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강의 듣기

19.02.22(금)

by 어깨아빠

할렐루야.


소윤이의 열은 기적처럼 뚝 떨어졌다. 아내도 마찬가지고. 물론 완전히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니어도, 어제 자기 전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소윤아. 거 봐. 약 안 먹고도 열 다 내려가잖아. 좋지?"

"응"


열이 다 떨어졌어도 아직 컨디션은 정상이 아닐 테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기는 했다. 적어도 12시 30분까지는 울산에 도착해야 해서 새벽부터 일어났다. 원래 목표는 7시 출발이었지만 당연히 지켜질 리 없고, 7시 30분에 시동을 걸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어제 남은 죽을 데워서 간단히 먹였다. 둘 다 잘 먹었고, 소윤이도 이번에는 게워내지 않고 잘 넘겼다. 차에 타고나서는 소윤이, 시윤이 모두 금방 다시 잠들었다.


아내의 상태도 매우 좋았다. 모르고 보면 아팠다는 게 티가 안 날 정도로. 덕분에 아내가 자지 않고 계속 말동무를 해 줄 수 있었고, 첫 휴게소까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애들도 꽤 오래 잤고, 깨고 나서도 멀쩡했다. 특히 소윤이는 땀을 뻘뻘 흘리고, 열이 완전히 떨어졌다. 무엇보다 표정과 몸짓이 원래의 소윤이로 돌아왔다.


점심은 울산에 가서 먹기로 하고, 휴게소에서는 간단하게 요기만 했다. 몸이 멀쩡해지니 다시 이것저것 찾기 시작하던 소윤이에게 소시지를 하나 쥐어줬다. 가장 덜 해롭고, 덜 부대낄 것 같은 걸로. 시윤이도 하나. 밖에서 통감자 튀김도 하나 사 왔는데, 다행히 삶은 감자처럼 담백했다. 아직 속이 어떤지 모르는 소윤이에게 딱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부지런히 울산으로 향했다. 12시 30분쯤 도착했다. 애들을 고려해 두부 요리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때쯤 소윤이는 완전히 정상이었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고 첫 술을 떴는데, 하아. 웬만하면 먹을 때 불평불만을 자제하는 편인데,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올 뻔했다. 예전에 울산에 살 때 몇 번 와 본 곳이었는데, 그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그나마 시윤이가 청국장이랑 밥을 잘 먹어서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소윤이도 잘 먹었고.


1박 2일 동안 처치홈스쿨 전국 캠프가 있어서 울산에 왔다. 마침 장소도 우리가 다녔던 교회였다. 친한 친구들도 많고. 소윤이 때문에 안 왔으면 서운할 뻔했다. 캠프의 주된 일정은 강의였다. 홈스쿨 캠프이니만큼 다들 아이를 동반했다. 우리야 둘이지만 셋, 넷인 집도 심심찮게 보였다. 음, 그만큼 어수선하고 정신없었다는 말이다. 아내와 나만해도 가만히 앉아서 강의를 들을 수가 없었다. 소윤이는 반강제로 같이 앉혀 놓을 수가 있었는데, 이 놈의 강시윤은 통제불능이었다. 그나마 초반에는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보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자포자기였다. 소윤이도 풀어놓고 아내와 나도 굳이 앞자리를 사수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왜 힘든지 모르겠는데, 땀은 삐질삐질 흐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고. 왜 힘들긴. 강시윤 때문이지. 아, 어찌나 말을 안 듣고 뺀질뺀질거리는지. 요즘은 능청 수치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오후의 힘겹고 버거운 여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시간이 됐다. 캠프의 주최 측이자 절친한 동생인 하준이가 주강사인 장로님과 함께 식사를 하라고 했다. 우리 가족, 함께 홈스쿨을 하는 시안이랑 시안이 아빠랑.


저녁 메뉴는 밥, 미역국, 돼지불고기, 소불고기 등이었다. 80이 넘으신, 해외 각국의 대사를 역임하신 장로님과 식사를 하면서 애들을 챙기는 건 부도덕한 일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몸은 일자로 펴고, 얼굴은 일그러뜨리는 시윤이와 그를 안고 사투를 벌이는 아내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도움을 보탤 수가 없었다. 애써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장로님께 질문을 던져 놓고, 장로님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예전 회사에서 밥 먹듯 일삼던 의전 업무의 본능이 남아 있는지, 방언 터지듯 장로님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도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 장로님이 밥 숟가락을 드실 때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처넣었다.


장로님을 다시 자리로 모셔다 드리고 후다다닥 식당으로 다시 내려왔다. 아내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보. 괜찮아?"

"아. 몰라. 얘 왜 이래"


그걸 알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겠어. 저녁 강의도 포기했다. 처음에는 역시 의지를 가지고 들어보려 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애들을 위해 별도의 공간에서 영화를 보여준다길래 소윤이랑 시윤이를 거기 데려다 놨지만, 5분 만에 엄마를 찾으며 돌아왔다. 둘 다. 하아.


공식 일정이 끝난 시간 자체도 매우 늦었는데, 각 지역 리더들은 또 따로 모인다고 해서 거기 참석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그 늦은 시간에도 지치지 않고 잘 놀았다. 아직 완전하지 않을 수 있는 소윤이를 너무 늦게 재우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아내가 소윤이랑 시윤이를 씻기는 동안 차에 가서 이불을 가져와서 우리 자리에 폈다.


여러 사람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자는 거라 꽤 어수선했지만, 다행히 우리 식구는 모두 자는 건 예민하지 않은 편이다. 열감기로 시달리고, 장거리 이동에, 하루 종일 열심히 놀았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나. 아내가 제일 먼저 잠들고, 소윤이랑 시윤이가 차례로 잠들었다. 아내랑 나는 씻지도 못한 상태라 아내를 깨웠다.


따로 샤워 공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온수가 나오는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할 수는 있었다. 먼저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가 비보를 전했다.


"여보. 이제 온수가 안 나온대"


절망스러웠지만 하루 종일 분출된 땀을 씻어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군대에서의 2년이 참 쓸데없지만, 찬물로 씻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만큼은 유익하게 작용한다. 군 시절의 찬물 샤워를 떠올리고 혼자 호들갑을 떨며 샤워를 마쳤다.


아내는 몇몇 사람과 나가서 컵라면을 먹고 오겠다고 했다. 난 밀린 일기나 쓸까 하고 아이패드를 꺼냈다. 한두 단락쯤 썼을까,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애들은 아니었다. 잠시 후 한 엄마가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밖이긴 해도 우는 소리는 잘 들렸다. 조금 진정된 후 다시 들어와서 아이를 눕혔는데, 애가 또 깼다. 군데군데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고 움직임이 보였다. 아이 엄마는 부리나케 아이를 안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그 아이의 울음소리 위에 익숙한 울음소리가 얹혔다.


시윤이가 깼다. 어떻게든 다시 재워보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얘도 울었다. 다른 아이들까지 깰까 봐 급히 데리고 나왔다. 아까 그 아이 엄마가 여전히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약간의 원망하는 마음과 조금의 동지의식, 동정의 마음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시윤이는 계속 엄마를 찾았다.


"엄마아"

"엄마 없어"

"아아아아. 엄마아"

"엄마 없어. 너네 엄마 라면 먹으러 갔어"

"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

"엄마 없어. 시윤아. 엄마 이따 와. 아빠가 안아줄 테니까 울지 말고 기다리자"


다행히 울음을 멈추긴 했지만 안아준다고 다시 잠들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돌아오라고 카톡 할까 하다가 산통 깨는 게 싫어서 관뒀다. 시윤이는 계속 자지 않았고, 30분 넘게 안고 있었다.


즐거운 야간 회동을 마친 아내가 돌아왔다. 어둠 속을 방황하는 익숙한 실루엣을 보고 아내가 동행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거 시윤이야?"


그래. 당신 아들이다. 아내를 배려해 연락하지 않았지만, 내면의 짜증까지 막지는 못했다.


"전화하지 그랬어"


아무 대꾸 없이 허망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아이패드를 거둬 가방에 넣었다. 생각해 보니 강시윤도 너무하다. 하다 하다 울산까지 와서도 자다 깨다니.


확, 마, 궁디를 쭈차뿌까. 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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