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으로

19.02.24(주일)

by 어깨아빠

주일 아침에 남의 집에서 아침까지 얻어먹는 건 여러모로 참 미안스럽다. 우리가 아니어도 분주하기 짝이 없을 텐데, 우리 식구까지 챙기려면 더 부산스러우니까. 그나마 평소에도 아침을 챙겨 먹는 편이라고 해서(우리 때문에 따로 아침을 차린 건 아니라고 해서) 조금 덜 미안했다. 어쨌든 우리 모두 11시에 집에서 나왔다.


어제 우리 가족을 따로 불러서 말씀도 해주시고, 기도도 해주신 목사님께 참 감사하고 감동해서, 오늘 설교를 좀 열심히 듣고 싶었다. 강시윤이 협조하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고집쟁이가 됐는지, 한 번 떼를 쓰기 시작하면(명확한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라 앉히는 데 한참 걸린다. 떼쓰는 걸로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으며, 순종만이 너의 살 길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원활하지 않은 의사소통으로 인해 매우 난항을 겪고 있다.


예배를 마치고 시언이네랑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른 넷, 애들 다섯의 대규모 인원이다 보니 넓은 장소도 필요했고,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도 필요했다. 이런저런 후보군들 가운데 샤브샤브 집이 선택됐다. 끓고 있는 물속에 야채랑 고기도 넣어야 하고, 애들 입 속에 익은 야채랑 고기도 넣어야 하고. 내 입에도 넣어야 하고.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었나 보다. 한나(시언이, 시아, 시온이 엄마)는 시온이를 아기띠로 안고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 고든 램지가 와서 요리를 해줘도 먹을 맛이 안 난다. 전쟁 같은 식사였다. 때로는 샤브샤브를 먹는 목적이기도 한, 국수와 볶음밥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밥 먹고 나서 태화강 공원에 갔다. 소윤이가 원래 어제 공원에 가고 싶다고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 몸도 안 좋았고 공기 질도 최악이었다. 오늘은 꼭 가자고 약속을 했었다. 애들끼리 좀 더 놀 시간도 필요했고. 은율이네도 예배를 마치고 합류했다. 커피를 한 잔씩 사서 공원에 갔다.


울산의 좋은 점이 여럿 있다. 우선 각종 공공기관과 편의시설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 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 경기도민이지만 경기도청에 가려면, 차 하나 없는 한밤중에 가도 1시간을 넘게 달려야 한다. 울산은 고만고만한 곳에 다 모여 있다. 그다음은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것. 늘 바다 곁에 사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서울 촌놈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한강만큼 부담스럽지 않지만, 청계천 보다는 할 게 많은 태화강 공원이 있다는 것.


애들은 풀어놓으니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잘 놀았다. 시윤이도 열심히 쫓아다녔다. 시야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일일이 쫓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대성 씨가 애 넷(소윤이, 시윤이, 은율이, 시언이)을 한꺼번에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좀 편했나 보다. 역시 육아계의 박지성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헌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뭔가 자연친화적이다. 소윤아, 시윤아 나중에 조금 더 크면 울산에 며칠 놀러 갔다 오고 그래라. 은율이네 집 이틀, 시언이네 집 이틀. 이렇게. 물론 너네끼리.


날씨까지 좋아서 꽤 한참 밖에 있었다. [대나무 자르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대나무가 수북이 쌓여 있고, 톱 두 자루가 있었다. 이것은 체험인가, 고난인가. 중학교 [실과] 시간에 배운 [밀 때는 힘 빼고, 당길 때는 힘주고]를 떠올리며 열심히 톱질을 했다. 이게 뭐라고 너도 나도 대나무를 잘라서 가지겠다고 난리였다. 시윤이까지. (누가 구청에 민원 좀 넣어야 할 것 같다. 얼른 없애라고.


그렇게 실컷 놀고도 소윤이는 가자고 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긴 했다. 이제 소윤이도 안다. 울산에서 가자고 하는 건, 꽤 오랜 시간 다시 볼 수 없다는 얘기라는 걸. 아랫집, 옆동네에 사는 친구랑 헤어지는 것 하고는 다르다는 걸, 소윤이도 안다. 금요일에 소윤이가 나한테 얘기했다.


"아빠. 울산에 살고 싶다"

"왜?"

"그냥. 울산에 살고 싶어"


10개월만 살았어도, 자기 고향이라고 정이 있는 건가.


그래도 잘 구슬려서 인사할 때는 마음이 진정된 상태로 건강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흙바닥에서 뒹군 아이들을 간단하게라도 씻겨서 가려고 교회로 갔다. 화장실에 가서 손과 발, 얼굴만 닦아주고 옷을 갈아 입혔다. 커피와 빵을 사서 다시 대장정을 시작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출발하자마자 잠들었다. 아내도 매우 졸려했다.


"여보. 나 자도 돼?"

"어. 자"


다행히 난 졸리지 않았다. 혼자 찬양을 흥얼거리며 열심히 달렸다. 전체 거리의 절반을 조금 못 갔을 때 소윤이랑 시윤이가 깼다. 소윤이가 힘들다며 징징댔다. 최대한 더 버티다가 충주휴게소에서 처음 쉬었다. 거기서 애들 밥도 먹였다.(잘 먹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중간에 좀 힘들다고 그러긴 했어도 잘 참고 갔다. 시윤이가 난리였다. 나중에는 카시트에서 팔을 빼가지고 몸을 옆으로 완전히 꺾어가며 울고불고 그랬다. 주행 중 카시트 이탈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게 우리 집의 철칙이다. 바로 차를 세우고 더 강력히 결박했다. 시윤이는 더 악에 받쳐 울고.


그래도 무사히, 오래 걸리지 않고(5시간이면 선방했다) 집에 도착했다. 집도 지저분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내가 들어가서 애들을 재우고 난 차에 가서 짐을 싹 가지고 올라왔다. 짐을 갖다 놓기만 하고 정리하지는 못했다. 지인 중에 누군가는 여행 갔다 오면 그날 바로 짐을 다 정리해야 잔다던데. 난 그런 류는 아니다.


여행을 다녀온 게 아닌데 꼭 여행을 끝낸 기분이다. 사는 곳에 상관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금방 슬퍼졌다. 출근할 곳이 없었다면 더 슬펐을 거라고 위안을 삼으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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