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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08. 2024

딸과의 소통 방법

23.08.17(목)

시윤이는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번 주말에 아내가 부모님 집에 가기로 했는데 그때 자기도 가고 싶다고 우는 거였다. 단순한 떼는 아니었을 거다. 정말 자기도 함께 가고 싶었을 거고, 엄마와 떨어지는 게 싫었을 거다. 의외로 시윤이는 감정이 섬세한 편이다. 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죽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을 펑펑 흘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위로해 주는 게 필요했고, 아내에게도 가능하면 위로를 해 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게. 알지만 너무 심해서 힘드네”


항상 그렇듯 아내도 모르는 게 아니다. 알지만 현실은 아는 것보다 훨씬 큰 괴리를 만들어 내는 게 문제다. 아내와 아이들은 소윤이 피아노 수업 때문에 오전에 교회에 왔는데 시윤이는 그때까지 울고 있었던 듯했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그친 듯했다. 시윤이의 표정과 안구의 충혈도, 아내의 표정을 종합해서 유추했다.


나도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내가 차를 써야 해서 소윤이의 피아노 수업이 끝나고 아내와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줬다. 소윤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시는 집사님이 다른 수업을 하는 동안 집사님의 딸(소윤이 친구)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논다고 했다. 다른 자녀가 집에 오면 생기는 장점이 있다. 일단 소윤이와 시윤이가 조금 더 조심하게 된다. 가족이 아닌 손님이 오게 되면 아이들도 평소보다 조금 더 수용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물론 손님이 있어도 다툼과 갈등을 만들어 내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또 하나의 장점은, 아내도 조심하게 된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감정의 배출을 굉장히 자제한다는 거다. 한참 어린 자녀의 친구라고 하더라도 손님은 손님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많이 참고 또 참게 된다. 참는 건 언제나 이득인데 평소에는 제동 장치가 없어서 힘들었다면, 오늘처럼 손님이 있는 날에는 강력한 제동 장치가 작동을 하는 셈이다. 퇴근하고 왔을 때는 소윤이 친구는 가고 없었다. 아내의 상태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자녀들의 상태도 마찬가지였고.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고, 식사 기도를 했다. 소윤이가 눈을 뜨고 있길래 눈을 감으라고 했는데, 소윤이는 자기는 눈을 뜨지 않았다고 했다. 이게 시발점이 되어서 한참 동안 저녁 식사가 지체됐다. 기도할 때 눈을 뜨고 감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눈을 감아야 한다는 관습이 존재할 뿐, 법이나 규칙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고 얘기한 걸 부정하는 소윤이의 태도에 화가 났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당황스러웠다. 난 내가 직접 확인한 걸 얘기했는데 소윤이는 끝까지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이건 윽박질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소윤이는 진심으로 눈을 뜨지 않았다고 얘기했고, 난 눈을 뜨고 있는 걸 봤고. 이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 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서 마무리 해야 할 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소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윤이가 아무리 엄마를 좋아해도 나와 통하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딸에게는 엄마와의 소통이 훨씬 효율적일 때가 많다.


긴 시간 얘기를 나눈 아내가 나를 방으로 불렀다. 아내는 소윤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평소 습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떴거나 깜빡거린 것 같다고 했다. 소윤이도 나에게, 나도 소윤이에게 서로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죄송할 일도, 미안할 일도 아니었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고 서로 ‘사실’이라고 믿는 게 충돌할 뿐이었다. 나는 방에서 먼저 나왔고 소윤이는 아내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나와 시윤이, 서윤이는 아내와 소윤이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미 저녁을 다 먹었고, 소윤이와 아내는 나와서 마저 먹었다. 소윤이는 ‘자기의 반응 때문에 아빠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서 우울해했다.


“소윤아. 아니야. 아빠 기분이 안 좋거나 그렇지 않아. 소윤이도 정말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고 했고, 아빠도 마찬가지였고. 그럼 그걸로 끝인 거지. 기분이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종종 생길 텐데, 오늘처럼 하면 안 되나. 내가 잘못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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