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26(화)
소윤이는 어제저녁에 식사 규칙을 어긴 대가로 오늘 점심 먹기 전까지 간식을 먹을 수 없었다. 아내가 카톡으로 슬쩍, 오늘 아침을 너무 잘 먹었으니 간식을 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일종의 특별사면이랄까. 그러기로 하고 소윤이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쓱 이야기를 꺼냈다.
"소윤아"
"응"
"소윤이 어제저녁에 밥 안 먹어서 오늘 점심까지 아무것도 못 먹잖아?"
"아빠. 아침에 잘 먹었으니까 먹을 수 있잖아여"
소윤이가 너무 능청스럽게 말하길래 아내가 미리 얘기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저 소윤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계획을 급히 변경했다.
"아니야. 그건 규칙이니까 오늘 점심까지는 못 먹는 거야. 아무리 아침을 잘 먹었어도"
"그래도 먹고 싶은데"
"응. 그럼 다음부터는 밥 먹을 때 감사히, 열심히 먹으면 돼"
아내의 표현대로, 소윤이는 자기 복을 스스로 차 버렸다. 존댓말 훈련도 더 강도 높게 시켜야겠다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적당한 자숙이 필요하다.
다행히 소윤이가 간식 때문에 아내를 힘들게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윤이가 징징거린다고 했다.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마 물어봤어도 명확한 답을 듣지는 못했겠지.
퇴근 무렵, 아내는 애들이랑 한살림에 장 보러 나왔다고 연락을 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롯데슈퍼에 있다길래 그리로 갔다. 시윤이가 먼저 날 발견하고 외쳤다.
"아빠"
곧이어 소윤이도 날 보고 달려왔다. 유모차에 편안하게 앉아있던 시윤이는 날 보더니 안아달라고 두 팔을 뻗기 시작했다.
"아빠. 안아. 안아"
다행히 소윤이가 자기도 안아 달라고 하지 않아서 부담 없이 시윤이를 안았다. 대신 육체의 부담은 여전했다. 이제 시윤이도 정말 무겁다. 잠깐 안아주고 나서 다시 내려놨다. 유모차가 아닌 바닥에 내려놓으니 크게 거부는 없었다. 오히려 신나서 뛰어다녔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애들이랑 이것저것 하면서 놀다가 내가 먼저 숨바꼭질을 제안했다. 잘 숨으면, 꽤 오래 쉴 수 있다. 집이 좁아서 맨날 숨는 곳이 비슷하지만 한 번씩 의외의 장소로 숨으면 잘 찾지 못한다. 병원놀이와 더불어 놀면서도 합법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놀이다. 집이 조금 더 넓으면 더 많이 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고 난 운동하러 갔다 왔다. 연락이 없길래 혹시 잠들었나 싶어서 카톡을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잤어?"
"어. 살짝 잠들었어"
아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내일 홈스쿨 할 때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며 잠깐 컴퓨터를 쓰고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 집도 치우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데"
"하기 싫으면 그냥 둬. 내가 내일 축구하고 와서 치울게. 어차피 내일 여보 홈스쿨 가니까"
계속 집에 있으면 어질러진 집의 꼬라지를 봐야 하지만 나가면 그럴 필요 없으니 하루 더 그 상태(개판오분전)로 둬도 되지 않느냐는 뜻이다.
"아니야. 그래도 치워야지"
어떻게 하지. 아내의 입술이 고장 났나 보다. 아니, 몸이 고장 난 건가. 따로 논다. 몸과 입술이. 입술에서 만들어내는 문장과는 다르게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 친구랑 전화 통화를 시작하더니, 무려 1시간 40분을 이어갔다.
"여보. 나 대박이지?"
"와. 그러게. 진짜 대단하다"
그러고 나서는 웹툰 타임.
"아. 집 치워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
"그냥 두라니까. 어차피 내일 안 볼 텐데. 내일 축구하고 와서 내가 치울게. 내일까지 그냥 둬"
"그래도. 그 전에는 해야지"
과연 나는 내일, 축구하고 와서 뭘 가장 먼저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