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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10. 2024

그립고 그리운 나의 동반자, 아내

23.08.19(토)

아내는 아침 9시 비행기를 타야 했다. 원래 공항까지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시윤이가 아침에도 열이 나고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집에서 이별을 했다. 시윤이는 매우 서글프게 울었다. 진심으로 엄마와의 이별을 슬퍼했다. 몸이 안 좋으니 감정이 더 증폭됐을 거다. 길게 울지는 않았다. 아내가 가고 나니 금방 그치긴 했다. 눈에 슬픔이 가득하긴 했지만.


슬픔과 별개로 상태는 어제보다 좋아 보였다. 열은 여전히 있었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말도 더 많이 하고, 웃기도 더 많이 웃고, 움직이기도 더 많이 움직이고, 다투기도 더 많이 다투고. 누군가와 다툴 힘을 회복했다는 건 대체로 거의 다 나았다는 걸 뜻한다고 무방하다. 오랜만에 배도 고프다고 해서 분주하게 밥을 차려줬는데 정작 몇 숟가락 먹지는 못했다. 목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먹고 싶기는 한데 목이 아프니까 넘기지 못했다. 블루베리와 사과는 조금 먹었다.


“아빠. 우리 오늘 캠핑카 만들자여”


작년에 회사 동료에게 받은 레고를 말하는 거였다. 내가 집중해서 해도 몇 시간이 걸릴 만한 수준의 레고라 딱 한 번 하다가 그대로 넣어 놓고 올해 여름이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 그걸 하자고 했다.


“그래, 알았어. 오늘은 시간 많으니까 하면 되겠다”


라고 말은 했는데 뭐 이렇게 쉬지 않고 할 일이 많은지. 아침 차려주고, 그거 치우고, 과일 깎아주고, 그거 치우고, 서윤이 똥 닦아주고, 잠깐 커피 마시는 동안 ‘아빠. 언제 할 수 있어여?’ 라는 물음에 ‘어, 이제 하자’ 라고 대답했지만 배에서 신호 와서 화장실 가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꺼내줬다.


“아빠. 같이 하자여”

“아빠? 일단 너희끼리 하고 있어”


장난감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했던가. 즐겁고 행복하자고 꺼낸 레고는 다툼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 일쑤였다. 소윤이는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데 시윤이가 자꾸 자기와 동등하게 하려고 하고, 시윤이는 자기도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데 능력은 안 되니까 자꾸 누나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데 그건 싫고, 서윤이는 아무것도 할 줄은 모르는데 언니와 오빠와 무언가 함께 하고 싶고. 대략 이런 상황이 계속 충돌했다.


“얘들아. 그렇게 할 거면 그만하고 정리해. 즐겁자고 하는 건데 왜 그렇게 다퉈”


시윤이와 서윤이는 금방 나가떨어졌다. 소윤이만 끈기를 가지고 조립을 이어갔다.


“아빠. 저는 상상해서 만드는 건 못하겠는데 이렇게 설명서 보고 만드는 건 재밌어여”


레고를 꽤 오랫동안 했다. 그 사이 시윤이는 갑자기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는 듯 혼자 안방 침대에 눕기도 했다.


“시윤아. 힘들어?”

“조금”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게 아니라 먹은 게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시윤이는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나왔다. 목이 아픈데 먹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래도 먹겠다고 했다.


“아빠. 목이 너무 아파여”


밥에 물을 좀 부어줬더니 그나마 먹을만 하다고 하면서 드디어 밥을 좀 넘겼다. 그걸 먹고 난 뒤에는 거의 완전하게 평소의 모습을 회복했다. 다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 중간에 혼자 침대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왔다. 아내와 통화하면서 그 얘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있을 때 좀 잘 하라고 전해주세요”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서윤이가 수족구인 건 확실해 보였지만 그래도 일단 병원에 가서 설명을 듣고 약을 받으려고 갔다. 두드러기만 심할 뿐 상태는 멀쩡한 게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커피도 한 잔 샀다. 사서 마실까 집에 가서 직접 타 마실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 홀로 육아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당당히 결제했다.


저녁에는 아내가 사 놓은 닭다리살을 야채와 함께 볶아서 줬다. 아이들이 특별히 힘들게 하고 그런 건 없었다. 끼니 때는 어쩜 그리 빨리 돌아오고 매 끼 ‘뭘 먹여야 하나’ 고민이 끊이지 않는 게 꽤 강도 높은 육아 활동이었다. 아내는 고생하는 나를 위해 저녁으로 먹을 햄버거를 배달시켜줬다.


아이들 모두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얘들아. 엄마가 제일 그리운 건 아빠야”


여보. 격정적으로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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