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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8. 2024

잘 놀았으니, 각오 해야지

23.08.15(화)

K 선생님네는 오전에 갔다. 5일 동안 소란스럽고 북적대던 집이 조용해졌다. 허전함과 한가로움을 느끼며 우리도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휴식이라고 해서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은 아니었다. 불가능하다. 집 정리도 하고, 아이들과 보드게임도 하고. 며칠 내내 바깥으로 나가서 열심히 놀았으니 오늘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다.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두 시간 넘게 낮잠을 자고 오후가 끝나갈 무렵에 깨서 나왔다. 잠깐 나갔다 오기로 했다. 서점에서 살 게 있기도 했고, 바람도 쐬고 싶었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저녁은 집에 돌아와서 먹을 계획이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서점이 있는 쇼핑몰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들이 꽤 많았다. 서점에 그렇게 길게 있지는 않았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막간의 틈을 잘 활용해서 이런저런 책들을 살피고 읽었다. 소윤이는 만들기 책이 너무 사고 싶다고 했다. 자기 용돈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니까 엄마나 아빠가 사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대놓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하나 사 줄까 고민을 했지만 엄청 유익한 책도 아니었고(그렇다고 유해한 책도 아니긴 했지만) 구매 욕구 억제의 경험을 쌓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그대로 내려놓고 왔다. 시윤이는 자기 용돈 2,000원을 투자해서 ‘이름 스티커’를 출력했다. 정말 활용도가 낮은, 쓸 모가 없는 스티커였지만 자기 용돈으로 산다고 하니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시윤이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몇 번이나 그 스티커를 흘리고, 두고 다니고 그랬다. 너무너무 시윤이답고, 너무너무 나 같고.


서윤이가 상태가 안 좋았다. 어제 자다가 깨서 엄청 울어서 왜 그러나 싶었는데 역시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도 조금 있었다. 활력도 없었다. 계속 유모차에 앉아 있으려고 했고 자기 입으로 몸이 힘들다고 했다.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집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팠다. 우리 모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아무것도 안 먹은 셈이라 그럴 만했다. 서점 근처에 있는 우동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소윤이가 우동이 먹고 싶다고 했다. 원래 맛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배도 고프고 기다린 시간도 길어서 그런지 유독 맛있게 먹었다. 서윤이만 못 먹었다. 서윤이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서 엄마와 아빠, 언니와 오빠가 맛있게 먹는 걸 관전했다.


집에 돌아오고 나니 서윤이의 상태가 조금 더 안 좋아졌다. 낮잠을 그렇게 많이 잤는데도 금방 잠들었다. 발등에 뭔가 우둘투둘한 두드러기들도 올라왔다. 작년 이 즈음에도 허벅지 쪽부터 시작된 두드러기로 고생을 했었다. 날이 조금 시원해지니 자연스럽게 사라졌는데 그게 다시 생긴 거다.


아내와 나는 각오를 다졌다.


“여보. 애들 이제 차례대로 아플지도 모르지. 그렇게 놀았으니까”

“맞아. 각오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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