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은 인싸들의 놀이터

19.02.28(목)

by 어깨아빠

슬프지만 오늘도 차와는 인사만 나누고 두 발을 이용해 씩씩하게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안녕. 난 오늘도 널 탈 수 없단다"


아내는 장지동까지 가야 했다. 저번에 충남 서천에서 신림동까지 운전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서울/수도권을 이동한 걸로 따지면 최장거리였다. 낮시간이라 많이 막힐 것 같지는 않았지만 외곽순환, 동부간선도로로 이어지는 정체로 악명 높은 구간을 통과해야 했다. 사실 뭐 나도 별로 가본 적 없다. 야구장 갈 때나 가지.


"어. 여보. 난 이제 출발해"

"애들은 협조적이었어?"

"어. 뭐 괜찮았어"

"그래. 운전 조심하고"


"여보. 난 지금 동부간선도로야"

"안 막혀?"

"어. 엄청 쌩쌩 달리지는 않는데 그래도 안 멈추고 가긴 해"

"할 만 해?"

"어. 내가 동부간선도로를 운전하다니"

"조심해서 해"


"여보. 난 도착했어"

"잘 갔어?"

"어. 무사히 잘 왔어"


나의 전 직장 동기이자, 아내의 친구가 된 서진이를 만난다고 했다. 미국에 있다 잠시 들어온 거라 언니 집에서 지내는 중이었고, 아내와 서진이는 점심을 먹은 후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만남이 끝날 때쯤 전화가 왔다. 소윤이는 서진이의 조카인 소은이와 금세 친해진 듯 보였다. 오늘 헤어지면 정말 언제 볼 지 모르는 사이라는 걸 얘네는 알까.(서진이 딸이면 몰라도, 서진이 조카를 또 볼 날이 있을까) 소윤이는 서진이 이모에게도 격이 없었다.


"이모. 그네 밀어주세여. 더 세게여"


서진이는 알게 됐을까. 5살의 소윤이는 꽤 섬세하고(피곤하고), 구체적이고(피곤하고), 끈기 있다(피곤하고)는 걸. 놀이터를 회담 장소로 택한 덕분에 애들도 신나게 놀고, 그 사이 잠깐이나마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시간 정도의 만남을 마친 후 아내는 다시 복귀를 해야 했다. 조심해서 천천히 가라는 당부를 남겼다. 잠시 후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아니면 오늘도 합정으로 올래요?"

"아. 그럴까? 오늘도 거기서 저녁도 먹고 가게?"

"글쎄.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어쨌든 여보도 합정이 더 편하긴 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힘들지 않아?"

"그렇지는 않은데"

"그래. 그럼"


내가 합정에 도착할 걸로 예상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아내랑 애들이 도착했다. 아내는 메세나폴리스나 마트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겠다고 했다. 마음은 급한데 생각보다 차가 막혀서 6시쯤 도착했다. 다행히 아내는 메세나폴리스와 홈플러스를 오가며 잘 있었다. 시윤이의 공이 컸다.(아니, 지가 공을 세운 건 아니지) 계속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내려오겠다고 떼도 안 쓰고.


"여보. 우리 어디 가?"

"그러게"


일단 차에 타긴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도 나도 바로 집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그냥 오늘도 카덴 갈까?"

"카덴? 오늘은 애들한테 밥을 좀 먹이자"

"그럴까? 그럼 다른 곳 좀 찾아봐야겠네"


나와 아내의 대화를 들은 소윤이가 깨알같이 끼어들었다.


"엄마. 카덴이 어디에여?"

"어. 저번에 우동 먹었던 곳"

"엄마. 나 우동 먹고 싶어여"

"아. 아빠가 오늘은 소윤이랑 시윤이가 밥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네"

"그래도. 우동 먹고 싶은데"

"그럼 우동은 내일 먹자 내일"


사실 아무런 근거나 이유는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왠지' 애들한테 밥을 먹이고 싶었다. 아내가 찾아보다가 수요미식회에도 나왔다는 김치찜, 곤드레밥 가게를 제안했다. 사람도 별로 없고, 주차도 편해서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 혹시 아기 의자 있나요?"

"아니요"

"아. 네"


시윤이도 그냥 의자에 앉혔다. 과연 이 녀석이 언제까지 얌전히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혹시 아기 식기가 따로 있나요?"

"아니요"

"아. 네"


그래. 뭐 합정은 인싸들의 장소니까. 우리처럼 애 둘이나 달고 얼마나 오겠어. 모든 식당이 아기를 동반한 손님을 위한 편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5년간 육아에 몰두하다 보니 얻게 된 이기적인 마음이겠지.


"그럼 저희 김치찜 2인분 주세요. 공깃밥도 하나 추가해 주세요"

"아. 저희는 공깃밥 추가가 없어요. 밥을 더 드시려면 곤드레밥을 시키셔야 해요"

"아. 공깃밥이 없다구요?"

"네"

"그럼 그냥 김치찜 2인분 주세요"


아내와 나의 밥에서 반씩, 각각 소윤이, 시윤이 몫으로 덜어냈다.


"아빠. 저 김치 주세여"

"먹을 수 있을까?"

"그럼여"


"아빠. 매워어어어어"

"매워? 밥 먹어 밥"


김치찜에 있는 돼지고기 중 국물이 묻지 않은 부분을 잘 도려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줬다. 된장찌개에 들어있는 두부도 물에 씻어서 나눠줬다. 애들이 먹을 게 없긴 했다. 아내랑 나는 맛있게 먹긴 했다. 음식은 맛이 있었는데 우려했던 대로 시윤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여보. 소윤이 더 먹이고 나와요. 내가 얘랑 먼저 나가 있을게"

"그래. 알았어"


아내랑 둘이 왔으면 더 만족스러웠을 곳이었다. (뭐,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식당이 그렇겠지만) 마음이야 그럴지언정, 소윤이한테는 다르게 말했다. (다르게 라기보다는, 진심이지만 아쉬운 마음은 감추고)


"우와. 소윤아. 엄마랑 아빠랑 소윤이랑 시윤이랑 이렇게 다 같이 데이트하니까 엄청 좋다. 그치?"

"네에"

"아빠. 내일도 회사 안 가"

"왜여?"

"내일 삼일절이라 쉬거든"

"삼일절이 뭐에여?"

"음. 아빠가 내일 차분하게 다시 설명해 줄 게"


아내가 맛있는 와플이 먹고 싶다길래 다시 차에 앉아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생각보다 와플 파는 곳이 없었다. 디저트 전문가인 아내가 얘기했다.


"요즘 와플은 한 물 간 디저트지"

"아. 그래?"

"예전에 슬로우가든 와플이 진짜 맛있었는데"


서울 촌놈에게 와플다운 와플을 처음 소개해 준 게 아내였다. 윤건이 운영한다는 카페에서 와플을 판다길래 거기로 갔다.


"아. 저희가 곧 손님이 붐빌 시간이라서요. 유모차는 좀 저쪽으로 치워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생과일과 아이스크림, 생크림이 토핑 된 와플이 나왔다.


"아빠. 빨리 잘라주세여"

"아빠. 또 잘라주세여"

"아빠. 바나나 올려주세여"

"아빠. 저건 뭐에여. 저것도 찍어주세여"


"꺼(또)"

"꺼"

"꺼"

"꺼"


소윤이랑 시윤이가 와플 먹어 치우는 걸 보고 있자니, 차마 손댈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아내도 나랑 비슷한 심경인 듯했다. 예전에 엄마가 고기 뷔페에서 고개를 때려 먹고 있는 나와 동생을 보며 '무섭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훗날 이야기했는데, 무슨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순식간에 와플을 먹어 치운 애들을 앉혀 두려면 또 다른 먹을 게 필요했다. 요거트볼, 빵 등의 간식거리로 애들의 엉덩이를 붙여 두는 동안, 남은 커피를 마셨다.


"여보. 이제 가자"

"그래"

"여보. 커피는 옮겨달라고 할까?"

"아니. 그냥 다 마시고 갈래"


아내는 3분의 1보다 조금 더 남은 아이스라떼를 한 번에 다 빨아들였다. 아내는 보통 어떤 음식이든 조금씩, 천천히 먹는 사람인데, 가끔 남은 커피는 이렇게 흡입할 때가 있다. 주로 아이들이랑 카페에 갔을 때 그런다.


곧 붐빌 거라던 점원의 예언과는 다르게, 우리가 나올 때까지 우리를 포함해 두 테이블 넘게 손님이 앉은 순간은 없었다. 매우 조용하고 한산했다.


집에 돌아는 길, 둘 다 잠들었다. 늦긴 했지만 내일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홀가분함과 내일 남편이 함께한다는 기쁨에, 아내와 나는 각각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주 늦게까지.


물론 애들이 먼저 일어나겠지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지 않고 이불속에서 뒹굴거리거나 끌려 나가도 문 밖이 아닌 거실까지만 나가면 된다는데 큰 위로를 받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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