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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10. 2024

1년 아니고 하루

23.08.20(주일)

“아빠. 제 손에 왜 이런 게 생겼져? 물집이 생겼어여”


시윤이의 새끼손가락 중간 즈음에 자그마한 두드러기가 보였다. 시윤이는 물집이라고 표현했지만, 난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아, 시윤이도 걸렸구나’


몸 이곳저곳을 살펴봤는데 딱 그거 하나였다. 하나여도 확실했다. 시윤이가 열이 나고 그랬던 것도 수족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시윤이는 어제보다 더 완벽하게 회복한 모습이었다.


난 자다가 새벽에 깼다. 목이 아팠다. 이물감도 엄청 심했다. 단순히 목이 아픈 것하고는 조금 달랐다. 경험해 본 적 없는 느낌이었다. 거울로 목 안을 봤더니 뭔가 커다란 혹처럼 늘어진 게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목 아플 때’, ‘목 부었을 때’, ‘목 이물감’ 이런 걸로 검색을 하다가, 그 늘어진 게 뭔지 궁금해졌다. ‘목 부위 명칭’, ‘목 부위 이름’ 이런 걸 검색했다.


‘아, 맞다. 목젖이지. 그래, 목젖이구나’


이런 게 아는데 모르는 건가. 피로와 음주, 면역력 저하, 역류성 식도염 등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금방 완화된다고 했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물감이 굉장히 불편해서 다시 잠들기 어려웠지만 결국 다시 자긴 했다.


아침에 깼을 때도 여전히 불편했다. 예배가 끝나고 나면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연 병원을 찾아서 몇 시까지 진료를 하는지 물어봤다. 예배가 끝나면 바로 가야 겨우 접수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불편했다. 아프지는 않았다. 목젖이 축 늘어져서 혀에 닿는 그 느낌이 매우 견디기 어려웠다. 평소답지 않게 따뜻한 물을 자주 마셨다. 예배를 드리다 보니 조금씩 완화되는 게 느껴졌다. 급성으로 부었다가 급성으로 완화되는 모양이었다. 병원에는 안 가기로 했다.


드디어 아내가 오는 날이었다. 시윤이는 ‘빨리 저녁에 됐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시윤아, 누구보다 아빠가 그래. 고작 1박 2일이었는데 며칠은 된 것처럼 아내의 복귀가 반가웠다.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아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너저분한 집도 정리를 하고, 주방과 싱크대는 (내 역량 안에서는)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 잔뜩 쌓인 빨래도 하고. 아이들에게도 방 정리와 책상 정리의 역할을 부여했다.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일정이 있는 셈이었으니 낮에 서윤이를 재웠다. 난 함께 잘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고, 누운 김에 잠깐 쉬다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나에게는 이미 그런 저항력이 없었다. 눕자마자, 서윤이보다 더 먼저 잠들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방에 들어와서 날 깨웠다. 굉장히 잠깐인 기분이었는데 거실에 나와서 시계를 보니 거의 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서윤이는 조금 더 자고 나왔다.


저녁은 아내를 만나서 같이 먹기로 했는데, 점심은 건너뛴 거나 다름없이 먹었다. 냉동실에 있는 만두를 구워주고 과일을 깎아줬다. 그러다 보니 저녁 무렵이 되어서는 아이들이 엄청 배고파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를 데리러 공항에 가서 미니 꿀호떡 한 봉지와 생수 한 병을 샀다. 한 사람 당 미니 꿀호떡 2개를 먹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저녁식사에 지장이 생길 테니 아주 급한 허기만 달래려고 했는데, 허기를 달래기에도 모자란 양이었나 보다. 아이들은 여전히 너무 배가 고프다고 했다.


드디어 아내가 등장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아내를 향해 뛰어가서 안겼다. 국제선 입국장에서 몇 년 만에 만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 마음속에서도 깊은 안도감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아, 이제 혼자가 아니야’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렇게 배가 고프다고 했던 아이들은 의외로 잘 먹지 못했다. 소윤이는 왠지 몸이 안 좋아 보였고, 시윤이는 피곤해 보였다. 서윤이만 평소와 다름없이 멀쩡했다. 너무 많이 남아서 포장을 해 왔다.


“여보. 보고 싶었어?”

“어, 당연하지. 애들보다 내가 제일 보고 싶었지”


진심이었다. 내가 있을 때 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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