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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8. 2024

끝판왕, 바닷가

23.08.14(월)

끝판왕을 상대해야 하는 날이었다. 드디어 바닷가에 가기로 했다. 어른들은 어제 자기 전부터 각오를 다졌다.


“내일은 바닷가네”


오늘의 아침 식사는 토스트였다. 토스트기가 없어서 프라이팬에 빵을 구워야 했는데 아무리 많이 올려도 식빵 세 장이 최대치였다. 생각보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꽤 소요됐다. 사실 내 자녀들이 가장 많이, 잘 먹는다. 입이 짧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차를 정리해야 해서 잠시 혼자 나왔다. 차에 있는 짐을 싹 정리해서 다른 차에 옮기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차에 다 실리지 않는 건 집으로 가지고 왔다. 아내와 시윤이가 보이지 않았다. 방에서 훈육도 아닌 대화도 아닌 막막함과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제의 다짐과 결단을 시험하는 가혹한 시련의 시간이었다. 잠깐 들어가서 아내와 시윤이의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나왔다. 아내에게 맡겨 두는 편이 나아 보였다. 아내와 시윤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모두 바닷가에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내와 시윤이는 꽤 한참 동안 나오지 않다가 시윤이가 먼저 방에서 나왔다. 방에 혼자 남은 아내가 걱정돼서 들어갔는데 아내는 역시나 아직 회복이 안 된 상태였다. 아내와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게 주고 받고’의 흐름은 아니었고, 주로 아내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말할 흐름에는 대체로 질문을 했다.


‘여보의 생각은 어떤지?’, ‘여보는 어떤 심정인지?’


자기만 준비하면 바로 나갈 수 있는 바깥의 상황이 압박 아닌 압박으로 느껴졌을 거다. 함께 육아와 처치홈스쿨을 하는 K, J 선생님에게 창피하기도 했을 거고. 아내는 그런 걸 이겨내는 의외의 ‘깡’과 담대함이 있다. 종종 놀란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그런지 바닷가가 왠지 모르게 어수선했다. 일단 평상을 빌렸다. 뭐 대단한 걸 할 건 아니었지만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K 선생님의 막내와 그녀를 돌봐야 하는 J 선생님을 위해 꼭 필요했다. 오늘은 아내도 물에 들어가지 않고 평상을 지키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시동이 잔뜩 걸린 상태였다.


“아빠. 바로 들어가도 돼여?”


평상 대여와 정리는 아내들에게 맡기고 나와 K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바로 바다로 향했다.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바다와 느낌이 조금 달랐다. 파도가 꽤 거칠었다. 워터파크의 파도풀처럼 큰 파도는 아니었지만, 올해 경험한 이곳의 바다는 평온함 그 자체였는데 오늘은 달랐다. 어른들에게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꽤 위협이 될 만한 세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물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타고 있던 보트 튜브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했다. 당연히 내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 조금도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서윤이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상황이었나 보다. 한참 울더니 그 이후로 다시는 바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몇 번이나 파도에 휩쓸려서 뒤집힌 채로 모래사장에 나뒹굴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파도타기(?)를 즐겼다.


중간에 차 때문에 잠깐 자리를 떠야 했다. 내가 수영을 못하다 보니 물에 대해 두려움이 크고, 자녀들과 함께 물놀이를 할 때 매우 보수적으로, 안전에 신경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물 속에서는 아이들의 자율을 굉장히 제한한다. ‘어디까지만 가라(그게 지자체에서 정한 한계구역보다 한참 전이라고 하더라도)’, ‘조끼와 튜브는 꼭 챙겨라’ 등등. 내가 자리를 비울 때 소윤이와 시윤이가 물 속에 있는 게 영 불안했다. 나와 함께 물 속에서 자녀들을 관리(?)하던 K 선생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나의 부재=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래사장에’. 이게 내 머릿속의 공식이었다. 게다가 내가 없으면 K 선생님 혼자 5명의 아이를 봐야 했다(소윤이, 시윤이, K 선생님의 첫째와 둘째, 그리고 막내. 막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밀착해야 했고).


“소윤아, 시윤아. 이리 와 봐”

“왜여?”

“아, 아빠가 지금 차 때문에 잠깐 집에 갔다 와야 하거든? 그런데 아빠가 없을 때 너희가 물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러니까 아빠 올 때까지는 잠깐 밖에 나와서 쉬면서 모래놀이 하고 있어. 알았지?”

“아빠. 얼마나 걸려여? 엄청 오래 걸리지는 않져?”

“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근데 언제 올 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 모래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시윤이는 K 선생님이 물에 들어가자고 했는데도 ‘아빠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라고 얘기하고는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대신 목이 빠지도록.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K 선생님의 자녀들까지. 일을 마친 뒤, 매우 서둘러서 해수욕장으로 갔다. 입수 마감 시간까지 1시간 30분 쯤 남았을 때였다. 활활 불태웠다.


끝판왕은 끝판왕이었다. 바닷물에 들어가서 노는 거야 뭐 재미있게 놀면 그만이지만 그 후가 가장 일이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이 씻고(각 집의 1호와 2호는 짝을 지어 알아서 씻었다) 물놀이로 양산된 각종 빨랫감과 용품을 1차 세척하는 게 꽤 오래 걸렸다.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내가 전공영역이 아닌 빨래를 담당했다. 뭐 사실 내 식대로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평소 아내의 규칙과 방식을 적용하려면 아내에게 수시로 확인이 필요했다. 아무튼 아내는 요리, 난 빨래를 맡아서 무사히 저녁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집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할인 가게에 갔다. 아마도 소윤이가 J 선생님에게 사전 작업을 한 듯했다. 자연드림이나 한살림, 엄마가 만들어 주는 가짜 아이스크림 말고 ‘진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으니 오늘 밤에 그걸 먹으러 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던 것 같았다. 무려 400km 이상을 떨어져 있다 만난 특별한 기간인 만큼 J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하고 싶었지만 일단 아빠 선생님들에게 물어보고 결정을 하겠다고 얘기했고. 나와 K 선생님은


“그래. 나가자”


라고 뜻을 모았다. 밤바람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시원하고 상쾌했다. 자녀들과 함께 그런 바람을 만끽하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 어른들끼리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도 했다. 산책 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키는 매우 쾌적한 바람이었다. 물론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K 선생님의 막내를 제외한 10명의 엄마와 아빠, 자녀들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밤바람을 맞았다.


바닷가에 갔다 와서 싹 씻었기 때문에 자녀들은 금방 자리에 누웠다. 이번 기간에 매번 그랬던 것처럼 1호는 1호끼리, 2호는 2호끼리. 자녀들도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싫었을 거다. 부모들도 함께 논의한 건 아니었지만, 자녀들이 안 자고 떠들어도 아마도 어느 정도는 모르는 척했을 거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 날 밤에는 기도를 하든, 게임을 하든 선생님들이 허용해 주는 것처럼. (자녀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끝판왕은 자녀들에게도 끝판왕이었다. 모두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그만큼 물놀이의 여파가 셌던 거다. 게다가 오늘은 물도 많이 먹고, 파도도 많이 탔으니까.


“엄마”


시윤이가 방에서 나왔다. 자기 잠들지 못하고 남아서 나온 거였다. 결국 시윤이는 아내와 내가 잘 방에 먼저 들어가서 잤다.


끝판왕의 후폭풍은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J 선생님은 막내와 함께 먼 세계로 떠났고, 나와 아내와 K 선생님만 거실에 남아서 마지막(?)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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