마쳐야 했다.


그래도 바다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 일단 모래가 없으니까. 차에 타기 전에 간단히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혔다. 집에 와서 샤워도 시켰다. 평소에도 묵직한 피로는 자주 느끼는데 그것보다 훨씬 중량감 있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뭐가 그렇게 피곤한 건지 생각해 보니 물놀이 자체도 그렇지만 그 후에 씻기고 정리하는 과정이 만만하지가 않았다. 그나마 이제 자기들이 알아서 샤워를 하니까 조금 나았지만.


어느 정도 정비를 한 뒤에는 또 집에서 나왔다. 저녁을 먹으러 가야 했다. 아내와 내가 얼마 전에 처음 가 본 곳이었는데 반찬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자녀들과 함께 먹기에도 좋았고. 사람이 많다 보니 오늘도 자리를 잡는 게 까다로웠다. 오늘은 세 곳에 나눠 앉았다. 아내는 J 선생님, J 선생님의 막내, 첫째들과 한 식탁에 앉았다. 나와 K 선생님은 나머지 자녀와 함께 두 개의 식탁에 나눠 앉았다. 자녀가 많으니 음식이 나오면 분배하는 것도 일이었다. 게다가 적정한 양으로 배식하지 않으면 뒤로 갈수록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자녀들은 의외로 많이 먹지 않았다. 물놀이터에서 치킨과 빵을 계속 먹어서 배가 별로 안 고팠던 건지 아니면 음식이 입에 안 맞았던 건지 아무튼 다들 속도나 의지가 저조했다. 어른들도 고상하게 맛을 음미하고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무슨 정신으로 먹었는지 모를 만큼 허겁지겁, 소란스럽게 먹었다.


‘얼른 먹고 자녀들 챙겨야지’


이 생각을 가장 아래에 깔고 식사를 시작하게 된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특별한 시간인 만큼 아이들에게 합법적인 일탈의 시간을 허용한 거다. K 선생님이 가진 쿠폰을 써서 각자 먹고 싶은 맛을 하나씩 골랐다. 처음에는 각자 컵에 받아서 먹으려고 했는데 쿠폰 처리 과정에서 그게 불가능해졌다. 소윤이는 그걸 가지고 또 입을 삐죽거렸다. 순간 내면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다행히 잘 넘겼다. 밥은 다들 잘 안 먹었는데 아이스크림은 달랐다. 어찌나 부지런히 빠른 속도로 먹는지. 누구 하나 예외가 없었다.


“뭐지? 언제 10시가 됐지?”


집에 도착했을 즈음에 아내가 얘기했다.


“뭐지? 언제 11시가 다 됐지?”


그리고 얼마 안 돼서 또 얘기했다.


시간은 정말 술술 흘렀다. 내일은 주일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연속으로 너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니 오늘은 어제처럼 떠들지 않고 자도록 지도했다. 물론 여전히 설레는 마음을 잠재우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자녀들도 피곤하긴 했나 보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잠들었다. K 선생님의 둘째가 마지막이었는데 혼자 남아서 무서웠는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들이 자는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완전한 육아 퇴근은 거의 자정에 임박해서 가능했다. J 선생님은 오늘도 막내와 함께 잠들었고 아내는 씻고 나오니 피로가 몰려오는지 먼저 들어가서 자겠다고 했다. 나와 K 선생님만 생존해서 대화를 나누다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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