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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8. 2024

엇갈린 자유부인

23.08.16(수)

아침에 시윤이와 통화를 하면서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막 표현하지 말고 참아보기, 감정이 상했다고 아무 말이나 막 내뱉지 않기, 엄마와 누나, 동생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


“시윤아. 오늘 한 번 노력해 보자? 알았지?”

“네”


오랜만에 아내 혼자 보내는 일상으로 돌아온 만큼 부디 아이들이 잘 협조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특히 시윤이가 마음을 잘 지키길 바라면서 얘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카페에서 아몬드 튀일을 샀는데 소윤이는 먼저 먹었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오늘 먹겠다고 했다. 아침에 시윤이가 그걸 먹으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자기도 먹고 싶다고 아내에게 얘기를 했나 보다. 소윤이의 몫은 이미 없는 상태였다. 그걸 들은 시윤이가 방에 있는 소윤이에게 아몬드 튀일을 통째로 주고 온 거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와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엄마가 누나 사랑하고 기쁘게 해 주라고 한 거 때문에 그런 거예여”


아내에게 나 대신 깊이 칭찬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윤이는 밤 사이에 바이러스를 조금 이겨냈는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열은 조금 있었지만 먹고 마시는 것, 노는 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또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지만 왠지 그대로 나을 것 같은 느낌이기는 했다.


시윤이의 선행(?)이 방증하듯 아내는 제법 괜찮은 하루를 보낸 듯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빵 가게에 가서 빵도 먹었다고 했다. 아내 혼자 데리고 가서 ‘먹고 왔다’라는 건, 그만큼 아내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저녁에는 소윤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야 했다. 원래 아내가 혼자 셋을 데리고 가야 했는데 생각보다 퇴근이 빨라져서 내가 데리고 갔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집에 있었고, 나와 소윤이만 갔다 왔다. 치료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집에 머물렀던 시윤이와 서윤이는 막간을 이용해 꽤나 투닥거렸다고 했다.


“아빠. 우리 오늘 밤 산책 나가자여”

“그럴까?”


아내는 집에 있기로 했다. 주방과 거실에 할 일이 태산이기는 했지만 그냥 쉬라고 했다. 흔하지 않은 집에서의 자유부인 시간이니 늘어지라고 권유하고 집에서 나왔다. 바닷가를 따라서 쭉 걸었다. 게임장에 들어가서 게임도 한 판씩 하고 마트에 들러서 게토레이도 하나씩 먹었다. 밤바람이 선선했지만 한 시간 넘게 걸으니 땀이 흐르긴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여보. 계속 일 했어?”

“아, 아니. 계속 소파에서 빈둥거리다가 조금 전에”

“그랬구나”

“아까 여보랑 애들 나가고 얼마 안 돼서 00한테 전화 왔어. 혹시 오늘 자유부인 가능하냐고”

“그래서?”

“여보랑 애들 조금 전에 나갔다고 했지”

“근데 그거랑 상관없는 거 아니야? 여보는 그냥 여보대로 나가면 되잖아”

“어? 그러네? 맞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지금이라도 연락해 봐. 조금 늦긴 했지만”

“그럴까?”


안타깝게도 자유부인으로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아내 혼자라도 나갔다 오라고 제안했고, 아내는 고무장갑을 벗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카페 마감 시간까지 2시간 정도가 남았을 때였다. 보통 집에 와서도 차에 앉아서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가 많으니 그것까지 고려하면 약 3시간 정도의 ‘집 밖에서의 자유시간’이 가능한 셈이었다. 역시나 아내는 남은 시간을 꽉 채워서 쓰고 귀가했다.


“여보. 나와. 편의점 가자”


아내와 내가 아이들 없이 즐기는 집 밖에서의 유일한 시간이다. 채 3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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