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결혼기념일

19.02.23(토)

by 어깨아빠

소윤이가 살짝 열이 올랐다. 겉으로 보이는 상태도 안 좋아지고. 열이 떨어졌다고 좋아서 방심해서, 어제 너무 늦게까지 재우지 않은 게 후회됐다. 소윤이의 모든 말과 행동에 잔잔한 짜증이 깔려 있었다. 아파도 엄마, 아빠한테 짜증 내는 건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하긴 했지만, 아픈 애한테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엄청 피곤해 보였다. 늦게 잔 데다가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여서 푹 못 잤는지,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졸려 보였다.


오늘도 주된 일정은 강의였다. 애들은 밖에 나가서 야구를 한다고 했지만, 우리 애들은 당연히 가지 않았다. 시윤이는 거기 섞일 군번이 아니었고, 소윤이는 엄마, 아빠 없이 다른 무리에 섞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아이다. 오늘은 몸이 아프기도 했고.


점심은 캠프에 참여한 가족 중 두 가족이 무작위로 짝을 지어 밖에 나가 밥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서울 사당동에서 온, 아이가 하나인 가족과 짝이 됐다. 오잉. 어제 나와 함께 밖에서 고전하던 그 아기와 엄마였다. 속으로 원망의 마음을 품었던 게 민망해졌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소윤이는 매우 졸려 보이길래 유모차에 태워서 재우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잘 것을 종용했다.


"소윤아. 너 열은 별로 없어. 피곤해서 그래. 지금 조금 자. 그럼 나아질 거야"


유모차에 눕기는 했지만 소윤이는 자지 않았다. 그래, 니가 낮잠 하고는 정말 악연이지. 시윤이와 그 집 아이는 유모차에서 곤히 잤다. 덕분에 식사하는 동안 어느 정도는 대화가 가능했다. 물론 소윤이는 계속 비슷한 태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교회에 돌아가서도 소윤이는 마찬가지였다. 오후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소윤이를 따로 빈 공간에 데리고 갔다.


"소윤아. 아빠랑 기도하자"

"무슨 기도여?"

"소윤이 열 떨어지고 얼른 낫게 해 달라고"


애초에 엄청 아픈 건 아니었다. 마치 어른들이 피곤하면 예민해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열은 아주 미열이었다. 소윤이를 안고 기도를 했다. 소윤이의 언어가 아닌, 어른의 언어로. 기도를 끝내고 보니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길래, 체온계를 귀에 꽂아봤다.


"헐"

"왜여?"

"소윤아. 36.5도야. 정상이야"

"잉?"

"대박인데. 기도했더니 나은 거 아니야?"

"아빠랑 내가 낫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그런 거 같은데? 얼른 엄마한테 가서 자랑해"


소윤이는 쪼르르르 아내한테 달려가서 상황을 전했다.


"엄마. 아빠랑 내가 기도했는데 열이 다 떨어졌어여"

"우와. 진짜? 이리 와 봐. 정말이네?"


이것은 기복 신앙의 학습인가, 응답의 경험인가.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열이 떨어지긴 했지만 피곤해 보이는 건 여전했다. 결국 아내에게 안겨 있다가 잠이 들었고, 의자에 눕혔다. 카시트가 아닌 곳에서 낮잠을 잔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정말 피곤하긴 했나 보다. 시윤이는 엄청 오래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여전히 자고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예배가 시작됐다. 둘이 동시에 자는 건 또 얼마만인지. 조금 앞으로 가서 혼자 앉았다. 나름대로 예배에 집중했다. 중간쯤 시윤이가 먼저 깼다. 소윤이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잤다. 엄청 오래 잔 거다.


긴 잠에서 깬 소윤이는 다시 평소 모습을 회복했다. 다행이었다.


참, 오늘은 아내와 나의 결혼기념일이다. 어제 자정 이후부터 틈틈이 서로 축하를 주고받았다.


"여보. 결혼기념일 축하해"


말로 주고받을 뿐, 딱히 다른 건 없었다. 원래 캠프를 마치고 부산에 가서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왔다. 울산에 오면 우리가 주로 신세를 지는 은율이네가 자기 집에서 하루를 자고 가라고 했다. 거기에 소윤이는 하루 종일 승아(은율이, 가을이 엄마) 이모 옆에 딱 붙어서, 승아 이모를 향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얘기했다.


"아빠. 나 은율이네 집에서 자고 가고 싶은데"

"아빠. 나 은율이랑 더 많이 놀고 싶은데"


부산에 가서 뭔가 할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소윤이가 너무 아쉬워하기도 해서 은율이네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또 다른 울산의 신세 제공 가정인 시언이네도 자기 집에 오라고 했으나, 거기는 이번 캠프의 주최 측으로써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한 번 권유했을 때 "그럴까?"라고 답하고 갔으면 어땠을까)


결혼기념일에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게 곱씹어 보면 이상한 일 같기도 하지만, 또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 우리끼리 보냈어도 애들 뒤치다꺼리하느라 기진맥진했을 거다.


결혼하고 6번째 맞는 결혼기념일인데, 가장 평범하게 보냈다. 3월에 계획된 제주도 여행의 명분을 [결혼기념일 여행]으로 잡으면 된다며, 위안했다.


은율이네 도착했더니 대성 씨(은율이, 가을이 아빠)는 먼저 잡힌 약속이 있다며 도망쳤다. 지난번 울산에 왔을 때도 대성 씨는 도망자였다. 나 홀로 세 아이(은율이, 소윤이, 시윤이)를 목욕시켰던 악몽이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윤이가 완전히 정상이었다는 것 정도.


일단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몸이 노곤했다. 슬며시 방에 들어가 바닥에 누웠다. 원래 잘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잠시 휴식이나 취하고 나가려고 했다. 휴대폰을 보다가 두어 번 얼굴로 떨어뜨렸다.


'잠깐 눈이나 좀 붙일까'


애들이 시끄럽게 노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긴 했지만 엄청 졸렸는지 금방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


'뭐야. 엄청 오래 잔 것 같은데'


라고 느낄 정도로 엄청 개운했다. 마치 3시간은 잔 느낌이었다. 거실로 나가 보니 애들은 저녁까지 다 먹은 상태였다.


"여보. 나 얼마나 잔 거지?"

"글쎄. 한 시간 좀 넘게?"


덕분에 꽤 많은 체력을 비축했다. 소윤이랑 시윤이 씻기는 건 모두 내가 했다. 애들을 씻겨서 나오니 거실이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그걸 계속 보고 있자니 심란하기도 하고, 남의 집에서 신세 지면서 너무 어지럽히면 그것도 미안하고 해서 애들을 유인해 함께 치웠다. 내 집이 아니라 막 아무 데나 쑤셔 박을 수도 없고, 집에서 치우는 것보다 진도가 느렸다.


승아는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그냥 두세요. 오빠(대성 씨) 오면 치우라고 하면 돼여"


도망자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순전히 내 입장에서, 약간의 유희를 위한 표현이었다. 실제로는 일하러 간 거였다. 그가 토요일 밤을 내어주고 벌어들인 돈이 다 어디로 가겠는가. 그의 처와 자식들에게 돌아갈 터인데, 승아는 남편의 귀환만을 기다렸다.


대성 씨가 귀가하고, 우리는 애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갔다. 극도의 피곤함을 호소하는 아내가 가장 먼저 잠들었다. 애들도 그리 오래 끌지 않고 금방 눈을 감았다. 아내를 깨워 다시 거실로 나왔는데, 거실이 아주 깨끗해져 있었다. 대성 씨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대성 씨는 참 착하다. 나랑은 결이 다른 사람이다.


양쪽 집의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파티는 시작됐다. 그래 봐야 치킨이지만, 끝없는 수다와 웃음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특히 이 집 내외는 나의 개그에 매우 호의적이어서, 잘 웃어준다. 좋다. 마치 내가 유재석이 된 느낌이다.


참 여러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대성 씨가 얼마 전에 몰래(라고 쓰기는 했지만, 애초에 '몰래'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아내에게 말없이, 허락을 득하지 않고'라고 쓰는 게 정확할 거다) 밤새 미드를 본 것 때문에 싸웠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슨 미드였는지는 몰라도, 애들 다 재우고 남는 밤 시간에 본 것도 꾸중의 실마리가 되는 게 대성 씨의 현실이었다.(물론 늦게 자고, 밤을 새운 다음 날에는 극복할 수 없는 피곤함이 몰아치는 덕분에 육아에 소홀해졌겠지만)


대성 씨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미드, 끊지 말고 계속 보기를. 굴하지 말고 역경을 견뎌내면 언젠가는 빛을 보는 날이 올 거요. 대성 동지.


아무튼 밤, 아니 새벽까지 많이 떠들고 웃었다. 내일 다시 먼 길을 떠나 서울로 가야 했지만, 경험상 일찍 자도 졸릴 때는 졸렸다. 그럴 바에야 실컷 놀고라도 가야 덜 억울하니까, 굳이 일찍 자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수다를 마치고 자리에 누워서 다시 아내와 인사를 나눴다.


"여보. 이제 지났네. 그래도 결혼기념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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