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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6. 2024

그래, 우리 다 함께, 더 인격적으로

23.08.13(주일)

아침을 준비했다. 계란밥으로 간단하게 주려고 하다가 그래도 손님에게 계란밥은 너무 간편함만 따진 것 같아서 토마토도 넣기로 했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래도 겉모양으로나 영양 구성으로나 토마토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고 (혼자) 믿었다. 그냥 계란밥을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막상 토마토와 버터를 넣어서 볶다 보니 너무 느끼해진 듯했다. K 선생님네 자녀들은 평소에 아침을 안 먹는다고 했다. 안 먹던 아침을 먹으려니 영 입맛이 안 돌아서 그런 건지, 그냥 볶음밥 자체가 입에 안 맞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다들 아주 조금씩 먹었다.


K 선생님네도, 찬양단 연습 때문에 10시까지 교회에 가야 하는 우리 식구의 일정에 맞춰서 함께 움직였다. 마침 오늘은 아동부 예배가 따로 없고 모든 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모두 본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K 선생님네 자녀들은 우리 처치홈스쿨의 다른 자녀들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지난 5월 전국 캠프 때 함께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서로 어색함보다는 반가움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도 교회에서 함께 먹고 카페에 갔다.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가정들도 함께 갔다. 어른 여덟에 자녀는 무려 열 셋이었다. 그 정도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카페가 드물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가만히 있기가 어려운 자녀들과 함께 실내에 머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야외 공간이 있는 카페로 갔다. 마침 날씨도 선선했다. 볕 아래가 아닌 그늘에 있으면 시원함을 느끼는 게 가능한 날씨였다. 그래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가 훨씬 시원하기는 했다.


아내들은 실내에 있었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남편들은 밖에 있었다. 자녀들은 여러 놀이를 하며 놀았다. 남편들은 제법 대화가 가능했다. 자녀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아빠들의 동참을 요구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아빠들에게 와서 이것저것 함께 하자는 요청을 많이 했다. 대체로 아빠들은


“그래. 조금 있다가”


라는 식의 대답을 많이 했다. 아빠들도 대화가 무르익은 만큼 대화를 끊지 않고 싶었고, 또 자녀들의 요청은 대부분 몸을 써야 하는 거라 본능적인 거부가 발휘됐다. 하지만 결국 모든 아빠들은 번갈아 가며 자녀들의 요구에 응했다. 자녀들은 제비뽑기를 만들어서 ‘술래’를 할 아빠를 뽑는 방식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고도의 심리전이자 좋은 전략이었다. 제비뽑기에 응하는 순간부터 아빠들의 머릿속에는


‘그래, 나만 아니면 되지 뭐’


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우리 가족과 K 선생님네는 헤어지고 나서 산책을 더 했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 봐야 하는, 이 곳의 몇 안 되는 매력적인 관광지인 공원을 걸었다. 그저께와 어제처럼 누적된 피로가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시간이었지만 함께 보낸 날이 보낼 날보다 많아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모두 꾹 참았다. 언제 다시 함께 걸을지 모르니까. 각 집의 첫째와 둘째는 여전히 서로 짝을 이뤄서 다녔다. 소윤이는 K 선생님의 첫째와 함께, 시윤이는 K 선생님의 둘째와 함께.


애초에 날이 선선하기도 했고, 산책을 할 때가 해가 질 무렵이었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었다. 꽤 걷고 나니 땀이 적잖이 흘렀다. 게다가 모두 교회에 갈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서 불편하기도 했다. 원래는 산책을 마치고 나면 집에 들러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을 먹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서 바로 식당으로 갔다. 막국수와 칼국수를 파는 곳이었는데 에어컨 바람이 아주 약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라 찔 듯이 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고 앉은 데다가 뜨거운 칼국수까지 먹으니 삐질삐질 땀이 흘렀다. 난 막국수를 먹어서 그나마 좀 나았다. 자녀들도 배가 고팠는지 아주 잘 먹었다. 특히 만두를 잘 먹었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했다.


“뭐지? 언제 이 시간이 됐지?”


아무래도 하루를 빡빡하게 쓰다 보니 퇴근 시간은 항상 비슷하다. 자녀들도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오늘도 그렇게 늦게까지 떠들지 못하고 잠들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어른들의 압박도 있었다.


“내일은 바닷가 가야 하니까 오늘 일찍 자. 아프면 안 되잖아”


아직 아이들이 모두 잠들지 않았을 때 어른들의 밤 수다가 시작됐다. 처음이었다. 점점 ‘젊은 엄마, 젊은 아빠’의 수식을 붙이기 어려운 나이가 되다 보니 퇴근 후의 시간을 마련하는 게 쉽지는 않다. 마지막 밤인 내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루라도 다 함께 앉아서 야심한 수다를 나눌 시간을 가져서 다행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육아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전히 부족하고 실수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었다.


“그래. 우리 당장 내일부터 아이들에게 조금 더 너그럽게 인격적으로 대하기 위해서 노력하자”


우리의 결론이자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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