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아파도 나 이렇게 나가요

19.02.27(수)

by 어깨아빠

모두 곤히 자고 있을 때,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차 없이 가야 하는 수요일이기 때문에. 과연 내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아침에 잘 일어났다는 연락을 주고받고 나서는, 홈스쿨 끝나고 다시 연락이 됐다.


[우와. 머리 아프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두통은 아내가 결혼 전은 물론이요 연애하기도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질병이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도 아니고, 잊기도 전에 한 번씩 찾아 올 정도로 잦다. 소윤이를 낳고 나서는 두통은 물론이고, 모든 건강 상태가 출산 전보다 좋아진 느낌이었다. 시윤이를 낳고 나서는 오히려 원래보다 후퇴한 느낌이다. 애를 낳으면 낳을수록 몸이 상하는 건 맞는 것 같다. 낳는 것보다 힘든 기르는 과정도 기다리니까.


홈스쿨을 마친 아내가 사무실 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머리도 아픈데 뭘 와. 힘들게"

"아냐. 난 별로 안 힘들어. 그래도 여보는 내가 가면 편하지 않아?"

"당연히 그렇기야 하지. 그래도 뭔가 너무 먼데"

"아무튼 이따 상황 봐서 다시 연락할게요"

"그래"


아내의 입장에서는 집에서 아픈 머리 싸매고 두 녀석과 지지고 볶느니, 차라리 차에 태워 왔다 갔다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애들과 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카시트에 앉아 있을 때, 종종 평화가 찾아오고 천상의 평온함을 느끼곤 한다.


아내는 퇴근 한 시간 전쯤 왔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적당한 선을 잘 지켰다. 아내는 얼굴이 창백했다.


집에 가서 밥 차려서 먹이고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릴까 봐 밖에서 먹이고 들어갈까 했는데, 아내가 그냥 집에서 먹이자고 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축구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모든 착장을 마치고, 아내가 밥 차리는 동안 애들이랑 놀았다.


다행히 아내의 상태는 조금 나아졌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두통이 극심한 걸 보면서도 축구를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 그랬으면서 아내가 걱정은 돼서 최대한 늦게 집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올 때 아이들은 아직 씻지도 않은 상태였다. 걱정은 했지만 발언은 하지 않았다.


"여보. 오늘 축구 쉴까?"


이런 발언.


"여보. 갔다 올게"

"그래. 하아"


아내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순도 100%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머.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와버렸네?"

"여보. 미안"

"아니야. 얼른 가"


"소윤아. 시윤아. 아빠 축구하고 올 게"

"아빠. 빠빠이"

"아빠. 내일 만나여"


일주일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 이때겠지. 누가 봐도 축구하러 가는 복장으로 차가운 밤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면서 오직 축구 생각만 가득 찬다. (물론 실력은 그와 비례하지는 않지만)


다 끝나고 휴대폰을 봤더니 카톡이 두 개 와 있었다.


[이제 막 들어옴] - 20시 15분


모든 걸 끝내고 방에 들어가서 누운 게 이때라는 얘기다.


[여보. 조금이라도 치우려고 했는데 머리가 갑자기 심하게 아파서 아예 손도 못 댔어요. 너무 미안. 무리해서 치우지 않아도 되니까 고생하지 마요] - 22시


아내가 의도한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오히려 이런 카톡을 받으면 더 열심히 치우게 된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말을 잘해야 한다. 천냥 빚 갚는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들어가자마자 집을 치웠다. 적당한 쑤셔 박기와 눈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기 신공으로 얼핏 보기에는 깨끗한 상태를 만들었다. 설거지는 하지 못했다. 써야 할 일기가 많이 밀려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컸다.


모든 걸 다 끝내고 자러 들어가기 전에 잠깐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깨서 나왔다. 다행히 머리 아픈 건 좀 가라앉았다고 했다.


"여보. 그래도 다 치워 놓으니까 좋지?"

"당연하지"

"설거지는 못했어. 미안"

"아니야. 내가 내일 하면 돼. 여보 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피곤하겠다"

"나? 왜?"

"내일 나 서진이 만나기로 했잖아"

"아. 맞다. 대박. 완전 잊고 있었다. 하아. 슬프다"


그 말인 즉, 내일도 차를 두고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오히려 '내일은 일찍 안 일어나도 되니까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느껴지는 햄스트링과 종아리의 통증이 내일은 더 심해지겠지?


괜찮아. 그래도 내일 하루만 출근하면 끝이니까.


라고 생각을 해봐도 전혀 힘이 나지 않았다. 흑흑. 내일 버스랑 지하철 타기 싫다. 귀찮다.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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