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토하고, 딸도 토하고

19.02.21(목)

by 어깨아빠

아침에 눈을 뜨는 소윤이가 옅은 짜증을 뱉었다. 어찌 보면 신음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소리와 함께. 5살이 되는 동안 비슷한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 있다. 내 손은 곧바로 소윤이 이마로 향했고, 뜨끈했다.


"여보. 소윤이 열 있는 것 같은데"

"그래?"


37도 후반이었다.


"나도 열 좀 재봐야겠다"

"여보는 몇 도야?"

"나도 비슷하네"


아내도 어제 몸이 안 좋다며 타이레놀을 먹고 잤었다. 시윤이는 여전히 노란 콧물을 질질 흘리며 콜록거리고. 나 빼고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내일 울산에 가야 하는데 하필 이러다니. 시윤이는 아픈 건 아닌 것 같은데, 배가 고파서 그런가 눈 뜨자마자 울고불고 난리였다. 부디 모두가 나아지기를 바라며 출근했다.


[몸은 좀 어때?]

[난 그래도 좀 나아진 듯. 소윤이는 자다 깨다 하고]

[시윤이는 아침 먹고 괜찮아졌어?]

[응. 신나 있지]


중간중간 통화할 때도, 아내가 전하는 상황은 비슷했다. 본인은 괜찮고, 소윤이는 계속 비슷하고. 시윤이는 콧물과 기침이 있을 뿐, 전혀 아프지 않고. 퇴근하고 일단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아내와 내일 울산으로의 여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한편으로는 취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낮에 장모님이 집에 오셨다. 아내와 장모님, 아이들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고, 나도 퇴근 후 바로 병원으로 갔다.


"누구 진료 보실 거예요?"

"아. 저 빼고 다요"


먼저 소윤이. 다행히(?)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목이 많이 부어 있다고 했다.


"지금 목이 많이 부어 있어서, 아마 앞으로 이틀 정도는 열이 오르락내리락할 수도 있어요. 지금 이 동네에 목감기가 워낙 유행이에요"


도대체 감기가 유행이 아닌 시절이 존재를 하기는 하는지 궁금했다. 다음은 시윤이. 시윤이의 숨소리를 들어보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정밀 청진기(내 추측이다)로 바꿔 소리를 들으셨다. 잠시 후 안도의 표정과 함께 받은 진단은 이러하다.


"천식 소리가 들려서 놀랐는데 코에서 나는 소리네요. 시윤이는 그냥 코가 잔뜩 부어 있는 비염 같은 상태예요"


다음은 아내.


"어머님은 소윤이랑 거의 똑같은 증세라고 보시면 돼요"


모전녀전이 따로 없구만. 소윤이는 극도로 지치거나 힘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금방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갈 것 같기도 하고. 분간이 어려웠다.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 가서 약을 한 보따리 받아 왔다.


"엄마. 나 약 언제 먹어여?"

"글쎄. 약 먹을지 안 먹을지 아직 몰라"


우리 애들은 식탐을 부리다 부리다 약까지 즐겨 먹는다. 다른 애들은 약 한 번 먹이려면 진을 뺀다는데, 이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소윤이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꽤 많이 토했다. 낮에도 한 번 토했다고 했다. 내가 애들을 데리고 집에 올라가고 아내가 토사물을 치웠다. 토하고 나니 속이 좀 편해졌는지 표정은 더 좋아졌고, 체온도 조금 떨어져 있었다.


"여보. 나 위기였어"

"왜?"

"소윤이꺼 치우다 나도 넘길 뻔했어"

"아. 하긴"


아주 시큼한 소윤이의 토 냄새를 맡아도 난 아무렇지 않지만, 아내는 크게 요동한다. 난 시윤이 똥과 냄새가 더 싫다.


"여보. 소윤이 약은 어떻게 하지?"

"음. 안 먹여도 되지 않을까?"

"그래야겠지?"


내일 울산에 가려면 일단 약 먹여서 열 떨어뜨리고 온전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다른 증상은 없고 그저 열인데 해열제에 항생제까지 먹이자니 뭔가 싫어서(평소에도 약은 잘 안 먹인다) 먹이지 않기로 했다.


"아빠. 나 약 먹고 싶은데"

"소윤아. 약은 좋은 게 아니야. 소윤이가 진짜 힘들고 지쳐서 더 이상 소윤이 몸속에 있는 좋은 병균이 나쁜 병균이랑 싸우지 못할 때 도와주려고 먹는 거지. 조금 아프다고 약 먹으면 좋은 병균이 일을 안 해. 그럼 나쁜 병균들이 '야 저기 소윤이 몸에는 좋은 병균이 안 싸워. 또 가자' 이러면서 다음에 또 오는 거야"

"그래도 먹고 싶은데"

"소윤아. 약은 정말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먹는 게 좋은 거야. 알았지? 대신 소윤이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한테 기도해. 아빠도 소윤이 얼른 낫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할게. 알았지?"


하루 종일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소윤이는, 물 마시려고 컵을 들었을 때 손을 덜덜 떨었다.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서 밥이랑 죽 중에 뭘 먹고 싶냐고 했더니 밥을 먹겠다고 했다. 흰 밥을 제법 먹었다. 역시나, 또 토했다. 소윤이는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을 말하며 아내에게 적어두라고 했다. 다 낫고 나면 먹어야 한다며.


아내의 상태도 영 별로였다. 내내 괜찮다고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어떻게 보면 소윤이 보다 더 아픈 것 같았다.


"소윤이야 그렇다 쳐도, 나는 이미 버린 몸. 얼른 약 먹어야지"


아내도 토했다. 꾸엑꾸엑. 화장실에 분명히 아내가 들어갔는데, 가오나시가 나왔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일단 웬만하면 가는 것으로 하고, 짐을 쌌다. 캐리어도 모자라서 커다란 가방에도 따로 챙겨 놓은 짐들이 헛되지 않도록, 부디 내일까지 모두 낫기를 기도했다. 아내가 먼저 들어가서 자고, 난 나머지 짐과 집을 좀 정리했다. 나라도 멀쩡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여보는 혹시 소윤이가 그대로면 시윤이랑 둘이는 안 갈 거야?"

"응. 안 가"


모두 나아서 다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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