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20(수)
아내가 차를 써야 해서 일찌감치 일어나 출근했다. 당연히 애들 깨는 건 못 보고. 아침에 바빴는지 아내에게 별 연락이 없었다. 홈스쿨 끝났을 쯤에나 연락이 됐다.
[아침에 잘 갔어?]
[겨우 겨우 갔지 뭐]
홈스쿨을 마친 아내는 곧바로 친구네 집이 있는 합정으로 갔다.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이 있었다. 차가 있으니 아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는구만. 퇴근할 무렵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몇 시쯤 올 거야?"
"글쎄. 왜?"
"아니. 바로 올 거면 내가 합정으로 갈까 했지"
"아. 그게 편하겠구나. 그럼 합정으로 와요"
"근데 오늘은 저번처럼 더 있다 오는 게 아니라, 난 바로 와야 되는데"
"아. 맞다. 축구하러 가지. 그럼 어떻게 하지"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해 줘"
"알았어요"
아내는 아마 거기서 더 머물 수 있으면 머물다가, 애들 저녁도 먹이고 오는 길에 재우려는 모양이었다. 수요일이 아니었으면(축구하는 날이 아니었으면) 내가 합정으로 가서 같이 저녁도 먹고 그랬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아내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여보. 나 희주네서 애들 저녁 먹이고 갈 게]
[오키. 나 축구하기 전에 안 온다는 거지? 오면서 애들 재우려는 거 맞지? 여보의 큰 그림. 응원해]
집에 가서 좀 쉬거나, 더럽기 짝이 없는 집을 치우고 축구하러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사고가 나서 길이 막히는 바람에 안 그래도 먼 퇴근길이 더 오래 걸렸다. 집에서 옷만 갈아 입고 바로 다시 나갔다. 집안 곳곳이 더러움과 난잡함으로 덮여 있었으나, 치울 여유가 없었다. 아이 둘과 함께 집으로 입성할 아내를 위해 좀 치워주고 나가려고 했는데.
수요일에 축구하는 곳은 집에서 차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다. 차는 아내가 가지고 갔으니 버스를 타야 하는데, 배차가 30분이라 놓치면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다. 당연히 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20여분을 걸어서 운동장에 갔다. 차가 없는 것도, 버스를 놓친 것도, 어느 것 하나도 짜증 나지 않고 그저 즐거웠다. 드디어 수요 축구가 재개되었다.
축구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해보니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고 했다. 오는 길에 시윤이는 잠들고 소윤이는 깨어 있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했다. 둘 다 잠들었으면 한 명은 안고, 한 명은 유모차에 태워서 한꺼번에 옮겨야 하는데, 그것도 매우 힘든 일일뿐더러 유모차도 없었다고 했다.
아내는 편의점에서 레토르트 떡볶이를 사 오라고 했다. 떡볶이를 들고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아내가 채 설거지를 마치기도 전에 시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내는 절망했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싱크대에 기대며 주저앉았다. 할 일을 마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냉장고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떡볶이를 향한 그리움이 그 이유였겠지.
"여보. 다른 건 괜찮은데 쌀만 좀 씻어줘요"
5분도 안 걸려 끝나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맨날 압박을 받을까 싶었는데, 자기 전에 쌀 안 씻은 게 생각나서 그제야 하려니 세상에 그것보다 귀찮은 일이 또 없었다. 아내의 평온한 아침과 재빠른 조식 준비를 위해 미루지 않고 쌀을 씻어놨다.
아침에도 못 보고, 밤에도 못 보면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폭발한다. 소윤이랑 시윤이 사이에 누워서 자고 싶었는데, 아내가 선점(이라고 하기에는 끌려 들어간 거지만)하고 있었다.
소윤이가 하루 종일 아빠 보고 싶다고 많이 했다던데. '내일은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소윤이랑 많이 놀아줘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다음부터는 미리미리 공부해 놔야지'라는 시험 끝난 날의 다짐처럼 부질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