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25(월)
역시 어제는 별로 안 피곤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차를 가지고 출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다 문득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게 생각났고, 아내의 자유의 날이라는 것도 연달아 떠올랐다.
'오늘은 넘기고 내일 나가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흘러가는 대로 순리에 따르기로 했다.
소윤이도 아내도 오전에는 엄청 피곤해서 처져 있었다고 했다. 특히 소윤이가 계속 누워 있으려고 하고, 활력이 없어서 다시 아프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다행히 오후가 되니 멀쩡해졌다. 아내도 마찬가지고.
아내랑 통화하는데 아내가 먼저 물었다.
"여보. 오늘 괜찮겠어?"
"어? 뭐가?"
"오늘 월요일이잖아"
"아. 여보? 괜찮지 뭐"
"힘들면 오늘은 안 나가도 되고"
"아니야. 뭐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지 뭐"
"그래? 알았어"
"뭐 특별한 약속 있는 건 아니고?"
"어. 그런 건 아니야"
시윤이가 낮잠을 좀 늦게 잔 게 최고의 불안요소였다. 안 자면 재우지 않을 각오를 했다. 진작부터. 너무너무 피곤해서 차에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셨다. 가짜 카페인이겠지만, 부디 효능을 발휘하길 바라면서. 아내가 부탁한 연잎밥을 한살림에서 사 가지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말이 됐다.
"아빠. 얼른 이리 와 봐여. 엎드려 봐여. 이렇게"
"잠깐만. 아빠 손 좀 씻고"
"아빠. 얼른 이리 와여"
"그래. 알았어"
말타기 놀이를 하면 무릎이 아프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대가로 연골을 내주는 느낌이다.
"소윤아. 아빠 무릎이 아파서 계속은 못하겠다"
"아. 그래여? 그럼 여기 이렇게 앉아봐요"
"소윤이가 아빠를 밟고 올라가는 것도 이제 많이 아파"
"그럼 딱 한 번만 하고 다른 거 할게여"
"아빠. 그럼 일어나 봐여"
"흣짜. 뭐하게?"
"안아봐여"
"흐아아아"
신음소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즐겁지만 힘겹게 아이들이랑 놀고 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밥 다 됐다. 이제 앉자"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다. 그나마 두 녀석이 앉아서 밥을 먹고, 아내가 애들과 함께 있으면 조금 쉴 틈이 생긴다. 소파에 늘어진 채로 애들 몰래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물론 다 알겠지만) 쉰다기보다 잠시 이탈할 수 있는 즐거움이랄까.
그 와중에 소윤이는 불성실한 태도와 식사 시간 미준수로 인해, 내일 점심 먹기 전까지 간식 금지의 징계를 받았다. 그래도 본인의 귀책을 인정하기 때문에 금방 수긍하고 진정된다.
다른 날 같았으면 아내에게 얼른 나가라고 채근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저녁 식사 종료와 동시에 차례대로 한 명씩 씻겼다. 파바바박. 순식간에, 잘 준비 끝.
"와. 여보 엄청 일찍 끝냈네?"
"어. 일찍 들어가기라도 해야지. 안 잘 때는 늦게 들어가도 안 자니까"
아내가 나가기 전에 나랑 애들은 방에 누웠다.
"소윤아. 잘 자. 시윤이도 잘 자"
"엄마. 이따 내 옆에 누워여"
"엄마. 빠빠"
"여보. 안녕"
아내가 나가고 나서 책을 두 권 읽었다. 소윤이는 금방 잠들었다. 시윤이는 잠들 것처럼 손가락을 쪽쪽 빨며 얌전해지더니, 그 상태를 쭉 유지했다. 안 잤다는 말이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서 시윤이한테 얘기했다.
"아빠. 나갈 거니까 너 혼자 자"
"아아아아"
"뭘 아아아아 야. 아빠 있어도 안 자니까 너 혼자 여기 누워서 자.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거실로 나와버렸다. 시윤이는 안에서 조금 우는가 싶더니 곧바로 따라 나왔다.
"아빠아아아아"
"얼른 들어가서 자"
"으아아아아아아아"
우는 시윤이를 외면하고 작은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시윤이는 계속 거실에 엎어져 울었다. 그렇게 한 30분을 울었다. 난 계속 작은 방에 있었다.
"강시윤. 그만 울어"
"으아아아아아아"
"얼른 들어가서 자"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들어가서 잘 거야?"
"응"
안방 문을 열어주니 쪼르르 들어가서 자기 자리에 누웠다.
"이제 나오지 말고 코 자"
하고 문을 닫았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같이 들어간다는 뜻인 줄 알았나 보다. 시윤이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시윤이. 아빠랑 들어갈까?"
"응"
"아빠랑 들어가면 코 잘 거야?"
"응"
시윤이와 함께 다시 방에 들어갔다. 분명히 아까보다 더 졸려 보였는데, 이 잡것이 또 자지 않았다. 하아.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나 엄청 쌩쌩하니까, 재울 생각은 하덜 말아요'라는 몸짓을 보이던가. 잘 것처럼 그래 놓고 안 자면 이 아빠가 얼마나 짜증이 나겠냐고.
다시 시윤이를 두고 거실로 나왔다. 아까는 시윤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짜증과 화가 동반됐다. 시윤이도 따라 나왔다. 아까처럼 혼자 거실에 앉아서 크게 울었다.
"니가 안 자니까 그런 거야. 들어갔으면 자야지. 왜 안 자고 계속 버텨. 그럼 아빠가 얼마나 힘들겠어. 이제 끝났어. 혼자 들어가서 자든지 말든지 해. 아빠는 시윤이 신경 안 쓸 거야"
참으로 유치한 말들을 시윤이에게 쏟아냈다. 단어로든 뉘앙스로든 다 알아들은 시윤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혼자 작은 방에 앉아 짜증을 다스렸다. 시윤이가 홀로 들어가서 잘 리는 없고, 이대로 다시 같이 들어가기는 싫고. 조금 마음을 진정시킨 후, 시윤이를 불렀다.
"시윤아"
"데"
"아빠가 안아줄까?"
"데"
"이리 와"
이 녀석은 속도 없나. 쭐래쭐래 걸어와서 나한테 폭 안겼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내가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는 동안, 꽤 한참을 그 자세로 있었다. 몇 번 눈이 스르르 감기기도 했다. 잠들기에는 자세가 불편했는지 깊이 잠들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몸을 반대쪽으로 틀려고 했다.
"시윤아. 내려줄까?"
"응"
내려줬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돌아다녔다. 불이 꺼진 거실에는 가지 않고, 내 옆에서 주로 움직였다. 자신의 만행(?)을 아는지, 뜬금없는 애교도 많이 부렸다. 이런 게 결자해지인가. 어쨌든 시윤이와 놀면서 다시 평상시의 마음을 회복했다.
다시 데리고 들어갔을 때는 금방 잠들었다.
아내는 이 모든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카톡으로 현 상황을 전파했다. 아내는 치킨을 사 들고 복귀했다.
"여보. 이거 말고는 여보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게 생각이 안 났어"
뭔가 수준이 낮은 것 같아 인정하기 싫었지만, 아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나한테 그렇게 구박받고도 속없이 나에게 오는 시윤이처럼, 나도 물색없이 치킨 앞에 앉아 샐샐거렸다.
시윤아. 부전자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